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현 “파이와 닮았다”…‘라이프 오브 파이’, 퍼펫 무대로 구현한 생존 서사



소년과 호랑이, 그리고 바다. 극한 상황을 다룬 서사가 무대 위에서 다시 구성됐다. 퍼펫과 배우의 움직임이 결합된 공연 ‘라이프 오브 파이’가 서울 GS아트센터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주인공 파이를 맡은 배우 박강현은 이 작품을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무대”라고 설명했다.
박강현은 21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파이는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인물”이라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나와 닮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한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신앙을 경험한 개인적 기억을 언급하며 “좋은 요소를 취해 삶에 적용하려 했던 점이 파이와 겹친다”고 했다.
이 작품은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다. 2001년 출간된 이 작품은 이듬해 맨부커상을 받았고 이후 50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15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2012년 이안 감독이 영화로 제작해 시각적 구현 방식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무대화된 ‘라이프 오브 파이’는 2021년 영국 웨스트엔드, 2023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며 올리비에상 5개 부문, 토니상 3개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이번이 초연이다.
무대는 장르적으로 기존 연극이나 뮤지컬과 구분된다. 제작진은 ‘라이브 온 스테이지’라는 형식을 내세웠다. 배우가 노래로 감정을 전달하는 대신, 신체 움직임과 시선, 호흡으로 서사를 끌어간다. 여기에 퍼펫과 영상, 조명, 무대 장치가 결합된다. 특히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퍼펫으로 구현된다. 여러 명의 퍼펫티어가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박강현은 “퍼펫을 조종하는 배우가 보이지만 어느 순간 관객의 시선에서는 사라진다”며 “인형만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순간이 이 작품의 핵심적인 경험”이라고 했다. 퍼펫이 서사의 중심 장치로 작동한다는 설명이다.
이 작품에서 배우는 역할 수행을 넘어 구조 전체를 떠받치는 역할을 맡는다. 파이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이끈다. 무대 위에서 퇴장 없이 장면을 이어간다. 박강현은 “감정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며 “순간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중심으로 활동해 온 그에게 이번 작업은 방식 자체의 전환이었다. 노래 대신 움직임과 호흡, 대사로 감정을 전달해야 했다. 그는 “표현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에너지 사용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다”며 “배우로서 새로운 감각을 체득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공연은 생존 서사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그 해석은 단일하지 않다. 소년과 호랑이가 함께 바다를 건너는 이야기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동시에 다룬다. 관객은 동일한 사건을 두 가지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박강현은 “이 작품은 무엇이 사실인지보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를 묻는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신앙과 믿음의 문제로 확장된다. 파이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기독교를 모두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절대적 기준보다 경험과 선택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박강현은 “파이는 정답을 찾기보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동료 배우와의 호흡도 중요한 요소다. 파이 역을 함께 맡은 배우 박정민에 대해 그는 “연습 단계부터 에너지를 끝까지 쓰는 연기를 보여준다”며 “극한 감정에서도 밀도를 유지하는 방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연기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다”고 했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생존을 넘어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다룬다. 퍼펫과 무대 장치는 이 질문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관객은 이야기의 사실 여부보다 그 해석의 가능성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박강현은 “이 작품을 통해 체력과 집중력, 감정의 밀도를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었다”며 “이 경험이 다음 작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우로서 한 단계 더 단단해졌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3월 2일까지 서울 GS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이후 3월 7일부터 15일까지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