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인종차별에서 한국 이주노동 현실까지…연극 ‘시즈위 밴지’가 던진 질문

197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을 다룬 연극 ‘시즈위 밴지는 죽었다’가 부산 무대에 오른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과거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현재 한국 사회로 곧장 이어진다. ‘존재를 지우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문제다.
독립예술기획사 효로인디넷과 극단 새벽은 4월 26일부터 5월 31일까지 부산 효로인디아트홀에서 연극 ‘시즈위 밴지는 죽었다’를 공연한다. 남아공 극작가 아돌 푸가드의 대표작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아래에서 신분을 숨기고 가명으로 살아가는 흑인 노동자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푸가드는 평생 인종차별에 맞선 작품 활동으로 ‘남아공의 양심’이라 불렸던 인물이다.
작품의 중심에는 ‘존재의 박탈’이라는 주제가 놓여 있다. 극 중 주인공 시즈위 밴지는 노동을 지속하기 위해 타인의 신분을 빌려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과 삶을 포기하게 된다. 이는 제도와 사회 구조가 개인의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고 배제하는지를 드러내는 장치다.
이번 공연에서 주목되는 지점은 원작을 그대로 무대에 올렸다는 점이다. 극단 새벽은 2010년 같은 작품을 국내 이주노동자 현실에 맞게 각색해 선보인 바 있으나, 이번에는 별도의 변형 없이 원작을 선택했다. 변현주 대표는 “각색하지 않아도 현재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메시지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시공간을 넘어 동일한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실제 한국 사회에서도 이주노동자의 법적·사회적 지위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고용노동부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50만명에 육박하며, 이 중 상당수가 제조업·건설업 등 저임금 노동시장에 집중돼 있다. 특히 비정규 체류자나 사업장 이동이 제한된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은 노동조건 선택권이 제한되는 구조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23년 보고서에서 이주노동자가 임금 체불, 산업재해, 주거 환경 문제 등에서 내국인보다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으며, 제도적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한국의 이주노동 정책이 노동 이동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같은 현실은 ‘시즈위 밴지’가 다루는 구조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제도에 의해 제한된 존재’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과거 남아공에서 인종에 따라 이동과 노동이 통제됐던 것처럼, 오늘날 일부 이주노동자는 제도적 조건에 따라 삶의 선택지가 제한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분석이가능하다.
공연은 이러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장면과 인물의 선택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1인 2역을 소화하는 배우 이현식과 신인 배우 김기백의 연기는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분리되고 재구성되는지를 드러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연출을 맡은 이성민은 “이 작품은 특정 시대의 이야기라기보다 인간이 구조 속에서 어떻게 존재를 유지하는지를 묻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공연이 과거 재현이 아니라 현재 해석의 장치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공연예술계에서는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작품이 다시 증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공연 시장이 회복 단계에 들어서면서 현실 문제를 반영하는 작품에 대한 수요도 함께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소극장 중심의 창작극에서는 노동, 젠더, 이주 문제 등을 다루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이어진다.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과 독일 샤우뷔네 등 주요 극단들은 난민, 이주,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리며 공연을 사회적 담론 형성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극이 현실 문제를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은유와 구조를 통해 접근하는 방식 역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