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문제 확대

맥스 베이저먼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2025년 8월 출간한 우리는 어떻게 공범이 되는가에서 사회적 문제의 배경으로 ‘공범 구조’를 제시했다.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다수의 방관이 결합되면서 피해가 확대된다는 분석이다.
대표 사례로는 테라노스 사건이 언급된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는 소량의 혈액으로 다양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2015년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로 기술의 허점이 드러났고, 이후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베이저먼은 이 사건의 원인을 한 개인의 기만으로만 보지 않는다. 투자자와 이사회, 내부 구성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문제를 인지하거나 의심했음에도 이를 중단시키지 못한 구조가 결합됐다고 분석한다. 일부는 위험을 인지하고도 판단을 미뤘고, 일부는 조직 내 위치를 고려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유사한 구조는 다른 사건에서도 반복된다. 미국에서 장기간 이어진 오피오이드 남용 사태는 제약사 퍼듀 파마와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마케팅 전략, 의료기관의 처방 관행이 맞물리며 확산됐다. 1999년 이후 수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배경에는 특정 기업뿐 아니라 다수 행위자의 역할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책은 공모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이익을 공유하는 ‘명백한 공모’, 다른 하나는 일상 속에서 인식하지 못한 채 발생하는 ‘일상의 공모’다. 특히 후자의 경우 개인이 자신이 공범이 됐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들이 공모에 가담하는 이유로 권위에 대한 복종, 보상 기대, 조직 내 관계 유지, 불확실성 회피 등을 제시한다. 문제를 인지하고도 행동하지 않는 ‘방관’ 역시 결과적으로는 공모와 동일한 효과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구조는 조직과 사회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권한을 가진 소수가 문제를 주도하고, 다수는 이를 제지하지 못하거나 침묵하는 방식이다. 베이저먼은 “한두 명이 대규모 피해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공범 구조의 존재를 강조한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논의는 이어지고 있다. 조직 내 위법 행위나 부당한 의사결정이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 내부 구성원의 침묵과 방관이 문제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4년 발표한 공익신고 관련 자료에서도 신고 이후 불이익을 우려하는 응답 비율이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공모 구조를 줄이기 위해서는 제도와 문화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윤리경영 연구자는 “문제를 인식하고도 행동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이익에 대한 우려”라며 “신고자 보호 제도와 함께 조직 내부에서 문제 제기가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환경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나타난다. 온라인 공간에서 허위 정보나 비윤리적 콘텐츠가 확산되는 과정 역시 다수 이용자의 소비와 공유를 통해 구조적으로 강화된다. 개인의 단순 참여가 결과적으로 문제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상의 공모’ 개념이 적용된다는 분석이다.
책은 해결 방안으로 개인의 윤리적 판단과 조직 차원의 구조 개선을 동시에 제시한다. 의사결정 상황에서 행동 기준을 미리 설정하고, 집단 내에서 문제 제기가 가능한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동료 간 연대나 외부 감시 역시 공모 구조를 줄이는 요소로 제시된다.
다만 이러한 대안이 현실에서 쉽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지적된다. 조직 내 권력 구조와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는 개인의 판단만으로 행동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저자는 “침묵도 하나의 행위”라고 강조한다.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문제를 인지하고도 행동하지 않는 순간, 공모 구조에 편입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인의 일탈로 보였던 사건이 반복적으로 구조 문제로 확장되는 상황에서,공모의 경계와 책임의 기준을 둘러싼 질문이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