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연말 공연계, 창작 초연작 러시… 한국 무대예술, 상상력으로 세계와 만난다
2025년의 연말 무대는 유난히 ‘처음’이라는 단어로 가득하다. 전통과 현대, 신화와 과학, 그리고 한국적 정서가 결합된 창작 공연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국내 공연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다. 2025년 상반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과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 무대를 휩쓴 데 이어, 연말에는 ‘한국 이야기’를 무대 위에 새롭게 풀어내는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국립오페라단의 신작 오페라 ‘화전가’는 그 중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품은 작품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50년 봄, 경북 안동을 배경으로 여성들의 연대와 상처, 기다림을 그린다. 이념이 갈라놓은 시대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여인들의 이야기가 서정적 선율로 이어진다.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이 환갑을 맞은 주인공 김씨 역으로 무대에 오르며, 잔치 대신 화전놀이를 택한 여성들의 하루를 통해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온기를 보여준다.
성남문화재단의 창작오페라 ‘바람의 노래’는 작곡가 박태현의 동요를 바탕으로 한다. ‘산바람 강바람’, ‘누가누가 잠자나’ 등 익숙한 멜로디 속에 담긴 어린 시절의 순수를 오페라적 서사로 확장했다. 오는 11월 성남아트리움 대극장에서 열리는 이 공연은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한국 음악의 정체성과 감성을 재해석한다.
서울예술단은 연말 두 편의 창작가무극을 연달아 선보인다. 첫 작품 ‘전우치’는 조선 중종 시대의 실존 인물 전우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K-슈퍼히어로 서사다. 부패한 권력을 응징하고 백성을 구하는 전우치의 이야기를 도술과 환술로 시각화하기 위해 세계적인 일루셔니스트 이은결이 ‘매지컬 씬 디렉터’로 합류했다. 전우치 역은 단원 이한수와 그룹 하이라이트의 손동운이 맡아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유쾌한 영웅을 그린다. 이어 오는 11월 말 국립정동극장에서 개막하는 ‘청사초롱 불 밝혀라’는 조선판 웨딩플래너 이야기를 다룬다. “조선시대에도 웨딩 전문업체가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혼례 문화를 유쾌하고 따뜻하게 풀어낸다. 두 작품 모두 한국적 소재를 토대로 하되, 서사 구조와 무대 연출에서 현대적 감각을 녹여낸 점이 특징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EMK컴퍼니가 제작하는 창작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다. 2014년 출간된 이상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조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이 유럽으로 항해를 떠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는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다. 방송국 PD와 국어학 박사, 그리고 비밀스러운 비망록을 통해 현대와 과거가 교차하며, 조선과 유럽, 과학과 예술이 한 무대에서 뒤섞인다. 1막은 조선, 2막은 피렌체를 배경으로 하고, 배우들은 1인 2역으로 현실과 과거를 오간다. 박은태·전동석·고은성, 카이·신성록·이규형 등 국내 대표 뮤지컬 배우들이 캐스팅돼 기대를 모은다.
이처럼 올해 연말 공연계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신작이 많아서가 아니다.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키워드는 ‘창작’과 ‘서사’, 그리고 ‘확장’이다. 오페라, 뮤지컬, 가무극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창작물들이 한국적 정서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세계적인 스토리텔링을 시도하고 있다. 전통 서사의 재발견과 세계적 감수성의 결합, 바로 그 접점이 2025년 한국 공연예술의 흐름을 규정한다.
‘전우치’의 도술, ‘한복 입은 남자’의 시공간 교차, ‘화전가’의 여인들까지—이 모든 이야기 속에는 지금의 한국이 있다.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의 언어로, 지역의 정서를 세계의 무대로 옮겨내는 창작자들의 실험은 결국 ‘한국 공연예술의 자생력’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낯선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만든 이야기로 세계와 마주하는 시대. 2025년의 무대는 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