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몸의 심문대에 선 여성들…‘프리마 파시’와 ‘마른 여자들’이 겨눈 무대

여성의 몸과 법, 통제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연극 두 편이 같은 시기 서울 무대에 올랐다. 쇼노트에 따르면 ‘프리마 파시’는 2025년 8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됐고, 두산아트센터에 따르면 ‘마른 여자들’은 2025년 9월 10일부터 28일까지 스페이스111에서 관객과 만났다. 두 작품은 각각 성폭력 재판과 섭식장애를 다루지만, 여성의 경험이 제도와 사회적 규범 안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압박받는지를 묻는다는 점에서 같은 축 위에 놓인다.
‘프리마 파시’의 출발점은 법정이다. 작품은 형사 변호사 테사가 성폭력 피해를 겪은 뒤 자신이 몸담았던 법 체계의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작가 수지 밀러는 2024년 호주 정부 산하 문화기관 크리에이티브 오스트레일리아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법 체계의 구조적 불균형과 불평등”을 보게 만들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실제 이 작품은 2019년 호주 초연 뒤 영국과 미국으로 이어졌고, 2023년 올리비에상 최우수 신작 연극상과 토니상 여우주연상 수상작으로 기록됐다. 작품의 반향이 흥행을 넘어 법조계 토론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같은 인터뷰에서 확인된다.

‘마른 여자들’은 법 대신 신체를 무대 중심에 놓는다. 두산아트센터는 이 작품을 섭식장애를 지닌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로 소개한다. 연출을 맡은 박주영은 국내미디어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거식증 증상 자체보다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봐왔는지”를 묻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연습 첫날 화이트보드에 “절대로 마르지 마시오”라고 적어 배우들의 감량을 금지했다고 밝혔다. 섭식장애를 재현하는 과정이 또 다른 폭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작품이 말하는 것은 마른 몸의 재현이 아니라, 마른 몸을 강요하는 시선의 구조에 가깝다.
이 두 작품이 지금 관객과 만난다는 사실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유럽시어터컨벤션(ETC)이 2021년 발표한 유럽 극장 젠더 연구는 무대 프로그램 크레디트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이 가시화되고, 극작·연출 같은 핵심 창작 직군에서 남성 우위가 뚜렷하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무대 위와 조직 안의 성별 불균형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봤다. ETC가 2024년 다시 낸 정리 보고서도 유럽 공연계에서 젠더 평등과 다양성 문제가 여전히 주요 연구·정책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고 적시했다. 여성의 몸과 권력, 제도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이어지는 배경에는 이런 산업 내부의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마른 여자들’이 겨누는 현실도 분명하다. 미국 비영리단체 전미섭식장애협회(NEDA)는 최근 통계 자료에서 미국 여성의 69~84%가 현재보다 더 낮은 체중을 원하며 신체 불만족을 경험한다고 제시했다. 또 NEDA는 부정적 신체 인식이 거식증과 폭식증의 발생·유지·재발에 널리 알려진 주요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몸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개인의 감정 문제에 그치지 않고 건강과 질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마른 여자들’이 여성의 몸을 둘러싼 혐오와 통제를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으로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프리마 파시’와 ‘마른 여자들’은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같은 질문으로 수렴한다.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법정, 기준에 맞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몸 모두 여성 개인에게 책임을 돌려온 제도의 언어를 보여준다. 한 작품은 법의 문장을, 다른 한 작품은 신체의 규율을 무대 위로 끌어낸다. 최근 공연계에서 여성 서사가 늘었다는 말만으로는 이 흐름을 설명하기 어렵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여성 인물을 앞세운 작품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몸과 경험을 둘러싼 사회적 규칙 자체를 문제 삼는 작품이 무대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