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낯선 이와 수박을 반으로…소분이 일상이 된 한국 사회

 ‘더현대 서울’ 식품관 ‘프레쉬 테이블’ 직원이  수박을 손질하고 있다.현대백화점

여름날 마트에서 커다란 수박 앞에 서 있다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경험은 이제 꽤 많은 사람의 일상이 됐다. 먹고 싶기는 한데 너무 크고, 들고 가기도 버겁고, 집에 가져가 잘라 보관하는 일까지 생각하면 쉽게 장바구니에 담기지 않는다. 한때 풍요의 상징처럼 보였던 대용량 식재료가 이제는 누군가에게 부담의 다른 이름이 된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퍼지고 있는 ‘소분 모임’은 바로 이 달라진 감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분 모임은 말 그대로 대용량의 음식이나 꽃, 생활용품 등을 함께 사서 나누는 모임이다. 코스트코에서 연어를 사 와 접선 장소에서 칼과 저울, 포장 용기를 꺼내 각자 몫으로 나누고, 남대문 꽃시장에서 한 단씩 파는 꽃을 여러 사람이 함께 사 5분의 1씩 챙겨가는 식이다. 서로 잘 아는 사이일 필요도 없다. 당근이나 단체 채팅방에서 만나고, 목적을 달성하면 곧바로 흩어진다. 느슨하지만 효율적이고, 낯설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 풍경은 지금 한국의 생활 방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소분 모임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지 절약의 기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더 근본적인 사회 변화가 배어 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1~2인 가구는 예외가 아니라 표준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며 큰 냄비로 찌개를 끓이고, 과일 한 통을 금세 비우고, 꽃 한 단도 아깝지 않게 나누던 생활 방식은 빠르게 옛 풍경이 되고 있다. 하지만 시장과 유통의 기준은 여전히 다인 가구의 관성 위에 놓여 있다. 한 단으로만 파는 꽃, 한 통으로만 사야 하는 수박, 대용량 위주로 구성된 할인 체계가 그렇다. 소분 모임은 개인의 기발한 요령이 아니라, 생활 구조와 소비 구조 사이의 어긋남을 메우기 위해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적응 방식에 가깝다.

이 흐름은 소비의 기준이 ‘많이 사서 오래 쓰는 것’에서 ‘필요한 만큼만 정확히 사는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대용량 구매가 경제성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보관과 처리, 소비 속도까지 고려한 소량 구매가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수박 한 통을 싸게 사는 것보다 손질된 6분의 1조각을 비싸게 사는 편이 오히려 덜 번거롭고 덜 낭비적일 수 있다. 가격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노동과 시간, 체력과 스트레스의 비용이 소비 판단에 함께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과일을 잘라 포장해 주거나, 식재료를 손질해 소분 판매하는 서비스가 인기를 끄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무조건 싼 것을 찾기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형태의 상품을 찾는다. 유통업계도 이제는 ‘가성비’만이 아니라 ‘관리 가능성’을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소분은 단순한 판매 단위가 아니라, 바뀐 가구 구조와 생활 리듬에 맞춘 새로운 서비스 언어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소분 모임이 낯선 사람과의 관계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공동체가 정서와 친분을 바탕으로 움직였다면, 지금의 소분 모임은 목적과 효율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친해지기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눌 필요가 있기 때문에 만난다. 그리고 목적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해산한다. 차갑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실용적 연대라고도 할 수 있다. 과도한 친밀감 없이도 필요한 순간에 연결되고, 서로의 생활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비용과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이것 역시 1~2인 가구 시대가 만들어낸 관계의 한 형태다.

결국 소분 모임의 유행은 사소한 생활 트렌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한국 사회의 표준 가구가 달라졌고, 표준적인 소비의 단위도 달라져야 한다는 신호다. 수박 한 통이 너무 크고, 꽃 한 단이 너무 많고, 대용량 식재료가 오히려 비경제적으로 느껴지는 시대라면 시장도 그 변화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소분은 더 이상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 되고 있다.

낯선 사람이 다가와 “수박 한 통 사서 반씩 나눌까요?”라고 묻는 장면은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풍경인지도 모른다. 그 한마디 안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생활 감각, 커진 노동의 부담, 달라진 소비의 기준, 그리고 새로운 방식의 연결이 함께 들어 있다. 이제는 무엇을 얼마나 크게 파느냐보다, 얼마나 잘 나누어 팔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다. 소분은 유행이 아니라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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