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저품질 영상 범람, 한국 소비량 세계 최대…플랫폼 책임·규제 공백 논란

인공지능(AI)으로 제작된 저품질 영상 콘텐츠 소비가 한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플랫폼 책임과 규제 공백 문제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콘텐츠 제작 비용이 급격히 낮아진 반면, 유통 구조는 이를 걸러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영상 제작 플랫폼 카프윙(Kapwing)이 2025년 11월 발표한 ‘AI 슬롭(AI Slop)’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유튜브 상위 채널을 분석한 결과 한국 기반 AI 콘텐츠 채널의 누적 조회 수는 84억5000만 회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가장 많았다. 파키스탄(53억 회), 미국(34억 회)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조회 수 상위 채널 집중도도 높았다. 글로벌 상위 AI 콘텐츠 채널 10개 가운데 4개가 한국 기반으로 나타났으며, 특정 채널이 전체 조회 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구조가 확인됐다. 일부 채널은 수십억 회 단위 조회 수를 기록하며 광고 수익 기반까지 확보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른바 ‘AI 슬롭’은 자동 생성 이미지와 음성, 반복 서사 구조를 결합한 영상이다. 제작 비용이 낮고 제작 시간이 짧아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보고서는 유튜브 추천 피드에서 AI 슬롭 콘텐츠 비중이 최대 30% 수준까지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소비 구조다. 쇼츠(Shorts) 중심의 짧은 영상 소비와 자동재생 기능이 결합되면서 이용자가 의도하지 않은 콘텐츠까지 연속적으로 소비되는 환경이 형성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용자 선택보다 알고리즘 추천이 소비를 주도하는 구조다.
특히 고령층을 중심으로 콘텐츠 구분 능력 문제가 제기된다. 영상 제작 방식이나 출처를 인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AI 생성 콘텐츠를 일반 콘텐츠로 받아들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격차가 소비 편차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플랫폼 책임을 둘러싼 논의도 확대되고 있다. 추천 알고리즘이 저품질 콘텐츠 확산을 가속하는 만큼 노출 기준과 필터링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된다. 반면 창작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해외에서는 규제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AI 생성 콘텐츠에 대한 표시 의무와 플랫폼 책임 강화를 검토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플랫폼은 AI 콘텐츠 식별 기능 도입과 자동 분류 시스템 구축에 나선 상태다.
반면 국내는 제도 논의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AI 콘텐츠 표시 기준과 플랫폼 책임 범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기술 확산 속도에 비해 정책 대응이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콘텐츠 산업 구조 변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작 비용이 낮아지면서 콘텐츠 공급은 급증했지만, 품질을 선별하는 기준과 장치는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 조회 수 중심의 수익 구조가 유지되는 한 저품질 콘텐츠 확산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결국 문제는 균형이다. 기술 발전으로 콘텐츠 생산이 확대되는 흐름을 막기 어렵다면, 유통 단계에서의 관리 기준과 이용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