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

휴머노이드 시대 소환된 백남준…60년 전 ‘로봇 K-456’ 다시 움직였다

[백남준이 1984년 NHK의 ‘일요 미술관’에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 <백남준아트센터>]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 기술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반세기 전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예술로 다뤘던 백남준의 로봇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술 변화와 맞물리며 과거 작업이 현재적 의미를 얻는 흐름이다.

백남준아트센터는 1월 28일 경기 용인에서 작동 기능을 복원한 ‘로봇 K-456’을 처음 공개했다. 백남준 서거 20주기를 앞두고 진행된 복원이다.

로봇 K-456은 백남준이 공학자 슈야 아베와 함께 1964년 제작한 작품이다.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서 처음 공개됐으며, 현대미술사에서 초기 형태의 이동형 로봇으로 평가된다. 당시 작품은 원격 조종으로 움직이며 실제 거리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로봇은 기계가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매체로 사용됐다. 입에 장착된 스피커에서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연설이 재생됐고, 콩을 배출하는 장면을 통해 인간과 기술, 권력에 대한 풍자를 시도했다.

1965년에는 ‘로봇 오페라’ 퍼포먼스로 확장됐다. 로봇과 음악, 퍼포먼스를 결합한 형태로, 기술을 공연 예술로 끌어들인 초기 실험으로 기록된다. 이후 1982년 뉴욕에서는 자동차에 로봇이 치이는 장면을 연출했다. 백남준은 이를 “21세기 최초의 참사”라고 표현했다. 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낸 작업으로 평가된다.

당시 백남준의 작업은 기술 실험을 넘어 국제 미술계에서 새로운 매체 예술의 출발점으로 평가받았다. 1960년대 뉴욕 아방가르드 미술계에서는 텔레비전과 전자장치를 예술로 끌어들인 시도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기존 회화와 조각 중심의 미술 문법을 벗어나 전자매체를 활용한 작업으로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정립한 인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로봇 K-456과 같은 작업은 기술을도구가 아닌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당시 평단에서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 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예술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실험적 시도로 평가했다. 전자기술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방식은 이후 미디어아트와 인터랙티브 아트의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1970~80년대에 들어서는 백남준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제도권 미술관에 수용됐다. 뉴욕 휘트니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 주요 기관에서 전시가 이어졌고, 위성 중계를 활용한 글로벌 퍼포먼스 작업은 미디어 환경 변화와 맞물려 주목을 받았다.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선구적 사례로 평가되며 국제 미술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미디어아트와 디지털아트가 주요 예술 장르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백남준의 작업은 기술 기반 예술의 출발점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확산되는 환경에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다뤘던 초기 작업의 의미가 다시 부각되는 흐름이다.

이번 복원은 외형 보존이 아니라 작동 복원을 목표로 진행됐다. 과거 기술 협업자였던 슈야 아베의 회로도와 매뉴얼을 기반으로 재구성했다. 백남준아트센터의 소장품 관리 지침인 ‘예술-기술 보고서’ 기준이 적용됐다.

복원된 로봇은 퍼포먼스 형태로 공개됐다. 미디어아티스트 권병준이 참여한 ‘유령극단×로봇 K-456: 다시 켜진 회로’는 1965년 ‘로봇 오페라’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공연이다. 여러 로봇이 등장하는 마당극 형식으로 구성됐다.

공연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시나리오 제작이 병행됐다. 다양한 형태의 로봇들이 춤과 움직임을 수행한 뒤, 무대 뒤편에서 로봇 K-456이 등장하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과거 기술과 현재 기술이 동일한 무대에서 결합된 구조다.

권병준 작가는 공연 이후 설명에서 “생산성을 위한 로봇이 아니라 백남준의 실험성과 파격을 이어가는 작업”이라며 “과거와 현재 로봇이 만나는 서사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로봇이 다시 걸음을 시작하는 장면을 통해 백남준의 귀환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번 복원은 재현을 넘어 시대 변화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산업 현장에서 활용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확산되는 시점에,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예술적으로 탐구했던 작업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같은 날 “로봇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과정 자체가 백남준의 시대를 현재로 끌어오는 작업”이라며 “수장고에 있던 작품이 작동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백남준은 인터넷과 글로벌 미디어 환경을 예견했던 인물”이라며 “AI 시대 역시 연속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로봇 복원에 그치지 않는다. 2월 22일까지 진행되는 개인전 ‘전지적 백남준 시점’에서는 과거 인터뷰 영상과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백남준이 기술과 시간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성이다.

전시장에는 ‘달은 가장 오래된 TV’, ‘비디오 샹들리에 No.1’, ‘TV 피아노’ 등이 포함됐다. 비디오와 전자기술을 매체로 활용한 실험이 중심을 이룬다. 영상 인터뷰에서는 기술을 예술 언어로 전환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올해를 기점으로 관련 프로그램을 확대할 계획이다. 7월에는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을 열고 후기 작업을 조명하는 ‘백남준의 행성’ 전시를 진행한다. 퍼포먼스와 상영, 교육 프로그램도 연계한다.

이번 로봇 복원은 과거 작품의 재현을 넘어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다시 묻는 계기가 됐다. 인간을 닮은 기계가 산업 현장에 들어온 현재, 백남준이 던졌던 질문 역시 다시 호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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