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어디까지 분산할 것입니까?
인사·예산·감사·수사권 연결된 대통령제…책임총리·국회 통제·독립기관 중립성 함께 설계해야
권한을 나누는 개헌보다 책임 주체와 견제 절차를 명확히 정하는 일이 우선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가원수이면서 행정부 수반이다. 군 통수권과 외교권뿐 아니라 고위공직자 인사, 정부 예산 편성, 행정기관 지휘권을 갖는다. 감사원과 검찰·경찰을 비롯한 권력기관 운영에도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통령 선거 한 번의 결과가 행정부와 권력기관의 운영 방향을 동시에 바꾸는 구조다.
대통령의 권한이 강하다고 해서 곧바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 위기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유권자가 국정 성과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에게 물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문제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는데 정책 실패나 인사 실패의 책임은 장관과 기관장, 국회와 야당으로 분산되는 현상이다.
대통령 권한 분산 논의가 4년 중임제나 의원내각제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문제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개헌의 명칭보다 인사권과 예산권, 감사권과 수사권을 누구에게 넘기고 어떤 절차로 통제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권한만 나누고 책임 구조를 정하지 않으면 국정 혼선과 기관 간 충돌이 더 커질 수 있다.
대통령 인사권은 국정 운영 수단인가
현행 헌법은 국무총리를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한다.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행정각부 장관은 국무위원 가운데 국무총리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형식적으로는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인사권을 나누는 구조다.
그러나 실제 국정 운영에서는 대통령실이 총리와 장관 후보자 선정에 주도권을 갖는 경우가 많다. 국무총리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인사 결정을 확인하는 절차로 운영되면 헌법이 예정한 권한 분담은 작동하기 어렵다. 장관 역시 대통령의 신임에 따라 임명되고 교체되는 구조에서 독자적인 정책 책임을 갖기 어렵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행정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가정보원장,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등 국가의 사법·감사·수사·규제 기능과 관련된 주요 직위에 대통령의 임명권이나 지명권이 작용한다. 일부 직위는 국회 동의를 요구하지만 상당수는 인사청문회만 거치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견제 장치로서 한계를 보인다. 헌법에 따라 국회의 임명동의가 필요한 국무총리·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감사원장·대법관 등은 본회의 표결을 거쳐야 한다. 반면 국무위원과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은 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법정 절차가 끝나면 임명이 가능하다(인사청문회법 제6조).
청문회 대상만 확대하는 것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도덕성 검증이 정쟁으로 흐르고 정책 역량 검증이 약화되는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 후보자의 자료 제출 책임과 허위 답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검증 항목을 도덕성·전문성·이해충돌·기관 운영계획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책임총리제는 권한 없는 책임을 끝내야 한다
책임총리제는 대통령의 권한을 국무총리에게 실질적으로 분산하는 방안이다. 헌법 제86조는 국무총리가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규정한다. 제87조는 국무위원 임명 과정에서 총리의 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인정한다(대한민국헌법).
현행 헌법을 그대로 두더라도 대통령이 총리의 제청권과 장관 통할권을 존중하면 상당한 수준의 책임총리제를 운영할 수 있다. 대통령은 외교·안보와 국가 전략을 담당하고, 총리는 경제·사회·복지 등 내치를 총괄하는 방식이다. 총리가 장관 후보자를 추천하고 장관 평가와 교체에도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도록 만드는 방안이다.
그러나 권한 배분을 대통령의 선의에만 맡겨서는 제도가 지속되기 어렵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총리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임총리제를 제도화하려면 총리의 장관 제청권을 실질화하고, 대통령이 제청을 거부할 때 그 이유를 기록하도록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총리에게 권한을 주면서 국회의 통제도 강화해야 한다. 총리가 국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해 국정 운영계획과 성과를 보고하고, 주요 정책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할 수 있다.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다를 때 총리 임명을 둘러싼 장기 공백을 막기 위한 후보 추천과 처리 기한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책임총리제가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이중 권력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외교·안보와 내정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통상정책과 에너지정책, 산업정책은 외교와 국내 경제가 동시에 얽혀 있다. 대통령과 총리의 담당 영역, 조정 절차와 최종 책임자를 법률로 명확히 정해야 한다.
