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AI 안내방송 검토 논란…성우단체 “동의 없는 음성 활용 안 돼”

서울교통공사의 지하철 안내방송 인공지능(AI) 활용 검토를 두고 성우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쟁점은 단순한 기술 도입 여부가 아니라, 실제 인물의 목소리를 본인 동의 없이 AI 학습이나 음성 재현에 사용할 수 있느냐는 데 모이고 있다.
한국성우협회는 2일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와 공동 성명을 내고, 서울교통공사가 강희선 성우의 목소리를 당사자 동의 없이 AI로 학습·활용해 대체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이를 저작권과 인격권, 윤리 문제를 동시에 수반하는 사안으로 규정하며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강희선 성우는 약 29년간 서울 지하철 역사 안내방송을 맡아온 인물로, 오랜 기간 시민에게 익숙한 목소리로 알려져 있다. 최근 암 투병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황에서 AI 대체 검토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성우단체는 특히 투병 중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둘러싸고 충분한 동의 절차 없이 기술 도입이 거론된 점에 문제를 제기했다.
단체 측은 인간 성우의 음성을 생성형 AI로 재현하려면 무엇보다 본인의 명시적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한 녹음물 사용을 넘어, 개인의 고유한 음성 정체성과 직업적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와도 연결되는 문제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음성을 학습 데이터처럼 취급하는 방식은 앞으로 방송, 광고, 공공안내 등 여러 분야에서 유사한 갈등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서울교통공사는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기존에 안내방송을 맡았던 성우의 동의 없이 해당 목소리를 AI TTS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공사 측은 기존 성우와 녹음 진행이 어려운 경우를 대비해 여러 방안을 검토한 것일 뿐이며, AI TTS 도입 역시 확정된 사안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논란의 핵심은 실제로 어떤 수준의 검토가 있었는지, 그리고 공공기관이 AI 음성 기술을 도입할 때 당사자 권리 보호 원칙을 얼마나 명확히 세우고 있었는지로 좁혀진다. 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당사자 동의와 법적 검토, 윤리 기준이 충분히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AI 대체 가능성이 공개된 것 자체가 업계의 불신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논란은 AI가 인간의 노동과 표현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들게 한다. 특히 성우의 목소리는 단순한 음성이 아니라 오랜 훈련과 개성, 직업적 성과가 축적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기술 대체와는 다른 민감성을 지닌다. 공공서비스 효율성과 비용 절감 논리가 앞서더라도, 당사자의 권리와 동의 절차가 빠진 AI 활용은 사회적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결국 이번 사안은 서울교통공사 한 기관의 검토 논란을 넘어, AI 시대에 음성의 소유와 사용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를 묻는 사례가 됐다. 기술 도입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누구의 권리를 기반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