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외우는 역사에서 판단하는 역사로…AI 시대 역사교육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

서울대학교 역사학부가 위치한 인문대학 14동. 최근 서울대에는 학교 역사교육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역사교육지원연구센터가 문을 열었다. / 사진=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에 학교 역사교육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역사교육지원연구센터’가 문을 열었다. 교육부는 지난 8월 25일 서울대 교육종합연구원에 설치된 이 센터가 역사·교육 학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탐구 중심 수업, 역사 체험, 교사 역량 강화, 역사교육 기반 구축 등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틀 뒤인 27일에는 교육부와 독립기념관이 학교 역사교육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최근 며칠 사이 역사교육 관련 정책이 잇따라 나온 배경에는 단순히 학생들이 역사를 더 많이 배우게 하겠다는 목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는 이미 지난 2월 ‘학교 역사교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역사 왜곡과 부정이 교실 안으로까지 유입되고 있다고 진단했고, 학생들이 여러 관점에서 역사적 자료를 탐구하고 토론하면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역사교육의 방향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 흐름을 보면 지금 역사교육이 마주한 질문은 분명하다.

검색하면 사건의 연도와 인물, 전쟁의 원인과 결과까지 몇 초 안에 확인할 수 있고, 생성형 AI가 복잡한 역사까지 짧게 요약해주는 시대에 사람은 왜 여전히 역사를 배워야 할까.

예전에는 역사 공부를 ‘많이 기억하는 것’과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왕의 이름과 사건의 연도, 조약의 명칭을 외우고 시험에서 정확하게 답하는 능력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기도 했다. 물론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본 지식은 여전히 필요하다. 어떤 사건이 언제, 어떤 맥락에서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하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역사교육에 요구되는 능력도 바뀌고 있다.

이제 연도를 모른다고 해서 정보를 찾지 못하는 시대가 아니다. 휴대전화에 검색어 몇 글자를 입력하면 바로 답이 나오고, AI에게 질문하면 여러 사건을 연결한 설명까지 받을 수 있다. 오히려 더 어려운 문제는 그 답이 맞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같은 역사적 사건이라도 어떤 자료를 선택하고 어떤 부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전쟁을 승리한 국가의 시각에서 볼 것인지, 패배한 국가의 시각에서 볼 것인지, 정치 지도자의 기록을 중심으로 볼 것인지 평범한 시민의 경험을 중심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역사의 모습은 달라진다.

그래서 역사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사실의 축적보다 ‘왜 이런 설명이 나왔는가’를 묻는 능력이다.

누가 기록했는지, 어떤 시대에 작성됐는지, 작성자는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 다른 자료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이 역사적 사고의 핵심이다.

교육부가 올해 역사교육 정책에서 ‘탐구’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와 맞닿아 있다.

지난 2월 발표된 학교 역사교육 활성화 방안에는 탐구 중심 수업 사례 개발, 학생 참여형 역사 수업자료 제공, 여러 기관에 흩어진 근현대사 사료와 체험자료를 모으는 역사교육 자료 아카이브 구축 등이 포함됐다. 전국 단위 역사 선도교사단과 교사 학습공동체를 운영해 수업 방법을 공유하는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8월 문을 연 역사교육지원연구센터도 이런 정책을 학교 현장과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서울대 교육종합연구원에 설치된 센터는 탐구 중심 수업 환경 조성과 역사 체험·탐구 활성화, 교사의 전문성 향상 등을 지원하고 교육부·시도교육청과 함께 우수한 교수·학습 사례를 확산할 예정이다.

역사 수업의 중심을 ‘정답 기억’에서 ‘자료를 읽고 판단하는 과정’으로 옮기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변화가 특히 중요해진 이유는 젊은 세대가 역사를 접하는 통로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학교 교과서나 역사책, 다큐멘터리가 역사 지식의 주요 통로였다면 지금은 유튜브와 숏폼, 온라인 커뮤니티, 웹툰과 게임까지 역사 정보를 전달한다. 몇십 초짜리 영상 하나가 수십 쪽의 역사책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는 일도 흔하다.

