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함은 왜 동원되는가…‘헤르쉬트 07769’가 겨냥한 시대의 불안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소설 ‘헤르쉬트 07769’는 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사회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힘은 세지만 판단은 유보한 채 타인의 말을 따르는 청년, 헤르쉬트. 이 단순한 설정은 출간 시점과 맞물리며 더 직접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선량한 개인은 왜, 어떻게 폭력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가.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소설이다. 600쪽이 넘는 분량 전체가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쉼표만 반복되다 마지막에 단 한 번 마침표가 찍힌다. 독자는 멈출 지점을 찾기 어렵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판단을 유보한 채 흐름에 올라타게 된다.
주인공 헤르쉬트는 독일의 가상 마을에 사는 청년이다. 성실하고 착하다. 문제는 그가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리학 수업을 듣다 세상이 붕괴할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고 이를 알리기 위해 정치 지도자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 집착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번진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더 노골적이다. 고용주인 보스는 네오나치와 연결된 인물이다.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라는 구호를 내세운다. 여기서 ‘깨끗함’은 위생이 아니라 ‘순수’를 의미한다. 작품은 이 단어 하나로 극단주의가 어떻게 일상 언어를 파고드는지를 드러낸다.
헤르쉬트는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그저 시키는 일을 수행한다. 국가를 부르고, 낙서를 지우고, 함께 움직인다. 자신이 무엇에 가담하고 있는지 묻지 않는다. 대신 음악을 떠올리고 편지를 기다린다. 이 무감각이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이 인물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익숙하다. 판단을 미루고 이미 정리된 설명에 기대는 태도, 복잡한 상황을 단순한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방식은 지금의 사회에서도 반복된다. 작품이 출간된 시점과 맞물려 더 직접적으로 읽히는 이유다.
라슬로는 이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여러 기호를 겹쳐 놓는다. 음악, 동물, 정치, 폭력, 전염병이 한 화면에 동시에 등장한다. 세계는 점점 불안정해진다. 독자는 그 변화의 이유를 명확히 설명받지 못한 채 상황을 따라가게 된다.
노벨위원회는 이 작품의 주인공을 ‘거룩한 바보’라고 설명했다. 선하지만 취약한 존재, 타인의 의지에 쉽게 휘둘리는 인물이다. 라슬로는 이 전형을 현재의 언어로 끌어온다. 문제는 악의가 아니라 방향을 잃은 선의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읽기 방식 역시 이 메시지와 연결된다. 쉼표로 이어진 문장은 멈출 지점을 허용하지 않는다. 독자는 판단할 시간을 갖기 전에 다음 문장으로 밀려간다. 이는 주인공의 상태와 닮아 있다. 생각하기 전에 움직이는 흐름이다.
결국 ‘헤르쉬트 07769’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선량함이 어떻게 방향을 잃고, 그 빈자리를 무엇이 채우는지에 대한 문제다.
출간 시점은 이 질문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정보가 빠르게 유통되고 판단이 단순화되는 환경에서 개인은 점점 더 쉽게 영향을 받는다. 이 소설은 그 지점을 파고든다. 극단적인 인물이 아니라,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 태도가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