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

14년 만에 다시 만나는 두 연주자…파우스트·멜니코프, ‘낯선 20세기’를 꺼낸다

[사진:이자벨 파우스트(왼쪽)와 알렉산더 멜니코프ⓒMarco Boggreve. 예술의전당 제공]

1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선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와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가 2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듀오 리사이틀을 연다. 오랜 공백 뒤 다시 호흡을 맞춘다는 점도 눈에 띄지만, 더 중요한 건 프로그램이다. 익숙한 레퍼토리를 피했다. 대신 19세기 말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번 공연의 중심은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쇤베르크, 부소니다. 낭만주의의 끝자락과 현대 음악의 시작이 맞물리는 구간이다. 클래식 공연에서 자주 선택되는 프로그램과는 거리가 있다. 관객이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곡보다, 음악이 방향을 바꾸던 시기의 작품을 꺼냈다.

1부는 프로코피예프의 ‘다섯 개의 멜로디’로 시작한다. 원래 성악곡으로 쓰였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옮겨지면서 선율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이어지는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진다. 작곡가 말년에 쓰인 작품으로, 긴장과 침묵이 반복된다. 소리를 채우기보다 비워내는 쪽에 가깝다.

2부는 더 급격하다. 쇤베르크의 ‘환상곡’은 12음 기법을 바탕으로 한다. 중심이 되는 조성이 사라진 음악이다. 멜로디를 따라가기보다 음의 관계를 따라가야 한다. 이어지는 부소니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다시 방향을 틀지만, 낭만주의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와 새로운 시도가 겹쳐진다.

이 네 곡은 하나의 흐름으로 묶인다. 음악이 안정된 체계를 잃고 새로운 언어를 찾던 시기다. 낭만주의의 확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불안과 실험이 동시에 나타난다. 이번 공연은 이 지점을 따라간다. 편안하게 듣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변화를 직접 마주하게 만드는 구성이다.

두 연주자의 성향도 이 선택과 맞닿는다. 파우스트는 고전 레퍼토리에 머물지 않는다. 바흐와 베토벤을 연주하면서도 현대 작품을 병치한다. 악보를 해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작품이 놓인 시대까지 끌어온다. 멜니코프 역시 비슷하다. 음색을 강조하기보다 곡의 구조를 드러내는 연주로 알려져 있다. 리히터가 그를 두고 “깊이를 아는 연주자”라고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조합은 기량 경쟁과는 거리가 있다. 두 연주자는 속도를 높이거나 소리를 크게 만드는 방식 대신, 긴장을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 음과 음 사이를 늘려놓고 그 사이를 채우지 않는다. 관객은 멜로디를 따라가기보다 소리의 간격을 듣게 된다.

최근 클래식 공연 흐름과 비교하면 더 분명해진다. 대형 공연장은 여전히 베토벤,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같은 익숙한 레퍼토리로 채워진다. 티켓 판매를 고려하면 안전한 선택이다. 반면 이번 프로그램은 그 반대에 가깝다. 관객의 취향에 맞추기보다 연주자가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선택은 최근 일부 연주자들 사이에서 다시 늘고 있다. 익숙한 곡을 반복하는 대신, 잘 연주되지 않는 작품을 묶어 하나의 맥락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개별 곡보다 프로그램 전체를 하나의 메시지로 구성하는 흐름이다. 이번 공연도 같은 선에 놓인다.

14년이라는 시간도 의미를 갖는다. 같은 듀오가 다시 무대에 서지만, 선택한 음악은 더 낯설어졌다. 과거보다 더 멀리 간 프로그램이다. 연주자의 현재 위치가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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