문제는 짧은 콘텐츠가 언제나 역사적 맥락까지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복잡한 사건을 짧게 전달하려면 원인과 결과를 단순화하거나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 재미와 몰입을 위해 사실과 극적 상상력이 섞이기도 한다.

생성형 AI 역시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

AI는 많은 정보를 빠르게 정리하는 데 유용하지만 항상 정확한 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나 인용을 실제 사실처럼 제시하거나 서로 다른 시대의 정보를 섞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사용자가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그 답을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결국 AI 시대에 역사 지식이 필요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검증할 수 있을 만큼의 역사 지식’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AI에게 답을 묻는 것은 쉬워졌지만 그 답에 다시 질문을 던지는 일은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설명의 근거는 무엇인가”, “다른 해석은 없는가”, “이 자료는 언제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교육이 단순한 과거 공부가 아니라 현재의 정보환경을 살아가기 위한 능력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최근 반복되는 역사 왜곡이나 허위정보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특정 역사적 사건을 부정하거나 일부 자료만 떼어내 전체 역사를 설명하려는 콘텐츠가 쉽게 확산될 수 있다.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관심을 보이는 콘텐츠를 계속 추천하기 때문에 한쪽의 주장만 반복적으로 접하는 상황도 생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보다 여러 주장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신뢰할 만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료의 출처와 작성 배경을 확인하고 여러 자료를 비교하는 역사 수업은 이런 능력을 연습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현장 체험이 강조되는 이유도 비슷하다.

교육부와 독립기념관이 8월 27일 체결한 업무협약은 학교 역사 수업과 현장 체험을 연결하고 독립운동 관련 교육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 2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도 협약을 맺는 등 역사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역사적 장소를 직접 방문한다고 자동으로 깊은 이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 한 문장으로 읽었던 사건이 실제 장소와 기록, 인물의 삶과 연결될 때 학생이 던지는 질문은 달라질 수 있다.

왜 이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당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같은 사건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역사교육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질문이다.

과거의 사람들을 오늘의 기준으로 단순히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조건과 선택을 이해하고, 그 결과가 현재 사회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능력은 역사 과목 안에서만 쓰이지 않는다.

뉴스를 읽거나 정치적 주장과 사회적 논쟁을 판단할 때도 어떤 사건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역과 국가 사이의 갈등, 세대별 인식 차이, 제도의 형성 과정에도 대부분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결국 현재를 더 긴 시간의 흐름에서 바라보는 능력과 연결된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역사교육이 암기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본적인 사실을 모르면 자료를 비교하기 어렵고, 모든 정보를 검색에 의존하면 오히려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역사적 사고력 역시 일정한 지식 위에서 작동한다.

중요한 것은 암기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배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일이 발생했고 서로 다른 자료가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는지까지 이어져야 한다.

서울대 역사교육지원연구센터 개소는 그런 변화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다. 센터 하나가 학교 역사교육을 단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학계와 교육현장, 정부와 지역 교육청을 연결해 탐구 중심 역사교육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기반이 생겼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이런 정책이 실제 교실에서 어떻게 구현되는가다.

시험을 위해 많은 내용을 빠르게 진도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교사가 충분한 토론과 사료 탐구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지, 학생이 서로 다른 해석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수업 환경이 만들어지는지, 교사에게 필요한 자료와 연수가 지속적으로 제공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AI가 역사를 대신 설명해주는 시대가 왔다고 해서 역사교육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정보를 찾는 일이 쉬워질수록 무엇을 믿을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은 더 중요해진다. 수많은 역사 콘텐츠와 AI의 답변 가운데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고, 자료의 출처를 확인하고, 다른 시각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역사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사건은 몇 년에 일어났는가” 하나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왜 이 사건을 이렇게 알고 있는가”, “어떤 자료가 이 설명을 뒷받침하는가”, “다른 사람은 왜 다르게 해석하는가”까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AI가 과거에 대한 답을 점점 더 빠르게 만들어주는 시대일수록,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그 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판단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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