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목소리에도 주인이 있다…지하철 안내방송 AI 검토에 들썩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지하철 안내방송 녹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강희선 성우. tvN 유튜브 갈무리

서울지하철 안내방송에 인공지능(AI) 음성을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됐다는 소식은 얼핏 보면 기술 변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더 효율적이고, 더 유연하고, 필요하면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꾸겠다는 발상 자체는 낯설지 않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이 기대고 있는 대상이다. 누군가의 목소리, 그것도 오랜 시간 시민의 일상에 스며든 실제 성우의 목소리를 당사자 동의 없이 학습하거나 재현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순간, 논란은 비용 절감이나 행정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와 존중의 문제로 바뀐다.

이번 사안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이것이다. 목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성우의 목소리는 타고난 음색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년, 수십 년의 훈련과 발성, 감정 조절, 전달 방식, 직업적 경험이 축적된 결과다. 한 사람의 음성에는 노동이 들어 있고, 개성이 들어 있고, 직업적 정체성이 들어 있다. 따라서 목소리를 AI가 흉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곧 그 목소리를 누구나 쓸 수 있다는 뜻이 되지는 않는다.

특히 공공기관이라면 더 조심해야 한다. 민간 기업이 기술 경쟁을 이유로 서둘러 AI를 도입하는 것과, 공공서비스를 담당하는 기관이 시민에게 익숙한 특정 개인의 목소리를 대체 가능한 자원처럼 다루는 것은 무게가 다르다. 공공은 법과 기준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윤리적 책임도 져야 한다. “아직 확정된 바 없다”거나 “여러 방안 중 하나를 검토했을 뿐”이라는 설명만으로 불신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공기관이 어떤 생각을 검토 대상으로 올렸는지 자체가 이미 하나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이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진 데에는 당사자의 상황도 있다. 오랜 시간 서울 지하철 안내방송을 맡아온 강희선 성우가 암 투병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한 가운데, 그의 목소리를 AI로 대체하는 방안이 거론됐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에게 차가운 인상을 남겼다. 법률적으로 어디까지가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이전에, 사람들은 먼저 상식의 문제를 떠올린다. 오랜 기간 자신의 목소리로 공공서비스를 책임져 온 사람에게, 최소한의 동의와 설명, 배려가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AI 시대의 낡지 않은 원칙 하나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모두 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원칙이다. 생성형 AI는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고, 목소리 복제 기술은 이미 놀랄 만큼 실제와 가까워졌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가 권리의 후퇴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할수록 권리 기준은 더 촘촘해져야 한다. 음성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다. 개인의 인격과 노동, 명성과 생계를 구성하는 자산이 됐다.

이 점에서 이번 사안은 성우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방송인, 배우, 가수, 아나운서, 유튜버는 물론이고 콜센터 상담사, 교사, 공공안내 인력까지도 언젠가는 비슷한 질문 앞에 놓일 수 있다. 내 목소리가 내 허락 없이 학습 데이터가 될 수 있는가. 내가 한때 제공한 녹음이 미래의 디지털 대체물을 만드는 재료가 될 수 있는가. 그 대가와 통제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금 선을 분명히 긋지 않으면, 앞으로는 훨씬 더 많은 직종이 뒤늦게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서울교통공사도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당사자 동의 없는 도입을 검토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고, AI TTS 역시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일을 더 가볍게 넘길 게 아니라 오히려 제도 정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공공기관이 AI 음성을 도입할 때 필요한 최소 기준, 예컨대 당사자 명시 동의, 사용 범위 제한, 보상 체계, 철회권 보장, 사후 관리 원칙 등을 명문화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논란이 반복되지 않는다.

AI는 인간의 일을 덜어줄 수 있다. 때로는 더 빠르고, 더 편리하며, 더 저렴한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흔적까지 함부로 대체할 권리를 자동으로 얻는 것은 아니다. 특히 누군가의 목소리를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음파를 복제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간과 노동, 존재감을 가져오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한다.

목소리에도 주인이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놓치는 순간, AI는 혁신의 도구가 아니라 권리 침해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기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언제나 같다. 그렇게 해도 되는가. 이번 논란은 그 기본 질문을 다시 우리 앞에 놓고 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