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보다 먼저 ‘출근 연습’…고립 청년 위한 가상회사
회사인데 월급도 없고 실적도 요구하지 않는다. 정해진 업무도 없다. 대신 매일 출근을 인증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실제 공간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
서울 서대문구가 지난 8월 24일부터 운영을 시작한 ‘니트컴퍼니 서대문점’ 이야기다. 고립·은둔 상태에 있거나 취업·교육·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니트 청년을 대상으로 만든 가상회사로, 서대문구에 거주하거나 생활권을 둔 19~39세 청년 33명이 참여한다. 프로그램은 10월 19일까지 이어진다.
참여자들은 실제 회사원처럼 주 5일 온·오프라인으로 출퇴근을 인증한다. 이 가운데 주 1회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서대문청년창업센터 등으로 직접 출근한다. 회사에서 무엇을 할지는 각자가 정한다. 자기돌봄과 진로탐색, 자기계발, 사회활동처럼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업무’로 삼는다. 동료들과 함께하는 사내클럽과 지역 체험활동도 운영된다.
형식만 보면 취업 프로그램과 비슷하지만 목표는 다르다. 좋은 이력서를 만드는 것도, 면접 기술을 익히는 것도 아니다. 우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집 밖으로 나가고, 낯선 사람과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부터 다시 익히는 프로그램에 가깝다.
취업지원만으로는 닿기 어려운 청년들
청년정책에서 가장 익숙한 방식은 취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직업훈련과 자격증 교육, 일경험, 구직수당, 기업 채용장려금처럼 대부분의 정책은 노동시장에 얼마나 빨리 진입하느냐를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고립이나 은둔 상태가 길어진 청년에게는 취업교육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높은 문턱이 될 수 있다.
하루 생활리듬이 무너지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워진 상황에서 곧바로 정해진 시간에 교육장을 찾고, 낯선 사람과 경쟁하며, 면접을 준비하라고 요구하면 정책에 들어오는 것부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고립·은둔 청년 지원에서 초기 단계의 목표를 곧바로 취업으로 두지는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지원방향에도 초기 상담과 심리·정서 지원, 생활습관 회복, 관계 형성과 자조모임 등을 거친 뒤 청년성장프로젝트나 청년도전지원사업 같은 일경험·취업 프로그램으로 연계하는 단계가 포함돼 있다.
니트컴퍼니가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이 중간 단계에 있다.
‘회사 흉내’를 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가상회사라는 이름은 다소 낯설지만 프로그램의 구조를 보면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리듬을 다시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참여자는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기록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집 밖의 공간으로 직접 나간다. 함께 참여하는 사람을 동료라고 부르고, 각자가 하고 싶은 활동을 ‘업무’로 정한다.
실제 직장의 형식을 빌렸지만 평가와 경쟁은 뺐다.
취업 상태와 완전한 은둔 상태 사이에 일종의 연습공간을 만든 셈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느냐보다 정해진 약속을 지키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을 견디고, 스스로 하루의 목표를 세우는 경험일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런 행동이 오랜 고립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능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대문구 역시 이 프로그램의 목표를 취업 성과가 아니라 일상과 관계의 회복에 두고 있다. 프로그램 전후로 소그룹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실시해 생활과 인간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고 향후 지원정책에 활용할 계획이다.
고립이 길어질수록 복귀 비용도 커진다
고립·은둔 문제를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회로 돌아가는 과정도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립·은둔 청년을 장기간 방치할 경우 경제활동 중단과 사회서비스 비용 등을 포함한 사회적 손실이 연간 약 7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한 바 있다. 그래서 고립 정도에 따라 심리·정서 지원과 생활회복, 관계형성, 가족지원, 일경험 등을 단계적으로 제공하는 지원체계를 구축해왔다.
한동안 집 밖에 나오지 않았던 사람이 취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일자리 정보만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생활리듬을 되찾아야 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경험을 다시 쌓아야 하며,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감각도 필요하다.
반대로 이 과정 없이 취업 성과만 요구하면 다시 중도에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취업에 성공했느냐보다 사회와 연결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느냐를 먼저 봐야 한다는 접근이 나오는 이유다.
고립 청년 정책도 ‘몇 명 취업했나’만 봐서는 안 된다
문제는 기존 청년정책의 성과 측정방식이다.
취업지원 사업은 비교적 평가하기 쉽다. 몇 명이 교육을 수료했고, 몇 명이 취업했으며, 얼마나 오래 근무했는지를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복귀 과정은 그렇게 단순하게 측정하기 어렵다.
주 1회 밖에 나오던 사람이 주 3회 외출하게 됐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이 늘었거나, 스스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면 분명한 변화지만 취업률에는 잡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고립·은둔 청년 지원에서는 취업 여부와 함께 생활리듬과 관계망, 자기효능감, 사회활동 참여 정도처럼 중간 단계를 평가할 기준이 필요하다.
서대문구가 이번 프로그램에서 참여 전후 인터뷰와 설문을 진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단순히 프로그램 참여자 가운데 몇 명이 취업했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관계가 실제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지원은 결국 노동시장과 연결돼야 한다
그렇다고 사회복귀 프로그램이 취업과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
고립 상태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안정적인 소득과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다시 사회관계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상회사 같은 프로그램은 종착점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연결구간으로 보는 편이 맞다.
정부도 고립·은둔 청년의 사회복귀 이후에는 청년도전지원사업이나 일경험 프로그램 등 기존 고용정책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두고 있다. 올해도 미취업 청년을 실제 기업과 사회연대경제 조직에서 일하도록 지원하는 여러 일경험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청년에게 같은 출발선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력서 한 장을 고치는 것이 취업의 첫 단계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침 10시에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그보다 먼저 필요한 단계일 수 있다.
취업률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이 있다
니트컴퍼니 서대문점은 33명이 참여하는 두 달 남짓의 작은 지역사업이다. 이 프로그램 하나로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사업이 던지는 질문은 작지 않다.
지금까지 청년정책은 취업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어떻게 일자리로 보낼 것인가’부터 고민했다. 하지만 고립이 깊어진 청년에게는 취업보다 먼저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고, 약속시간을 지키고, 사람을 만나고, 작은 일을 스스로 정해 끝내는 경험이 쌓여야 그다음 단계인 교육과 취업도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 고립 문제를 줄이려면 일자리 숫자만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사회와 거리가 멀어진 사람에게는 다시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
이번 가상회사가 보여주는 것도 결국 그 지점이다.
취업을 재촉하기 전에 출근부터 연습하고, 성과를 요구하기 전에 일상을 회복하게 하는 것.
청년정책에서 필요한 것은 모두를 같은 속도로 노동시장에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출발점에서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중간 단계를 만드는 일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