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면권, 관용인가 권력자 구명인가
일반사면은 국회 동의 필요하지만 특별사면은 대통령 판단에 집중
고위공직자·권력형 범죄는 공개심사와 국회 통제 강화해야
대통령이 자신과 가까운 고위공직자에게 불법적인 지시를 내리고, 이들이 유죄판결을 받아도 나중에 사면해 줄 수 있다면 법 집행의 억제력은 약해진다. 공직자는 법원보다 대통령의 보호 약속을 신뢰할 수 있다. 사면권이 범죄에 대한 사후 구제를 넘어 충성의 대가로 사용되는 순간 권력 남용을 보장하는 장치가 된다.
특히 내란과 국헌 문란, 고문,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 선거범죄, 대규모 부패, 살인·성폭력 등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고위공직자가 사면 대상이 되면 일반 범죄보다 파장이 크다. 이들은 공적 권한과 국가조직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이들을 사면하면 개인 한 명의 형벌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가 공권력 범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관한 신호를 보낸다.
사면권 자체가 독재를 위한 제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잘못된 재판이나 과도한 형벌을 보완하고, 중병과 고령 등 인도적 사정을 반영하며, 심각한 사회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도 있다. 문제는 대통령이 누구를 어떤 이유로 사면했는지 국민과 국회가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느냐에 있다.
사면은 법원이 확정한 형벌을 행정부 수반이 변경하는 예외적 권한이다. 예외가 자주 반복되고 이유가 공개되지 않으면 사법부의 재판보다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우위에 서게 된다. 사면권의 존속 여부보다 대상과 절차, 공개 기준을 엄격하게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헌법은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했다
헌법 제79조는 대통령이 법률에 따라 사면과 감형, 복권을 명할 수 있도록 한다. 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면·감형·복권의 세부 사항은 법률로 정하도록 했다.
사면은 유죄판결이 잘못됐는지를 다시 재판하는 절차가 아니다. 법원의 판결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형의 집행을 면제하거나 형을 줄이고, 상실된 자격을 회복하는 조치다. 재심이 판결의 사실·법률상 오류를 바로잡는 사법절차라면 사면은 형사정책과 인도적·정치적 필요를 반영하는 행정권의 행사다.
사면권이 필요한 이유도 있다. 법률은 일반적인 기준을 적용하지만 모든 개인의 사정을 완벽하게 반영하기 어렵다. 형이 확정된 뒤 중대한 질병이 발생하거나 사회 상황과 법률이 크게 바뀔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부당하게 처벌받았지만 재심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형벌이 지나치게 무겁게 집행됐거나 장기간 복역한 사람이 충분히 교정됐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감형이 검토될 수 있다. 사회적 대립이 장기간 이어진 사건에서는 제한적인 사면이 갈등 완화에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 사면은 법의 기계적 적용이 놓친 사정을 보완하는 안전판이 될 수 있다.
다만 사면은 법적 정의를 실현하는 일반 절차가 아니다. 예외적인 상황을 다루기 위한 비상구에 가깝다. 비상구가 권력자의 측근과 정치적 동료를 위한 전용 통로가 되면 사면의 정당성은 사라진다.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은 통제 수준이 다르다
일반사면은 특정한 범죄의 종류를 정해 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한다. 대상자가 개별적으로 특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형사정책의 변경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헌법이 일반사면에 국회 동의를 요구하는 이유다.
특별사면은 형이 확정된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다. 형의 집행을 면제하거나 일정한 조건에 따라 형의 효력을 조정할 수 있다. 특정인에 대한 감형과 복권도 대통령의 사면권에 포함된다.
