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가 바꾼 예능 시장…“제작비 격차 100배”가 만든 콘텐츠 이동
넷플릭스를 비롯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예능 콘텐츠 영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국내 콘텐츠 제작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특히 지상파 방송사와 OTT 간 제작비 격차가 커지면서 경쟁력 있는 기획이 OTT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5년 3월 공개된 MBC 시청자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전진수 MBC 예능본부장은 “방송사의 수익 구조로 감당할 수 없는 기획안은 OTT로 갈 수밖에 없다”며 제작비 격차를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지상파와 OTT의 한 회당 제작비 차이가 약 100배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제작비 구조에서도 차이가 확인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업계 자료를 종합하면 국내 드라마의 경우 일반적인 회당 제작비가 약 7억~10억 원 수준인 반면, 2020년대 중반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회당 20억~3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제작 환경 차이를 넘어 콘텐츠 규모와 완성도를 좌우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 데이터 역시 OTT 중심의 구조 전환을 보여준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인베스트코리아가 202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OTT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5400억 달러 수준까지 성장했으며,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같은 자료에서 국내 OTT 이용률은 2020년 72.2%에서 2024년 89% 수준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OTT가 사실상 주요 미디어 소비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이 같은 환경에서 콘텐츠 제작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2024년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OTT 플랫폼은 제작비를 전액 투자하는 대신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는 구조를 취하는 경우가 많으며, 제작사는 일정 비율의 수익만을 보장받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이 플랫폼에 집중되는 구조라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구조적 전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이성민 교수는 미디어 산업 관련 논의에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대형 콘텐츠는 사실상 OTT 플랫폼을 전제로 제작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며 “국내 자본만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 제작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콘텐츠 성과에서도 OTT 영향력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은 2023년 공개 이후 글로벌 시청 순위 상위권에 오르며 한국 예능 포맷의 해외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이는 콘텐츠 유통 구조가 내수 중심에서 글로벌 동시 공개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제작비와 유통 구조 변화는 콘텐츠 기획 단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형 프로젝트의 경우 초기 기획 단계부터 OTT를 염두에 두거나, 지상파에서 제작이 어려운 기획안은 곧바로 OTT로 제안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지상파에는 기존 포맷 중심의 안정적인 프로그램이 남고, 새로운 시도는 OTT로 이동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지상파의 경쟁력 약화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지상파는 비교적 낮은 제작비로 장기간 운영 가능한 포맷을 구축하고 안정적인 시청층을 확보하는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예능 프로그램은 10년 이상 방송을 이어가며 고정 시청층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콘텐츠 시장이 경쟁 구도를 넘어 역할 분담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대형 제작비와 글로벌 유통을 전제로 한 콘텐츠는 OTT 중심으로, 안정성과 지속성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는 방송 중심으로 제작되는 이원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작비 격차가 만든 콘텐츠 이동은 단순한 플랫폼 경쟁을 넘어 산업 구조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OTT와 국내 방송사 간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콘텐츠 제작의 주도권이 어떤 방향으로 재편될지 주목된다.
[사진:넷플릭스 피지컬 100 포스터. 출처:넷플릭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