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천년의 즐거움’, 일본 ‘부라쿠민’의 끝나지 않은 차별 조명

지난해 12월 출간된 소설집 ‘천년의 즐거움’이 일본 사회의 오래된 차별 문제로 자리잡은 ‘부락쿠민’문제를 다루며 제도적으로는 사라진 신분이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작동하는 차별이 있다는 점에 대해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다.
나카가미 겐지가 쓴 이 작품은 일본 간사이 지역의 피차별 부락 ‘로지’를 배경으로 한 연작 소설이다. 작가 자신이 해당 공동체 출신이라는 점에서 외부의 관찰이 아닌 내부 경험을 토대로 서사를 구축했다는 특징이 있다. 일본 문학에서 피차별 부락을 내부 시선으로 본격적으로 다룬 드문 사례로 꼽힌다.
이야기는 산파인 노년 여성 오류노 오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마을에서 태어나고 죽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세대의 흐름을 이어가는 인물이다.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서 공동체의 시간과 기억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산다. 어린 시절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거나 사회에서 밀려난 채 살아가고,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방향을 잃는다. 첫 이야기의 중심 인물 한조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는 외모로 주목받지만 끝내 삶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환경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조건이 반복된 결과에 가깝다.
이 같은 서사는 일본의 역사적 배경과 연결된다. ‘부라쿠민’은 에도 시대 형성된 신분 구조에서 비롯된 집단으로, 특정 직업과 지역에 묶여 차별을 받아왔다. 1871년 메이지 정부가 신분 제도를 폐지했지만 사회적 인식은 빠르게 바뀌지 않았다. 출신이 알려질 경우 결혼이나 취업에서 불이익을 겪는 사례가 이어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거주지 정보 자체가 차별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차별이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SNS를 중심으로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적 표현이 다시 확산되며 사회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특정 지역 출신 여부를 문제 삼는 게시물이나 혐오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제도 폐지 이후에도 차별이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카가미 겐지는 이러한 현실을 직접적인 설명 대신 서사로 풀어낸다. 그는 스스로를 “피차별 부락이 문자를 만나 처음 태어난 아이”라고 표현하며, 차별을 경험한 당사자의 언어로 공동체를 기록했다.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부의 감각과 기억으로 서사를 구성한 점이 작품의 특징이다.
작품 속 세계는 비극적인 사건들로 채워져 있지만 고발에만 머물지 않는다. 여름부용의 향기로 시작되는 장면처럼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며 인물들의 삶을 감각적으로 확장한다. 마술적 요소는 비극을 강조하기보다 그 안에 존재하는 욕망과 기억을 함께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 같은 서술 방식 때문에 ‘천년의 즐거움’은 일본 문학에서 마술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제목 역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변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생전 “마르케스가 백 년이라면 나는 천 년”이라는 말을 남기며 자신의 서사를 확장된 시간의 흐름 속에 위치시켰다.
나카가미의 시선은 일본 사회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서울 영등포, 뉴욕 할렘, 마닐라 빈민가, 브라질 파벨라, 유럽의 게토 등 여러 지역에서 ‘로지’와 닮은 공간을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반복되는 현상이라는 인식이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보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사회가 만들어낸 경계 밖에 놓인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 경계는 실제로 사라진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제도가 폐지되더라도 인식과 관행이 남아 있는 한 차별은 다른 형태로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천년의 즐거움’은 차별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의 삶을 통해 그것이 어떻게 반복되고 축적되는지를 드러낸다. 독자는 구조를 이해하기 전에 개인의 삶을 따라가며 차별의 작동 방식을 체감하게 된다.
연말에 출간된 이 작품이 새해 초 다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의 신분제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그 이후에도 남아 있는 흔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문학을 통해 드러나는 셈이다.
나카가미 겐지가 기록한 ‘로지’의 이야기는 특정 시대의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도 이어지는 질문을 던진다. 사라졌다고 여겨진 차별이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