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공식 깨졌다… 4월 극장가 물들이는 호러 신작들

공포영화의 계절은 더 이상 한여름만이 아니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장르의 특성상 오랫동안 공포영화는 여름 흥행 공식과 함께 움직여 왔다. 무더위를 식히는 체감형 오락이라는 인식, 방학 시즌 극장 수요가 맞물리며 ‘공포=여름 개봉’은 거의 상식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최근 극장가는 이 공식을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확산으로 계절성 흥행 패턴이 흔들린 데다, 학기 중에도 입소문이 빠르게 형성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공포영화는 굳이 여름을 기다리지 않게 됐다. 기후 변화로 계절의 경계마저 흐려진 지금, 공포영화는 방학 특수보다 빠른 화제성과 바이럴 효과를 겨냥해 봄 극장가에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흐름은 이미 몇 해 전부터 감지됐다. 2018년 3월 개봉한 ‘곤지암’, 2024년 2월 개봉한 ‘파묘’가 계절 공식을 흔들었고, 올해는 그 분위기가 한층 선명하다. ‘살목지’, ‘삼악도’, ‘리 크로닌의 미이라’가 3~4월 사이 연이어 관객을 만나고,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백룸’ 역시 6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공포영화의 무대가 여름에서 상반기 전체로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작품은 ‘살목지’다. 최근 흥행작 ‘왕과 사는 남자’를 내놓은 쇼박스의 차기작인 이 영화는 개봉 첫날 11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평일 개봉작으로서는 이례적인 수치다. 영화는 저수지 ‘살목지’의 로드뷰 화면에 설명하기 어려운 형체가 포착되면서 시작된다. 이른바 ‘살목지 로드뷰 귀신’ 괴담이 번지고, 이를 다시 촬영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촬영팀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에 휘말린다.
이 작품의 흥미로운 지점은 실재하는 장소의 불길한 이미지와 허구의 서사를 교차시키는 방식에 있다. 충남 예산군의 실제 저수지 이름을 가져오고, 오랫동안 떠돌던 괴담의 분위기를 장르적 장치로 끌어들여 현실과 공포의 경계를 흐린다. 그런 점에서 ‘살목지’는 폐쇄된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현실의 집단적 불안과 괴담을 결합했던 ‘곤지암’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도 읽힌다. 단순히 놀라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믿는 현실의 표면을 비틀어 보여줄 수 있을지가 이 영화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17일 개봉하는 ‘리 크로닌의 미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한 사례다. 미라를 둘러싼 공포는 이미 수없이 반복된 장르 문법이지만, 이 작품은 고대의 저주를 먼 유적이나 탐험의 공간에 가두지 않는다. 실종됐던 딸이 8년 만에 돌아오지만, 그 아이가 발견된 장소가 3000년 된 이집트 석관이라는 설정부터 일상의 감각을 무너뜨린다. 게다가 같은 방식으로 발견된 아이가 58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이 공포가 특정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설명 불가능한 집단 현상임을 암시한다.
영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공포의 근원을 낡은 신화나 박물관 속 유물에 두는 대신, 평범한 가정 안으로 들여온다. 다시 만난 딸은 분명 반가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더 이상 예전의 딸이 아니다. 낯선 존재가 가장 연약한 몸을 매개로 집 안으로 스며든다는 설정은 고전적인 미라 서사를 현대적인 가족 호러로 전환한다. 블룸하우스 특유의 친숙한 공간 안에서 불안을 키우는 방식이 이번에도 유효할지 관심이 쏠린다.
상반기 화제성 면에서 가장 강력한 작품은 단연 ‘백룸’이다. 이 영화는 인터넷 도시전설과 영상 밈 문화에서 출발한 세계관을 스크린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이미 강한 팬덤을 확보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화제를 모았던 ‘The Backrooms’를 바탕으로, 원작의 기이한 상상력을 만들어낸 케인 파슨스가 직접 연출에 참여했다는 사실도 기대를 키운다. 여기에 A24 배급, 레나테 레인스베와 추이텔 에지오포라는 배우 조합까지 더해지며 장르영화 팬뿐 아니라 일반 관객의 관심도 함께 끌어모으고 있다.
‘백룸’의 핵심은 설명 가능한 현실이 무너지는 순간에 있다. 한 남자가 가구 매장 쇼룸의 뒤편에서 현실 바깥처럼 보이는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고, 끝없이 이어지는 노란 벽지의 미로 속에서 기이한 현상과 존재를 마주한다. 익숙한 공간의 이면에 전혀 다른 차원이 숨어 있다는 상상은 현대적 불안과도 맞닿아 있다. 도시전설, 인터넷 이미지, 폐쇄공포, 실종의 두려움이 결합된 이 작품은 오늘날 공포가 어디에서 생성되고 소비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올해 봄 극장가를 채우는 공포영화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무서운 장소나 낯선 괴물만을 내세우기보다, 현실과 맞닿은 표면을 조금씩 어긋나게 만들며 불안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카메라에 우연히 찍힌 형체, 되돌아왔지만 더는 преж전과 같지 않은 아이, 현실 뒤편에 숨어 있는 끝없는 미로는 모두 우리가 사는 세계가 완전히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감각을 건드린다. 이제 공포영화는 계절의 장르가 아니라, 현실을 가장 예민하게 비트는 동시대적 장르로 봄 극장가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