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널리 만들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호모 인플루언서’가 말하는 영향력의 설계

누구나 영상을 만들고, 누구나 채널을 열 수 있는 시대다. 생성형 AI까지 보편화되면서 콘텐츠 제작의 문턱은 더 낮아졌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해서 모두가 오래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어떤 창작자는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지만, 어떤 이는 하나의 장르가 되고 지속적인 신뢰를 얻는다. 신간 ‘호모 인플루언서’는 바로 그 차이가 어디에서 생기는지를 들여다본다.
이 책의 저자는 광운대 대학원 AI미디어솔루션학과 교수 이희대다. 방송과 OTT, 기업 영상 실무를 두루 거친 저자는 국내 뉴미디어 현장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와 플랫폼 관계자 약 70명을 인터뷰해 오늘의 인플루언서 생태계를 분석했다. 지무비, 제이키아웃, 킥서비스, 김단군, 이연, 대생이, 스맵, 박삐삐, 빙밍 등 다양한 사례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책은 이들의 성공담을 나열하기보다, 왜 어떤 채널은 오래 남고 어떤 채널은 금세 소모되는지를 구조적으로 짚는 데 더 집중한다.
저자가 보는 오늘의 인플루언서는 단순히 유명한 사람이 아니다. 책은 이들을 스스로를 기획하고, 시간과 관계, 무대와 규칙까지 설계하는 존재로 설명한다. 영향력은 우연히 생기는 결과가 아니라 축적과 선택, 반복 속에서 만들어지는 체계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책은 시간을 다루는 방식, 자아를 구축하는 법, 관계를 맺는 태도, 자신만의 포맷을 만드는 역량, 기존 문법을 흔드는 시도 등을 여러 갈래로 풀어낸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이 책이 흔히 주목받는 수치 중심의 평가를 앞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독자 수나 조회 수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보다, 왜 어떤 창작자가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는지를 묻는다. 꾸준함을 견딜 수 있는지,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지, 사람과의 연결을 만들어내는지, 자신만의 형식을 확보했는지, 익숙한 문법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는지 같은 질문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결국 영향력은 숫자의 크기보다 구조의 깊이에서 나온다는 해석이다.
이 책이 지금 더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덕분에 콘텐츠 생산 속도는 빨라졌고 형식적 완성도를 갖추는 일도 쉬워졌다. 그럴수록 오히려 대체하기 어려운 역량은 더 또렷해진다. 무엇을 말할 것인지, 어떤 관점으로 세상과 연결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설계할 것인지가 경쟁력을 가른다는 얘기다. 기술 자체보다 기술 이후를 설계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문제의식이 책 전반을 관통한다.
그래서 ‘호모 인플루언서’는 단순한 크리에이터 성공론으로 읽히지 않는다.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개인 브랜드와 신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플랫폼 시대의 영향력은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는지를 설명하는 분석서에 가깝다.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은 물론이고, 마케팅과 미디어, 교육 분야에서 콘텐츠와 대중의 접점을 고민하는 실무자들에게도 참고할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이 던지는 결론은 비교적 분명하다. 이제 영향력은 재능 하나나 운 좋은 알고리즘의 결과로 설명되기 어렵다. 오래 남는 창작자는 결국 자신만의 시간과 정체성, 관계와 형식을 스스로 설계해낸 사람들이다. AI 시대일수록 더 희소해지는 것은 생산 능력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고 신뢰를 쌓는 힘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