사회

‘무소유’의 철학, 학문으로 잇는다…법정스님 첫 학술상 제정

법정 스님의 ‘무소유’ 사상을 학문적으로 계승하고 확장하기 위한 첫 학술상이 제정됐다. 그간 대중적 울림과 실천 운동의 언어로 널리 기억돼온 법정 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이제는 연구와 논문의 언어로 본격 축적하겠다는 시도다.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는 2일 ‘제1회 법정스님 학술상’ 논문 공모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공모 주제는 ‘법정 스님의 삶과 사상에 관한 자유 주제’이며, 법정 스님의 가르침에 관심 있는 석사과정 이상 연구자가 지원할 수 있다. 다만 대학 전임교원은 제외된다. 논문 접수는 7월 20일부터 8월 23일까지 진행되며, 대상 1명에게 500만원, 최우수상 1명에게 300만원, 우수상 1명에게 200만원이 각각 수여된다. 시상은 11월 8일 서울 길상사에서 열리는 ‘제2회 법정스님 학술세미나’에서 이뤄지고, 수상 논문은 학술지 ‘세계불교학연구’ 특집으로 게재될 예정이다.

이번 학술상은 법정 스님의 이름을 내건 첫 정식 학술 공모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법정 스님은 1932년 태어나 2010년 입적할 때까지 ‘무소유’를 비롯한 저술과 법문을 통해 물질 중심 사회를 성찰하게 한 한국 불교의 대표적 수행자이자 사상가로 평가받아 왔다. 맑고 향기롭게 측은 이번 상의 취지를 수행과 사유를 아우르는 연구 전통의 계승, 그리고 관련 연구자 발굴·지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술상 제정은 최근 이어진 법정 스님 재조명 흐름의 연장선으로도 읽힌다. 맑고 향기롭게는 지난해 10월 길상사에서 제1회 법정 스님 학술 세미나 ‘무소유를 말하다’를 열어 스님의 사상과 삶을 현대사회 맥락에서 다시 읽는 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세미나에는 약 400명의 사부대중이 참여했고, 무소유의 철학이 오늘날 어떤 정신적 자산이 될 수 있는지를 다각도로 조명했다고 단체는 밝혔다.

법정 스님의 사상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공간이 길상사와 맑고 향기롭게다. 맑고 향기롭게는 공식 소개에서 결식이웃돕기, 장학사업, 자원봉사 등 ‘함께 나누는 불교 시민모임’이라고 자신을 규정하고 있다. 법정 스님은 1990년대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시작했고, 이후 서울 성북구 길상사를 창건해 회주로 주석하며 무소유와 비움, 절제의 가치를 널리 전했다.

실제로 법정 스님의 유산은 단지 베스트셀러 저자나 대중 법문가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무소유’는 개인의 청빈한 삶을 뜻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욕망과 소유의 질서를 어떻게 다시 바라볼 것인가를 묻는 사회적 질문으로 확장돼 왔다. 이번 학술상은 바로 그 지점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법정 스님의 텍스트와 수행, 생애와 공동체 운동을 철학·종교학·윤리학·사회사상 차원에서 더 깊게 읽어내는 작업이 제도권 학술 장에서 본격화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덕조 스님도 이번 공모의 의미를 정신적 전환의 문제로 짚었다. 덕조 스님은 법정 스님의 삶과 사상이 물질 중심 사회 속에서 인간과 사회의 방향을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정신적 자산이라며, 이번 학술상이 한국 불교사상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덕조 스님은 법정 스님의 맏상좌로, 길상사 주지와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을 맡아 스님의 가르침 계승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법정 스님은 널리 읽히는 저술과 인용되는 문장으로 대중에게 가장 가까운 불교 사상가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정작 체계적인 학술 연구의 축적은 그 명성에 비해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학술상은 법정 스님의 말을 ‘좋은 문장’으로 소비하는 데서 나아가, 한국 불교 사상사와 현대 윤리 담론 속에서 그의 위치를 다시 정립하려는 첫 걸음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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