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

‘뒤늦은 발견’인가, 지워진 역사인가…한국 초현실주의 재조명 전시

[사진:김영환 ‘폐허의 오후’(1973). 제공: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막한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 전시는 그동안 한국 미술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서, 어떤 예술이 기록되고 어떤 예술이 배제돼 왔는지를 되묻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전시는 오는 7월 6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기획전은 김욱규, 김종남, 김종하, 신영헌, 김영환, 박광호 등 여섯 작가의 작업을 중심으로 한국 초현실주의의 흐름을 재구성한다. 국내외 30여 개 기관과 유족, 개인이 소장해온 미공개 작품과 아카이브 300여 점이 포함됐다. 이들 대부분은 생전에 주류 미술계와 거리를 두거나, 활동 기반 자체가 제한적이었던 작가들이다. 일부는 작품을 공개하지 않은 채 평생 작업을 이어갔고, 일부는 전쟁과 분단, 이주 경험 속에서 단절된 창작 환경에 놓였다.

[사진:신영헌 ‘한(恨)의 장(章)’(1969). 제공:국립현대미술관]

한국 미술사 서술은 오랫동안 추상미술 중심의 전개로 정리돼 왔다. 1950~60년대 이후 국제 미술 흐름과 접속하는 과정에서 추상은 ‘현대성’의 기준으로 작동했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 실험들은 상대적으로 주변으로 밀려났다. 초현실주의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서구에서는 1920~30년대 주요 전위 사조로 자리 잡았지만, 한국에서는 제도적·역사적 조건 속에서 지속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 공백이 ‘부재’가 아니라 ‘선택된 역사’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예컨대 김욱규는 평생 4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지만 생전에 이를 공개하지 않았고, 김종남은 재일한국인으로서 신분을 숨긴 채 작업을 이어갔다. 신영헌과 김영환 역시 전쟁과 분단, 산업화 과정 속에서 제도권 미술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비주류였다는 데 있지 않다. 제도와 시장, 그리고 시대적 환경이 이들을 중심에서 밀어냈다는 점에 있다.

작품의 내용 역시 당대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초현실주의는 본래 무의식과 욕망, 비합리적 세계를 드러내는 예술이지만, 한국 작가들의 작업에서는 전쟁과 이산, 사회적 억압이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반영된다. 김욱규의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숲과 새, 김종남의 이종 결합 이미지, 신영헌의 분열된 인간 형상 등은 개인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기보다,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가깝다.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 박혜성 학예연구사는 전시 해설에서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낯선 감각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한국 초현실주의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유럽 초현실주의가 꿈과 환상, 무의식의 자유를 강조했다면, 한국에서는 억압된 현실을 변형해 드러내는 기능이 더 강하게 작동했음을 시사한다.

이번 전시가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최근 미술계에서 ‘재서술(rewriting)’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미술사에서 소외됐던 작가와 흐름을 다시 조명하려는 시도는 국내외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영국 테이트 모던이나 프랑스 퐁피두센터 등 주요 미술관은 최근 수년간 여성 작가, 비서구 작가, 식민지 경험을 가진 예술가들을 재배치하는 전시를 지속적으로 기획해 왔다. 이는 단순한 전시 전략이 아니라, 미술사를 구성하는 기준 자체를 재검토하려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감지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근대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않았던 작가군을 발굴하는 기획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번 전시 역시 그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놓인다. 다만 이 같은 재조명이 일회성 기획에 그칠지, 미술사 서술 자체를 바꾸는 계기로 이어질지는 별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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