일반사면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특별사면에는 헌법상 국회 동의 요건이 없다. 실제 사회적 논란도 특정 정치인과 기업인, 고위공직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사면에서 주로 발생한다.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개별 대상자 선정에 직접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사면은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상신하고 대통령이 최종 결정하는 구조다. 법무부 장관 소속 사면심사위원회가 상신의 적정성을 심사하지만 위원회의 결정이 대통령을 법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아니다. 사면 대상과 범위에 관한 최종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사면은 형사책임의 효과를 조정하지만 범죄로 인한 모든 책임을 없애는 제도는 아니다. 피해자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탄핵으로 공직에서 파면된 사실이나 역사적·정치적 책임까지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사면을 무죄선고처럼 표현해서도 안 된다. 사면받은 사람이 억울한 피해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유죄판결의 오류를 주장하려면 재심 등 법률이 정한 사법절차를 이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권력형 범죄의 사면은 ‘미리 약속된 면책’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가장 위험해지는 상황은 범죄 이후가 아니라 범죄 이전이다. 대통령과 고위공직자 사이에 사면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면 법률 위반을 억제하는 장치가 약해진다. 부하 공직자는 대통령의 불법 지시를 거부하기보다 나중의 사면을 기대할 수 있다.
대통령이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측근에게 공개적으로 사면 가능성을 언급하는 경우도 위험하다. 관련자에게 진술을 거부하거나 증거를 숨기라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수사기관과 법원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
권력형 범죄는 일반 범죄와 구조가 다르다. 고위공직자는 국가의 인력과 예산, 기밀정보, 지휘체계를 이용할 수 있다. 불법 지시에 따르지 않는 공무원을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할 수도 있다. 피해 규모와 민주적 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개인 범죄보다 클 수 있다.
공권력을 동원한 강력범죄도 마찬가지다. 불법 체포와 감금, 고문, 폭력 진압, 증거조작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국가를 상대로 대응해야 한다. 범죄를 지시하거나 묵인한 고위공직자가 대통령의 사면을 받으면 피해자는 국가 전체가 가해자를 보호한다고 느낄 수 있다.
사면이 반복되면 공직사회에 잘못된 학습효과가 생긴다. 정권을 위해 저지른 범죄는 장기적으로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될 수 있다. 법률보다 정권에 충성하는 편이 개인에게 유리하다는 신호가 전달된다.
이 경우 사면권은 독재를 완성하는 직접적인 권한이라기보다 독재적 행위의 비용을 줄이는 보험으로 작동한다. 대통령이 모든 불법행위를 직접 수행하지 않아도 부하들에게 지시하고 나중에 형벌을 면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형 범죄에 대한 사면은 범죄자의 석방 문제를 넘어 미래의 범죄를 부추길 가능성까지 검토해야 한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있지만 독립성은 제한적이다
현행 사면법은 특별사면과 특정인에 대한 감형·복권 상신의 적정성을 심사하기 위해 사면심사위원회를 두고 있다. 위원회는 위원장 한 명을 포함해 9명으로 구성된다. 법무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위원도 법무부 장관이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전체 위원 가운데 공무원이 아닌 위원을 4명 이상 두도록 하고 있다. 외부 인사가 참여하지만 위원장과 위촉권자가 모두 법무부 장관이라는 점에서 구조적 독립성에는 한계가 있다. 대통령의 사면 방침을 집행하는 법무부가 심사기구까지 운영하는 형태다.
위원 명단과 경력은 임명 또는 위촉 즉시 공개된다. 심의서는 특별사면이 이뤄진 뒤 공개할 수 있지만 개인의 신상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원칙적으로 삭제된다. 회의록은 사면 후 5년이 지나야 공개된다. 구체적인 구성과 공개 기준은 사면법 제10조의2에 규정돼 있다.
회의록을 5년 뒤 공개하면 사면 결정 당시의 국민적 검증은 제한된다.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야 구체적인 심의 과정을 확인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뒤늦은 공개는 역사적 기록에는 도움이 되지만 현재 권력을 통제하는 기능은 약하다.
심의서가 공개되더라도 사면 대상자별로 어떤 요건을 적용했는지 충분히 알기 어려울 수 있다. 개인 식별정보를 보호해야 하지만 주요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의 사면은 이미 대상이 공개되는 경우가 많다. 공익적 검증이 필요한 사안까지 동일한 비공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는지는 재검토할 수 있다.
위원회의 역할도 심사에 머문다. 대통령이 사면심사위원회의 의견과 다른 결정을 내릴 경우 이를 막는 절차가 명확하지 않다. 위원회가 독립적으로 후보를 선정하고 대통령이 그 명단 안에서만 결정하도록 하는 구조와는 차이가 있다.
