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산업

AI 학습 저작권 첫 충돌…지상파-네이버 소송, ‘공정이용’이 판 가른다

[방송3사 로고]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학습 데이터로 뉴스 콘텐츠를 활용하는 문제를 둘러싼 국내 첫 법정 공방이 ‘공정이용’이라는 핵심 쟁점으로 수렴하고 있다. 법원이 직접 항변 제출을 요구하면서 기술 활용과 저작권 보호의 경계를 가르는 판단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3민사부는 22일 지상파 3사가 네이버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 3차 변론에서 “공정이용 항변은 불가피하다”며 관련 주장과 근거 제출을 요구했다. 재판부가 쟁점을 명확히 특정하면서 소송의 축이 법리 판단으로 이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사건은 AI 학습 과정에서 뉴스 콘텐츠 활용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를 다투는 국내 첫 사례다. 지상파 3사는 자사 기사가 생성형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됐다고 주장하고 있고, 네이버는 이용 약관과 데이터 활용 범위 내 행위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간 양측은 뉴스 이용 권한 범위와 대가 지급,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보호 여부 등을 놓고 충돌해 왔다. 그러나 3차 변론에서는 쟁점이 ‘공정이용 인정 여부’와 ‘침해 저작물 특정’으로 좁혀졌다.

특히 저작물 특정 문제는 AI 시대 저작권 분쟁의 구조를 드러낸다. 지상파 측은 약 9만7000건의 기사 목록을 제출하고 전체 피해 규모가 500만~600만 건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네이버 측은 개별 기사 특정이 이뤄져야 방어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현실적 한계를 고려해 절충안을 제시했다.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이 아닌 사실 전달 중심 시사보도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특정 범위를 설정하고, 개별 판단은 재판부가 맡는 구조다. 이는 AI 학습 특성상 개별 저작물 단위로 침해를 판단하기 어려운 점을 반영한 조치로 해석된다.

결국 핵심은 공정이용 판단으로 넘어간다. 공정이용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일정 범위 내 활용을 허용하는 법리로, 일반적으로 이용 목적, 저작물 성격, 이용된 분량, 시장 영향 등 네 가지 요소를 종합해 판단한다. 문제는 AI 학습이 이 기준에 명확히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뉴스 콘텐츠의 특수성도 변수다. 사실 전달을 중심으로 하는 시사보도는 저작권 보호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지만, 기사 구성과 문장, 편집에는 창작성이 인정된다. AI가 학습하는 대상이 단순 사실인지, 표현까지 포함된 콘텐츠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양측은 해외 사례를 두고도 엇갈린 해석을 내놓고 있다. 지상파 측은 미국에서 AI 기업 앤스로픽이 저작권 소송 끝에 15억 달러 규모 합의에 이른 사례를 들어 무단 학습이 침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네이버 측은 해당 사례가 불법 다운로드 문제와 결합된 사안이라며 AI 학습 자체와는 구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번 소송은 산업 구조 충돌 성격을 띤다. 언론사는 기사 생산 비용과 저작권 보호를 강조하고, 플랫폼과 AI 기업은 데이터 활용과 기술 발전 필요성을 내세운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콘텐츠 생산자와 기술 기업 간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구조다.

판결 결과에 따라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도 크다. 공정이용이 폭넓게 인정될 경우 AI 기업의 데이터 활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반면 콘텐츠 생산자의 수익 기반이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공정이용이 제한적으로 인정될 경우 AI 학습 데이터 확보 비용이 증가하고, 기업 간 라이선스 계약이 필수 구조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언론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수익 모델이 될 수 있지만, 중소 AI 기업에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간 지점도 가능하다. 사실 정보와 표현 영역을 구분해 부분적으로 공정이용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뉴스 데이터 활용 기준이 세분화되면서 산업 전반의 규칙이 재정립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재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AI 학습과 저작권의 경계를 직접 다루는 사례다. 공정이용 판단 기준이 제시될 경우 향후 플랫폼, 언론사, AI 기업 간 계약 구조와 데이터 거래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다음 4차 변론은 4월 9일 열린다. 법원이 어떤 기준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기술 발전과 콘텐츠 보호 사이의 균형점이 달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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