국회는 예산을 심사하지만 설계하지 못한다
예산권도 대통령 권한 집중을 보여주는 영역이다. 정부는 각 부처의 요구를 조정해 예산안을 편성하고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국회에 제출한다. 국가재정법 제33조는 정부가 대통령의 승인을 얻은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도록 규정한다(국가재정법 제33조).
국회는 정부 예산안을 심의하고 확정한다. 그러나 정부의 동의 없이 지출예산의 금액을 늘리거나 새로운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국회가 예산을 삭감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정책에 필요한 재정을 독자적으로 편성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는 구조다.
이러한 제도는 재정 건전성과 행정부의 정책 집행력을 보호하는 기능을 갖는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사업을 경쟁적으로 늘리면서 재정 지출이 팽창하는 것을 막는 장치이기도 하다. 반면 정부가 예산 편성 단계에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사실상 결정하고, 국회 심사는 일부 사업의 증감 조정에 머무를 가능성이 있다.
예산권 분산은 국회가 모든 예산을 직접 만드는 방향이어서는 안 된다. 국회에 중기재정계획과 세입 전망을 독립적으로 검증할 전문기관을 강화하고, 주요 신규사업에 대한 사전 비용 추계와 성과평가를 의무화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대통령 공약사업도 기존 사업과 같은 기준으로 비용과 효과를 검증해야 한다.
예비비와 추가경정예산에 대한 통제도 필요하다. 본예산 심의를 우회하거나 단기간의 정치적 요구를 충족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편성 요건을 구체화해야 한다. 예산 편성과 집행, 결산 자료를 사업 단위로 연결해 국민이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방안도 요구된다.
국회가 권한을 더 갖는 만큼 책임도 져야 한다. 예산 심사 과정에서 증액하거나 유지한 사업의 근거와 기대 효과를 공개하고, 결산 때 실제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정부 예산은 대통령의 돈이 아니며 국회가 나눠 쓰는 재원도 아니다. 국민이 부담한 세금을 어디에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공동 책임의 영역이다.
대통령 소속 감사원이 대통령을 감사할 수 있는가
감사원은 헌법상 대통령 소속 기관이다. 국가의 세입·세출 결산과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는 핵심 기관이지만, 감사원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한다. 감사위원도 감사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감사원이 대통령 소속이라고 해서 감사 결과가 모두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결정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헌법과 감사원법은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성을 보장한다. 다만 대통령실과 행정부를 감사해야 하는 기관이 조직상 대통령에게 속한 구조는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반복시키는 원인이 된다.
정권 교체 이후 전임 정부 정책에 대한 감사가 집중되거나, 현 정부의 민감한 사안에 대한 감사가 지연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 감사 결과의 신뢰도는 떨어진다. 실제 독립성뿐 아니라 국민이 공정하다고 받아들이는 외관상 독립성도 중요하다. 감사가 정치적 보복이나 방어 수단으로 의심받는 순간 국가 감사 기능 전체가 약화된다.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옮기는 방안도 제시되지만 국회 역시 정당정치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회 다수당이 감사 대상과 시기를 좌우하면 대통령 소속일 때와 다른 형태의 정치적 편향이 나타날 수 있다. 소속 기관을 바꾸는 것만으로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대안은 감사위원 구성과 감사 착수 절차를 분산하는 데 있다.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 등이 감사위원을 나누어 추천하고 임기를 엇갈리게 설정할 수 있다. 특정 정권이 감사위원 전원을 단기간에 교체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감사 계획과 착수 기준, 결과 공개 원칙도 법률로 구체화해야 한다. 국회나 시민단체가 감사를 요구했을 때 수용 여부와 판단 근거를 공개하고, 감사위원의 이해충돌과 정치활동 경력을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독립기관의 중립성은 기관 명칭보다 구성 방식과 의사결정 기록에서 나온다.
수사기관 인사권과 사건 지휘를 분리해야 한다
검찰과 경찰은 국민의 기본권을 직접 제한할 수 있는 기관이다. 압수수색과 체포, 구속, 송치와 기소 과정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정부가 기관장의 임명권과 주요 보직 인사권을 가진 상태에서는 정치적 사건을 둘러싼 중립성 논란이 발생하기 쉽다.
