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 22년 만에 타종…‘보존된 유산’에서 ‘경험하는 문화’로

국보 성덕대왕신종이 22년 만에 시민 앞에서 다시 울렸다. 행사 재개를 넘어,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이 다시 제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립경주박물관은 24일 경북 경주 박물관 종각에서 성덕대왕신종 타음 조사 공개 행사를 열었다. 시민에게 공개된 타종은 2003년 이후 처음이다. 이날 행사에는 사전 신청을 통해 선정된 시민 등 700여명이 참석했다.
타종은 전통 방식으로 진행됐다. 종을 치는 도구인 당목을 이용해 종 중앙을 가격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약 1시간 동안 12차례 타종이 이어졌다.
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 시기 제작된 범종으로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높이 3.66m, 무게 18.9톤에 이르는 대형 유물이다. 신라 경덕왕이 부친 성덕왕을 추모하며 제작을 시작했고 혜공왕 때 완성됐다.
종은 제작 당시 불교적 신앙과 왕권의 상징을 함께 담은 유물이다. 종 몸체에는 비천상과 함께 1000자 이상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당시 사상과 신앙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이번 타종은 유물 보존을 위한 조사 과정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박물관은 1992년 이후 유물 손상을 우려해 일반 타종을 중단해 왔다. 이후 1996년, 2001~2003년, 2020~2022년 등 제한적으로 타음 조사를 실시했다.
타종 중단 이후 성덕대왕신종은 ‘전시된 유물’로 기능해 왔다. 이번 공개 행사는 유산을 실제 소리와 경험으로 접하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장에서는 종소리를 직접 듣는 경험에 대한 반응이 이어졌다. 관람객들은 종 울림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감각을 체험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문화유산 활용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해석된다. 과거에는 보존 중심 접근이 강조됐다면, 최근에는 제한된 범위에서 활용과 경험을 병행하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
문화재는 손상 가능성이 있는 물리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사용이 제한된다. 동시에 그 의미는 사용과 체험을 통해 전달된다는 특성도 갖는다. 보존과 활용 사이의 균형이 핵심 과제로 제시되는 이유다.
성덕대왕신종은 대표적인 사례다. 종은 원래 소리를 내는 기능을 가진 유물이지만, 보존 과정에서는 그 기능이 제한됐다. 이번 공개 타종은 기능과 의미를 일부 복원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박물관은 향후 정기 공개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조 안정성에 문제가 없을 경우 매년 9월 공개 타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종 보존 환경 개선도 병행된다. 박물관은 습기 영향을 줄이기 위해 실내·외 전시가 가능한 ‘신종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문화유산 활용에 대한 논의는 국내외에서 확대되고 있다. 유산을 관람객이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다만 활용 범위를 둘러싼 기준은 여전히 논쟁 대상이다. 물리적 손상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과, 유산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사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병존한다.
이번 타종은 이러한 논의 속에서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유산의 기능을 제한적으로 복원하면서 관람 경험을 확장하는 방식이 실제로 적용된 것이다.
성덕대왕신종의 울림은 유산의 의미를 현재로 전달하는 매개로 작용했다. 보존된 문화재가 어떻게 ‘살아 있는 문화’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으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