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항 사고에서 무대로…연극 ‘엔드 월’, 노동 현실을 묻다

산업재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하청 노동 구조와 현장 현실을 다룬 작품으로, 노동 문제를 예술 언어로 풀어낸 시도다.
극작가 겸 연출가 하수민이 쓴 연극 ‘엔드 월(End Wall)’이 서울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되고 있다. 작품은 2021년 평택항에서 발생한 청년 노동자 사망 사고를 모티프로 제작됐다.
하수민 연출은 최근 인터뷰에서 “사고 기사를 접한 뒤현장을 직접 찾아보며 작품을 썼다”며 “노동권과 인권이 왜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지 질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은 청년 노동자 ‘아성’의 죽음을 출발점으로 구성된다. 사고 직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사건의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원청과 하청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항만 노동 환경도 무대에 재현됐다. 컨테이너 구조와 작업 동선을 반영한 장면을 통해 현장의 위험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공연 초반 컨테이너 벽이 무너지는 장면은 노동 환경의 위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엔드 월’이라는 제목은 개방형 컨테이너의 양 끝 벽을 의미한다. 작품에서는 이 구조를 통해 노동 현장의 한계와 구조적 위험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산업재해 고발에서 멈추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는 노동의 반복성과 육체적 감각이 강조된다. 배우들은 항만 작업을 몸짓으로 표현하며 노동의 물리적 강도를 전달한다.
하 연출은 “땀이 나는 시를 표현하고 싶었다”며 “노동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겪는 삶의 일부”라고 말했다. 노동을 사건이 아닌 일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이 같은 접근은 최근 공연계 흐름과 맞닿아 있다. 사회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증가하면서, 예술이 현실 문제를 해석하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개인 서사 중심에서 구조적 문제를 다루는 방향으로 확장되는 경향이다.
실제 국내 산업재해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망자는 827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1.6명꼴이다.
이 수치는 작품의 문제의식이 특정 사건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준다. 과거 사건을 다루지만 현재의 구조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현실성과 지속성이 강조된다.
연극은 관객에게 사건의 원인을 설명하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노동자가 왜 위험에 노출되는지, 그 구조는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묻는 구성이다.
하 연출은 “과거의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결국 남은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노동 문제를 예술적 표현으로 풀어내는 방식의 한 사례로 평가된다. 현실을 재현하는 데서 나아가 감각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가 특징이다.
공연은 오는 28일까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