수사기관의 독립을 기관장 임기 보장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기관장이 임기를 보장받더라도 차장과 검사장, 경찰 지휘부에 대한 인사가 정치권의 영향을 받으면 조직 전체가 인사 신호에 반응할 수 있다. 특정 사건의 결론보다 수사팀 구성과 배당, 인력 배치에서 영향력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수사기관 개편의 핵심은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 기관 내부의 사건 지휘권을 분리하는 것이다. 기관장 후보추천위원회의 구성 주체를 다양화하고 추천 과정과 평가 기준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주요 수사 지휘와 사건 재배당은 서면으로 남기고 사후 검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성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선출되지 않은 수사기관이 독립이라는 이름으로 자체 권력을 형성할 위험도 있다. 수사기관에는 외부 압력으로부터의 독립과 함께 영장주의, 법원 통제, 국회 보고, 시민 감시와 내부 징계가 동시에 적용돼야 한다.
대통령의 수사기관 인사권을 줄이더라도 새로 권한을 받는 국회나 추천위원회가 정파적으로 구성되면 문제는 반복된다. 한 기관의 권한을 다른 기관으로 통째로 옮길 것이 아니라 추천·검증·임명·감독 권한을 여러 주체에게 나누는 설계가 필요하다.
분권형 개헌은 권한 목록부터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 권한 분산형 개헌에는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 여러 선택지가 있다. 그러나 임기만 바꾸는 개헌은 권력 구조의 핵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인사와 예산, 감사·수사기관에 대한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임기만 연장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분권형 대통령제 역시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추상적으로 나누면 갈등이 커질 수 있다. 대통령이 외교·안보를, 총리가 내치를 담당한다는 원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산업·통상·에너지·재난과 같이 경계가 겹치는 정책에서 누가 최종 결정하고 책임지는지 규정해야 한다.
개헌 논의에 앞서 권한 목록을 공개해야 한다. 고위공직자 임명권 가운데 어떤 직위에 국회 동의를 요구할지, 총리가 실질적으로 추천할 직위는 무엇인지, 독립기관 위원을 어떤 기관들이 나누어 선출할지 제시해야 한다. 예산 편성권과 감사기관 소속, 수사기관 인사권도 같은 기준으로 다뤄야 한다.
권한의 분산과 국정 효율성 사이의 균형도 필요하다. 모든 인사와 정책에 국회 동의를 요구하면 장기적인 공석과 행정 마비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처리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의 임명을 허용하면 국회 검증은 형식적인 절차가 된다. 후보자 복수추천, 처리 기한 설정, 부결 시 재추천 의무 등을 함께 설계할 수 있다.
대통령 권한을 줄인 자리에 정당 지도부나 국회 다수파의 권력이 들어서서는 안 된다. 지방정부와 독립기관, 전문가 조직과 시민사회에도 권한이 분산돼야 한다. 중앙정부가 보유한 행정·재정 권한을 지방으로 넘기는 문제 역시 권력구조 개편의 한 축으로 다뤄야 한다.
권한 분산의 목적은 책임 분산이 아니다
대통령 권한 분산의 목표는 대통령을 약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국가적 결정을 한 사람의 판단과 인사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도록 제도를 안정시키는 데 있다. 권한을 나눈 뒤에도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 국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인사권은 추천과 검증, 임명을 분리해야 한다. 예산권은 정부의 편성 전문성과 국회의 재정 통제를 조화시켜야 한다. 감사·수사기관은 정치권으로부터 거리를 두되 민주적 감시를 받도록 해야 한다. 총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준다면 그만큼 국회와 국민에게 책임지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개헌은 이러한 제도를 담는 수단 가운데 하나다. 현행 헌법 아래에서도 총리의 제청권 실질화, 인사청문제도 개선, 독립기관의 추천권 분산, 수사 지휘의 서면화는 법률과 관행을 통해 추진할 수 있다. 먼저 가능한 개혁을 시행한 뒤 개헌이 필요한 영역을 구분하는 접근이 바람직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겠다는 선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떤 권한을 누구에게 넘길지, 새로 권한을 갖는 기관은 누구의 통제를 받을지 답해야 한다. 권력을 여러 곳에 배치하는 것보다 권한과 책임을 같은 자리에 놓는 일이 더 중요하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줄이는 과정에서 책임까지 흩어지면 국민은 정책 실패의 책임자를 찾을 수 없게 된다. 권한 분산의 성패는 대통령의 힘이 얼마나 줄었는지가 아니라 국가기관 사이에 견제와 책임의 연결망이 얼마나 분명하게 만들어졌는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