피해자는 사면 절차에서 주변에 머문다
강력범죄의 사면은 피해자의 안전과 회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가해자의 출소 시점이 앞당겨지면 피해자는 주거와 연락처를 변경하거나 새로운 보호조치를 준비해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면 논의는 국가와 범죄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가 사면을 결정할 수는 없다. 형벌은 개인의 복수가 아니라 국가가 공익을 위해 집행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에게 거부권을 주면 같은 범죄라도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형 집행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피해자의 의견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강력범죄와 성폭력, 보복범죄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서는 피해자에게 사면 심사 사실을 알리고 의견 제출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대리인이나 전담기관을 통해 의견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사면심사위원회는 피해 회복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손해배상과 피해 변제를 이행했는지, 접근금지와 치료 명령을 준수했는지, 재범 위험이 어떤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공적이나 사회적 지위가 피해 회복보다 우선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의 반대만으로 사면을 금지하기 어렵더라도 반대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남겨야 한다. 고위공직자라는 이유로 사면하면서 피해자의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가해자에게는 관용을, 피해자에게는 추가 부담을 주게 된다.
사면과 동시에 보호조치도 결정해야 한다. 출소 예정일 통지와 신변보호, 접근 제한, 심리·법률 지원 등이 필요한지 검토해야 한다. 인도적 사면의 대상자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과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중대한 공직범죄는 더 높은 문턱이 필요하다
모든 특별사면에 국회의 동의를 요구하면 사면 절차가 정쟁에 갇힐 수 있다. 중병과 고령, 경미한 생계형 범죄까지 국회 표결을 거치게 하면 인도적 구제의 신속성이 떨어진다. 사면 대상의 성격에 따라 통제 수준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일반 범죄에 대한 인도적 사면은 현행 절차를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대통령과 직접적인 직무 관계에 있던 고위공직자나 대통령 친족·측근, 권력형 범죄자는 강화된 심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 사면권자가 대상자와 이해관계를 가진 경우이기 때문이다.
내란과 외환, 불법 계엄, 국가폭력, 고문, 선거 개입, 중대한 부패와 사법 방해에 대해서도 별도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범죄는 대통령 개인의 관용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헌법질서의 문제다. 사면이 다른 공직자에게 미칠 신호까지 살펴야 한다.
대통령이 직무상 지시했거나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저지른 범죄는 특별사면 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일반사면에만 국회 동의를 요구하는 현행 헌법 구조와의 관계가 있으므로 사면법 개정뿐 아니라 필요하면 헌법 개정 논의도 병행해야 한다.
국회 동의가 어렵다면 독립된 사면위원회의 가중 의결을 요구할 수 있다. 일반 대상은 출석위원 과반수로 심사하되 권력형 범죄와 고위공직자는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대통령은 독립위원회가 적정하다고 판단한 대상 안에서만 사면할 수 있도록 제한할 수 있다.
사면심사위원회 구성도 바꿀 필요가 있다. 법무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구조에서 벗어나 법원과 국회, 대한변호사협회, 범죄피해자 지원기관, 시민사회 등이 위원을 나눠 추천할 수 있다. 대통령실과 법무부 근무 경력이 있는 위원은 관련 사건 심사에서 회피하도록 해야 한다.
확정판결 직후의 사면은 사법절차를 약화시킨다
사면은 형이 확정된 뒤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확정 직후 사면되면 재판의 실질적 의미가 약해진다. 수년에 걸친 수사와 재판이 끝난 직후 대통령이 형 집행을 면제하면 사법부의 판단이 형식적인 절차로 보일 수 있다.
고위공직자와 권력형 범죄에는 최소 복역기간이나 숙려기간을 둘 수 있다. 형 확정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고 형의 일정 비율을 집행한 뒤에만 사면 심사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중대한 질병과 사망 위험 등 긴급한 인도적 사유에는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
형 확정 전부터 사면 가능성을 언급하는 행위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특정 피고인의 사면을 예고하면 재판과 증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공범들이 형사절차에 협조하지 않을 유인이 생길 수도 있다.
사면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수사 협조 여부와 피해 회복, 재범 위험, 형평성을 평가해야 한다. 같은 범죄로 복역 중인 일반 국민과 비교해 고위공직자만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사회적 지위가 사면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법 앞의 평등이 흔들린다.
