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은 어디서 시작됐나…‘남성 판타지’가 추적한 폭력의 내면

파시즘은 어떻게 한 사회를 장악하게 되는가. 신간 ‘남성 판타지’는 이 질문을 정치 제도나 선동의 기술이 아니라, 폭력적 남성성의 내면 구조에서부터 파고든다. 독일 사상가 클라우스 테벨라이트가 쓴 이 책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극우주의의 토양이 된 자유군단을 분석하며, 파시즘의 기원을 심리와 무의식의 차원에서 추적한 문제작이다.
책의 출발점은 패전 뒤 독일 사회다. 군축 압박 속에서 정규군은 대폭 축소됐지만, 군부는 별도의 준군사조직을 유지했다. 이른바 자유군단이다. 이들은 외부적으로는 연합국 압력에 맞서는 저항 세력처럼 비쳤지만, 내부적으로는 좌파를 탄압하는 폭력의 도구로 작동했다. 이후 자유군단 구성원 상당수가 나치로 흡수되면서, 이 조직은 20세기 독일 파시즘의 전사로 자리 잡게 된다.
테벨라이트의 책이 특별한 이유는 이 자유군단을 단순한 정치집단이나 역사적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구성원들이 남긴 자서전과 체험담, 소설 같은 텍스트를 치밀하게 읽어내며, 그들 안에 축적된 정서와 언어, 무의식적 충동을 해부한다. 파시즘은 위에서 주입된 이념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개인 내부에서 이미 형성된 어떤 욕망과 공포가 정치적 폭력과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 그의 기본 전제다.
책은 특히 여성에 대한 인식과 관계 맺는 방식에 주목한다. 자유군단 출신 남성들은 여성을 극단적으로 이분화해 바라본다. 한쪽에서는 순결하고 헌신적인 어머니나 간호사로 이상화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을 위협하고 파괴할 수 있는 존재로 두려워한다. 숭배와 혐오, 관심과 냉담, 욕망과 공포가 뒤섞인 이 복합적 감정이 결국 폭력적 남성성을 만들어낸다고 저자는 본다.
테벨라이트는 이 남성성의 핵심에 자아 붕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진단한다. 자기 안의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남성은 외부를 적으로 설정하고, 그 적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경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때 여성성은 가장 강력한 위협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그 공포는 집단적 폭력과 파시즘의 언어로 번역된다. 파시즘이 단지 정치적 극단주의가 아니라,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남성 자아의 방어기제라는 해석이 이 책의 가장 도발적인 지점이다.
이 책이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계속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극우 정치가 다시 힘을 얻고 있고, 여성혐오와 차별, 배제의 언어가 공공연하게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테벨라이트가 분석한 것은 특정 시대 독일만의 병리라기보다, 위기에 처한 남성성이 어떻게 정치적 폭력과 결합하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 개인의 문제의식에도 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역시 파시스트였다고 고백한다. 그것도 특별히 잔혹한 괴물이 아니라, 유능하고 인간적으로도 좋은 사람이었다는 기억을 함께 꺼낸다. 좋은 사람은 어떻게 파시스트가 되는가. 이 책은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아들의 오랜 탐색이자, 이해와 비판이 교차하는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남성 판타지’는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파시즘을 단순한 과거의 정치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오늘의 사회와 인간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 읽고자 한다면 여전히 강한 통찰을 주는 작업이다. 극우주의와 여성혐오, 폭력적 남성성이 다시 고개를 드는 시대에, 이 책은 파시즘이 밖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균열과 공포 속에서도 자라날 수 있음을 경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