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아리랑’으로 다시 쓴 AMA 역사…남은 마지막 관문은 그래미

[방탄소년단 공식 엑스(X·옛 트위터).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의 중심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BTS는 25일 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제52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에서 대상 격인 ‘올해의 아티스트’에 올랐다. 2021년 아시아 가수 최초로 같은 상을 받은 데 이어 두 번째 수상이다. AMA가 올해 행사에 앞서 BTS의 4년 만의 시상식 출연을 공식 발표했고, ‘올해의 아티스트’ 부문 후보에 BTS를 포함한 사실도 공개한 만큼, 이번 수상은 군 공백기 이후 완전체로 복귀한 BTS의 현재 위상을 확인시키는 상징적 장면이 됐다.
이번 수상이 더 크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성과의 배경에 있다. 첫 AMA 대상 당시 BTS를 정상에 올린 곡은 영어 싱글 ‘버터’였다. 반면 올해 이들의 중심에는 한국적 정서를 전면에 내건 정규 5집 ‘아리랑’이 있다. 빅히트뮤직은 지난 1월 위버스를 통해 ‘ARIRANG’의 3월 20일 발매를 예고했고, 이후 이 앨범은 BTS가 군 복무로 인한 긴 공백을 끝내고 내놓은 첫 완전체 정규작으로 주목받았다. AP통신도 이 앨범을 BTS가 병역 의무를 마친 뒤 선보이는 본격적인 복귀작으로 소개했다.
‘아리랑’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한국인의 이별, 그리움, 회복의 정서를 품은 민요를 글로벌 팝 앨범의 제목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BTS는 이번 앨범을 통해 K팝의 세계화가 반드시 탈한국화와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가디언은 BTS가 새 앨범명으로 ‘아리랑’을 택한 것을 두고 한국 문화적 뿌리를 다시 강조하는 선택으로 해석했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 대중음악이면서도 한국적 상징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성과도 빠르게 따라왔다. ‘아리랑’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3주 연속 1위를 기록한 뒤 4월 말 순위가 내려갔고, 타이틀곡 ‘SWIM’은 빌보드 ‘핫 100’ 정상에 오르며 BTS의 미국 차트 경쟁력을 다시 증명했다. 한국일보 영문판과 코리아중앙데일리는 각각 ‘아리랑’의 빌보드 200 3주 연속 1위 기록과 이후 순위 변동을 전하며, 이 성과가 K팝 역사에서 이례적인 장기 흥행이었다고 짚었다.
AMA는 팬 투표의 영향력이 강한 시상식으로 평가된다. 올해 AMA 공식 투표 페이지 역시 ‘세계 최대 팬 투표 시상식’이라는 점을 내세웠고, 2026년 행사가 CBS와 파라마운트+를 통해 생중계된다고 안내했다. 후보 선정과 최종 수상 과정에서 대중적 지지와 팬덤 동원이 중요한 만큼, BTS의 두 번째 대상은 단순히 음원 성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군 복무로 완전체 활동이 멈췄던 기간에도 팬덤 ‘아미’의 결속력이 유지됐고, 복귀 이후에는 그 에너지가 차트와 투표, 투어 열기로 동시에 분출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라는 장소도 상징성을 더했다. BTS는 AMA를 전후해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월드투어 ‘아리랑’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빅히트뮤직 공식 투어 일정에 따르면 BTS는 5월 23·24일에 이어 27·28일에도 라스베이거스 공연을 진행한다. 시상식장과 스타디움 공연장, 도시형 팬 이벤트가 한데 맞물리면서 라스베이거스는 며칠 동안 BTS의 복귀를 체감하는 거대한 쇼케이스가 된 셈이다.
BTS의 이번 AMA 대상은 ‘복귀 성공’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K팝의 글로벌 성공 공식이 한동안 영어 싱글, 짧은 숏폼 친화적 후렴, 팝 시장 문법에 맞춘 사운드로 설명됐다면, ‘아리랑’ 이후의 BTS는 정체성 자체를 경쟁력으로 삼는 단계에 들어섰다. 한국어와 한국적 소재, 민요의 정서, 현대 팝 프로덕션을 한 앨범 안에 결합해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의 가장 큰 상을 다시 받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전략은 한층 분명해졌다. 세계 시장에 맞추되, 자신들의 출발점을 지우지 않는 방식이다.
이제 시선은 그래미로 옮겨간다. BTS는 이미 AMA, 빌보드 뮤직 어워즈 등 미국 주요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성과를 거뒀지만, 그래미 트로피와는 아직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래미는 팬 투표 중심의 AMA와 달리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의 심사를 통해 수상자를 가린다. 상업적 파급력만큼이나 음악적 완성도, 장르적 설득력, 동료 음악인들의 평가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무대다.
제69회 그래미 어워즈는 2027년 2월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릴 예정이며, 후보는 2026년 11월 16일 발표된다. AP통신은 제69회 그래미의 대상 기간이 2025년 8월 31일부터 2026년 8월 28일까지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2026년 3월 발매된 BTS의 ‘아리랑’은 이번 그래미 시즌 심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관건은 ‘아리랑’이 그래미 유권자들에게 어떤 작품으로 읽히느냐다. 대중성만 놓고 보면 BTS는 이미 미국 시장에서 검증을 마쳤다. 문제는 그래미가 선호해 온 서사, 즉 아티스트의 성장과 음악적 전환, 동시대적 의미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보여주느냐다. ‘아리랑’은 이 점에서 유리한 카드와 부담을 동시에 안고 있다. 한국적 정체성을 전면에 세운 시도는 분명 강렬하지만, 그 상징성이 음악적 완성도와 자연스럽게 결합됐다는 평가를 얻어야 본상 후보 또는 주요 팝 부문 수상 가능성이 커진다.
BTS가 그래미에서 노릴 수 있는 현실적 경로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같은 장르 부문에서 수상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BTS는 앞서 ‘다이너마이트’, ‘버터’, 콜드플레이 협업곡 ‘마이 유니버스’ 등으로 그래미 후보에 오른 경험이 있다. 다른 하나는 ‘올해의 앨범’이나 ‘올해의 레코드’ 등 본상 후보에 진입하는 것이다. 후자는 경쟁이 훨씬 치열하지만, ‘아리랑’이 단순한 컴백 앨범을 넘어 K팝의 정체성과 글로벌 팝의 결합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번 AMA 대상은 BTS의 영향력이 군 공백기 이후에도 약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긴 공백은 많은 글로벌 팝스타에게 치명적일 수 있지만, BTS에게는 오히려 서사를 두껍게 만드는 시간이 됐다. 멤버들은 솔로 활동과 병역 이행을 거쳐 30대 아티스트로 돌아왔고, 팬덤은 기다림을 소비가 아닌 재결집의 계기로 바꿨다. ‘아리랑’은 그 기다림 이후 나온 첫 공동 선언에 가깝다.
BTS의 다음 목표가 그래미라면, 이번 AMA는 종착지가 아니라 징검다리다. 팬덤의 힘을 확인한 시상식에서 동료 음악인들의 평가가 중심이 되는 시상식으로, 대중적 아이콘에서 음악사적 평가의 대상으로 이동하는 길목에 선 것이다. ‘버터’로 미국 팝 시장의 문을 열었던 BTS는 이제 ‘아리랑’으로 자신들의 언어와 정체성을 앞세워 더 높은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래미가 그 문을 열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BTS가 다시 한 번 K팝의 질문을 바꿔놓았다는 점이다. 이제 질문은 “K팝이 미국에서 통할까”가 아니라 “한국적 정체성을 품은 글로벌 팝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