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미 별세…한국 영화사의 한 시대를 빛낸 ‘은막의 별’ 지다

1960~197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한 배우 김지미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85세.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10일 김지미가 미국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사인은 저혈압에 따른 쇼크로 전해졌다.
194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난 김지미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뒤 1990년대까지 7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의 한 축을 이끈 인물이다. 덕성여고 재학 시절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캐스팅되며 배우의 길에 들어섰고, 데뷔 당시 얻은 예명 김지미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그는 이듬해 별아 내 가슴에로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랐고,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장희빈 등을 통해 196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자리잡았다. 이후에도 토지, 길소뜸 등 굵직한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긴 시간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김지미는 당대의 미의 기준으로 불릴 만큼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아름다운 여배우가 등장할 때마다 “그래도 김지미만 못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였다. 젊고 풋풋한 이미지의 여배우들과 달리 성숙하고 강렬한 여성미를 내세우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고, 불나비 같은 작품에서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인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화려한 외모만큼이나 연기 스펙트럼도 넓었다. 김수용, 임권택, 김기영 등 거장 감독들과 작업하며 멜로와 사극, 문학영화, 사회극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갔다. 토지로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육체의 약속과 길소뜸 등으로도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다.
특히 길소뜸에서 이산가족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중년 여성을 절절하게 그려내며 자신의 대표 연기 중 하나를 남겼다. 후시 녹음이 아닌 본인의 목소리로 완성한 절제된 연기는 김지미의 원숙한 내공을 보여준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김지미는 배우에만 머물지 않았다. 1985년 제작사 지미필름을 세워 티켓 등 여러 작품을 제작했고, 이후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과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을 맡으며 영화 행정과 현안 대응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배우이자 제작자, 영화계 리더로서 강한 존재감을 남긴 셈이다.
사적인 삶 역시 늘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홍성기 감독, 배우 최무룡, 가수 나훈아 등과의 결혼과 이혼은 그의 화려한 스타성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회자됐고, 그 때문에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한 신여성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미국 현지에서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 점을 고려해 별도의 영화인장은 치르지 않기로 했으며, 대신 추모 공간을 마련해 고인을 기릴 예정이다. 김지미의 별세로 한국 영화는 또 한 명의 상징적인 얼굴을 떠나보내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