특별사면이 국가경제나 사회통합에 필요하다는 추상적 이유만으로 이뤄져서도 안 된다. 어떤 경제적 효과가 예상되는지, 왜 형 집행보다 사면의 공익이 큰지를 설명해야 한다. 사회통합이라는 표현도 피해자와 반대 집단의 배제를 정당화하는 문구가 돼서는 안 된다.
형을 많이 살았다는 사실만으로 사면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법원이 선고한 형기와 범죄의 중대성, 재범 가능성, 피해 회복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사면이 사실상 새로운 양형재판이 되지 않도록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사면 이유를 대상자별로 공개해야 한다
사면 발표에서는 전체 규모와 대표적인 대상, 일반적인 취지가 공개된다. 그러나 개별 대상자가 왜 사면됐는지 충분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으면 국민은 정치적 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면의 불투명성이 특혜 의혹을 키우는 구조다.
고위공직자와 정치인, 대기업 지배주주 등 공적 영향력이 큰 인물은 대상자별 사면 이유를 공개해야 한다. 복역 기간과 피해 회복, 건강 상태, 재범 위험, 사면의 공익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의료정보와 가족관계는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판단 근거 전체를 비공개할 필요는 없다. 구체적인 병명은 가리더라도 형 집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의학적 기준과 독립된 의료심사의 존재는 공개할 수 있다.
위원별 찬반과 소수의견도 일정 범위에서 공개할 필요가 있다. 사면 직후에는 위원 이름과 개별 의견을 연결하지 않고 찬반 수와 주요 논거를 공개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실명 회의록을 공개하면 책임성과 독립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다.
대통령이 사면심사위원회의 권고와 다른 결정을 내리면 별도의 이유서를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 위원회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대상을 대통령이 사면할 경우에는 더 높은 수준의 설명이 필요하다. 설명 없는 재량은 권력형 특혜와 구별하기 어렵다.
사면 대상자 명단을 발표 직전에 공개하는 관행도 개선할 수 있다. 긴급한 인도적 사면이 아니라면 일정한 사전 공개 기간을 두고 사실관계 오류와 이해충돌 여부를 검증할 수 있다. 다만 여론의 인기로 사면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가 되지 않도록 의견의 법적 효력은 제한해야 한다.
절차 위반은 사법심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한 헌법상 권한이지만 법률이 정한 절차 밖에서 행사돼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않았거나 이해충돌 위원이 의결에 참여한 경우, 법정 의결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는 절차적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
법원이 사면의 정치적 타당성까지 다시 판단하면 권력분립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누구를 용서하는 것이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는지는 대통령과 정치 영역의 판단에 가깝다. 그러나 필수 절차와 권한 범위를 준수했는지는 법률 문제다.
사법심사의 대상은 사면의 내용보다 절차에 한정할 수 있다. 독립위원회 심사를 거쳤는지와 대상자가 법률상 제한 범죄에 해당하는지, 이유서와 피해자 통지가 이뤄졌는지를 법원이 확인하는 방식이다. 절차 위반이 발견되면 다시 심사하도록 할 수 있다.
국회의 사후 통제도 필요하다. 대통령은 사면을 실시한 뒤 일정 기간 안에 대상과 기준, 위원회의 심사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국회는 법무부 장관을 출석시켜 사면 기준의 일관성과 이해충돌 여부를 검증할 수 있다.
감사기관은 사면의 결론이 아니라 후보자 선정 과정의 행정적 적법성을 점검할 수 있다. 대통령실이나 외부 정치인이 비공식적으로 후보를 추가했는지, 법무부 검토자료가 왜곡됐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공식 절차 밖의 청탁이 사면 명단에 반영돼서는 안 된다.
대통령 자신의 사건과 측근 사면도 제한해야 한다
현행 헌법과 사면법에는 대통령의 자기 사면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 실제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헌법적 논쟁이 발생할 수 있다. 국가원수가 자신에게 형벌을 면제하는 것은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원칙과 충돌한다.
