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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서 아랍커피 한잔… 낯선 문화와 마주 앉는 시대의 풍경

유리돔 아래 가을 햇살이 비친다.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 한켠, 이국의 향이 공기를 물들인다. 작은 잔에 담긴 연둣빛 커피가 손끝을 덥히고, 그 옆에는 윤이 나는 대추야자가 놓였다. ‘카흐와(Qahwa)’. 아라비아 반도에서 사막을 건너온 커피다. 한 모금의 쌉쌀한 맛이 이국의 온도를 전한다.

오는 25일, 국립중앙박물관은 주한 카타르대사관과 함께 ‘박물관에서 즐기는 카타르 문화 여행’을 연다. 행사장에는 카타르 전통 텐트 ‘베이트 알 샤르’가 세워지고, 참가자들은 유목민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텐트의 직물과 구조, 성별에 따른 공간 구분에는 사회적 상징이 깃들어 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검은 끈으로 고정하는 전통의상 ‘구트라(Ghutra)’와 ‘이칼(Agal)’ 착용법을 배워볼 수도 있다. 오후 2시에는 카타르 어린이 대표단이 전통 춤 공연을 펼친다. 사막의 전사 정신에서 비롯된 검무의 리듬이 서울 한복판에서 울린다.

박물관의 한 행사가 이토록 다양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이제 문화 공간이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경험의 플랫폼’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주한 외교공관과 협력, 문화 다양성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넓히고자 했다. 문화가 외교의 언어로 확장되는 장면이다.

카타르는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중동의 도시국가다. 유목의 기억이 남아 있는 사막 위에 세계적인 박물관이 세워지고, 전통시장 ‘수크 와키프(Souq Waqif)’의 향신료 냄새가 유리 빌딩의 스카이라인과 교차한다. 이번 행사는 그 ‘공존의 미학’을 서울로 옮겨온 셈이다.

최근 몇 년간 국립중앙박물관은 다양한 외국 대사관과 협력해 ‘세계문화주간’이나 ‘국가 문화의 날’ 같은 체험형 프로그램을 꾸준히 열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점차 단일문화에서 다문화 감수성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 공간은 국경을 넘어선 대화의 무대가 되었고, 시민들은 낯선 언어와 풍습 속에서 ‘다름’을 배운다.

카타르 이슬람예술박물관과의 협업으로 오는 11월 22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내 ‘이슬람실’도 문을 연다. 그동안 특별전으로만 접할 수 있던 이슬람 문화가 이제는 상설 전시로 자리 잡는다. 이것은 단순한 전시 확장이 아니라, 한국의 박물관이 ‘문화의 저장소’에서 ‘세계 시민의 교류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한 잔의 커피 속에는 수천 년의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관람객들이 카타르의 따뜻한 환대 문화를 직접 느끼길 바랍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의 말처럼, 이번 프로그램은 ‘보는 문화’에서 ‘함께 향유하는 문화’로의 전환을 예고한다.

이제 박물관은 과거를 보존하는 장소가 아니라 미래의 공존을 실험하는 실내 광장이다. 카흐와의 향이 남긴 여운처럼, 문화의 본질은 결국 낯선 것을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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