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 프사’ 열풍…AI 한국 애니시장 기회될까?

생성형 AI가 만든 ‘지브리풍 프로필 사진’이 쏟아지면서, 애니메이션 산업은 뜻밖의 질문 앞에 섰다. 사람들은 특정 스튜디오의 분위기와 감성을 즉시 소비하고 공유하지만, 정작 그 스타일을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창작 생태계는 불안하다. 지난 3월 오픈AI가 GPT-4o 기반 이미지 생성을 공개한 뒤 이용이 급증했고,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는 과도한 수요로 GPU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기술은 이미 대중화 단계로 들어섰지만, 창작자 보호와 산업 질서에 대한 논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현상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애니메이션이 오랜 제작 공정과 인력 축적 위에서 성립 되어온 산업이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2023 애니메이션산업백서’와 2025~2030 기본계획에 따르면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은 2023년 기준 약 1조1000억원 규모이며 종사자는 6417명 수준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산업 규모를 1조9000억원으로 키우겠다고 했지만, 동시에 업계는 인력 부족, 투자 회수 구조 미비, 성인 타깃 애니 시장의 취약성을 오랜 문제로 지적해 왔다.
실제 시장의 모순은 극장 흥행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극장 애니 시장은 2023년 외화 애니메이션 흥행으로 크게 커졌지만, 그 성과가 곧바로 국내 창작 애니의 기반 강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4 애니메이션 산업백서’를 바탕으로 한 KoBiz 분석은 2023년 애니메이션 장르가 국내 전체 영화 매출의 24.1%를 차지했다고 짚었지만, 그 중심은 해외 작품이었다. 반면 올해 화제를 모은 국산 애니 ‘퇴마록’은 성인 타깃 국산 애니로는 드문 주목을 받았음에도 손익분기점 100만명 안팎에는 미치지 못했고, 관객 50만명 돌파가 뉴스가 되는 현실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퇴마록’은 텀블벅 굿즈 펀딩에서 약 6억원에 이르는 후원을 모으며 팬덤의 구매력과 IP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는 한국 애니가 작품 자체의 극장 매출만으로는 버티기 어렵지만, 강한 팬층과 부가사업이 결합할 경우 다른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지금의 문제는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수요를 산업 구조로 회수하는 장치가 약하다는 데 더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생성형 AI는 양면적이다. 한쪽에서는 제작비와 인력 부담을 줄여 소규모 창작자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정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애니메이션 산업 진흥 기본계획에도 AI 기반 영상 콘텐츠 제작·유통 지원과 데이터 구축이 포함됐다. 즉 정책 당국도 AI를 배제할 수 없는 제작 환경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AI가 산업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먼저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정 스타일을 빠르게 복제하는 기능은 대중에게는 놀이처럼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스타일이 더 이상 고유한 경쟁력이 아닐 수 있다’는 공포로 이어진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2025년 4월 이슈리포트에서 생성형 AI 프롬프트에 특정 작가의 스타일을 지시하는 행위와 관련해, 현행 저작권법상 ‘화풍’이나 ‘스타일’은 일반적으로 보호되는 표현 그 자체가 아니라 아이디어 영역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정리했다. 법적으로는 회색지대가 넓고, 그래서 창작자의 체감 위협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현행 제도는 대체로 “개별 결과물이 기존 저작물과 실질적으로 유사한가”를 중심으로 판단하지만, 창작자들이 느끼는 위협은 그보다 앞선 단계에서 발생한다. 자신의 오랜 훈련과 시행착오가 만든 조형 감각이 클릭 몇 번으로 대량 복제되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영문 가이드 역시 생성형 AI 결과물이 타인의 저작물과 동일하거나 유사할 경우 이용자에게 침해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스타일 차용 자체를 명확히 금지하는 선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해외에서도 이 논쟁은 문제로 번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언론, 출판, 음악 업계는 AI 기업과의 학습 데이터 계약 또는 소송을 두고 각기 다른 길을 택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도 향후 스튜디오와 플랫폼, AI 기업 사이에 유사한 협상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아직 스튜디오 지브리가 공식적으로 대규모 법적 대응에 나섰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특정 화풍을 둘러싼 권리 논쟁은 국제적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저작권만이 아니라 부정경쟁, 표시 혼동, 상업적 오인 문제까지 함께 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애니 산업이 마주한 질문은 “AI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쓰일 수밖에 없는 기술이라면, 그것이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대형 플랫폼과 기술기업만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가고, 개별 창작자와 스튜디오는 스타일과 노동 가치를 잃는 구조라면 AI는 혁신이 아니라 생태계 압박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저비용 제작, 독립 창작 확대, IP 실험의 진입장벽 완화로 이어진다면 일부에는 분명 기회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