자기 사면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이 필요하다. 대통령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와 직계가족, 대통령의 지시 또는 공동행위와 관련된 범죄도 별도의 통제 대상으로 정해야 한다. 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면 가능성을 전면 차단하기보다 명백한 이해충돌을 독립적으로 심사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대통령이 범죄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서 공범을 사면하는 경우도 위험하다. 해당 공범의 형 집행을 면제하면 대통령 자신에 대한 수사와 진상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 사면이 증거인멸이나 수사 방해의 결과를 강화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과 관련된 범죄의 사면에는 독립위원회의 동의와 국회 의결을 함께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법적·정치적 위험을 줄이기 위해 사면권을 사용할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다.
임기 말 사면도 강화된 기준이 필요하다. 후임 대통령 취임 직전 사면을 실시하면 국회와 국민이 책임을 묻기 어렵다. 임기 종료 전 일정 기간에는 긴급한 인도적 사면을 제외하고 고위공직자와 정치인에 대한 특별사면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사면권을 없애기보다 위험한 사면을 어렵게 해야 한다
사면권을 전면 폐지하면 명백한 부작용도 생긴다. 잘못된 판결과 시대 변화, 중병과 고령, 과도한 형벌을 바로잡을 마지막 수단이 줄어든다. 정치적 박해의 피해자나 소수자에게 사면이 필요한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재심과 가석방, 형집행정지 제도를 개선해 사면의 필요성을 줄이는 접근이 우선돼야 한다. 판결 오류는 재심으로 바로잡고, 모범적인 수형자의 사회 복귀는 가석방 기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중대한 건강 문제는 형집행정지 절차로 다룰 수 있다.
이러한 일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수록 대통령 사면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 국민이 대통령의 특별한 결단을 기다려야만 부당한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법치주의보다 시혜적 통치가 강화된다. 권리로 해결할 문제를 은혜로 해결하는 구조다.
사면은 다른 법적 구제수단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예외적 사건에 한정해야 한다. 사면 대상의 숫자보다 선정 원칙과 이유가 중요하다. 생계형 범죄와 인도적 사면, 과거 국가폭력 피해 회복은 정치인·고위공직자 사면과 분리해 심사하고 발표할 필요가 있다.
고위공직자와 권력형 범죄에는 일반 국민보다 높은 책임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공직을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지위가 사면의 이유가 아니라 제한의 이유가 돼야 한다. 국가 운영에 기여했다는 추상적 평가로 공권력 범죄를 상쇄해서는 안 된다.
통제 없는 사면권은 독재의 보험이 될 수 있다
대통령 사면권은 독재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언론 통제와 수사기관 장악, 의회 무력화, 법원 압박이 함께 발생할 때 권위주의 체제가 형성된다. 사면권 하나만으로 민주주의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신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 공직자에게 처벌 면제를 약속할 수 있다면 다른 통제 장치는 크게 약해진다. 수사와 재판이 이뤄져도 형벌이 집행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면권은 독재를 만드는 칼이라기보다 불법을 수행한 측근을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 있다.
현행 제도에는 사면심사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 일반사면에 대한 국회 동의 절차가 있다. 특별사면은 여전히 대통령의 재량이 넓고 대상자별 이유 공개와 피해자 참여, 이해충돌 통제는 충분하지 않다. 고위공직자와 권력형 범죄에 대한 별도의 기준도 보강할 필요가 있다.
개선 방향은 분명하다. 권력형 범죄와 중대한 공직범죄에는 국회 또는 독립위원회의 강화된 동의를 요구해야 한다. 대상자별 사면 이유와 위원회 찬반 논거를 신속하게 공개하고 피해자의 의견과 안전대책을 심사해야 한다.
자기 사면과 대통령 관련 범죄의 공범 사면도 명시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확정판결 직후와 임기 말의 정치인 사면에는 숙려기간을 두고 절차 위반은 법원의 심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사면권자가 이해관계자인 상황에서 대통령의 절제만 기대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범죄자를 용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용서는 범죄의 은폐나 충성에 대한 보상이 돼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국민적 관용으로 인정받으려면 대통령 자신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무분별한 사면권은 독재의 간편한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이를 막는 힘은 권력자의 선의가 아니라 공개된 절차와 독립된 통제에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