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그들은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나
고교야구 경기장에서 나온 몇 마디 구호가 사회적 논란이 됐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 선수들은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의 표현을 섞은 응원 구호를 외쳤다. 이 말들은 최근 5·18민주화운동 희화화 논란을 빚은 스타벅스코리아 이벤트를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배재고 야구부에 6개월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고, 학교와 교육청은 후속 조치와 조사에 들어갔다.
이 사건을 두고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징계가 과한지 아닌지만이 아니다. 더 불편한 질문이 있다. 학생들은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는가.
아이들이 몰라서 그랬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모르고 했다면 교육의 실패다. 알고도 했다면 더 심각한 문제다. 5·18은 특정 지역의 기억이 아니라 국가폭력과 민주주의의 문제다. 그것을 상대 학교를 향한 조롱의 말로 바꿔 부를 수 있었다면, 그 말이 어떤 상처를 건드리는지 가르치지 못한 학교와 사회가 먼저 돌아봐야 한다.
학생들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식 경기장에서 상대 팀을 향해 역사적 비극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외친 행위는 장난으로 넘길 수 없다. 경기장은 흥분이 허용되는 공간이지만 모욕이 허용되는 공간은 아니다. 응원은 팀을 북돋우는 언어이지 상대의 아픔을 건드리는 언어가 아니다. 특히 학교 이름을 달고 출전한 학생선수의 말은 개인의 농담을 넘어 학교 공동체 전체의 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다만 이 사건을 학생 몇 명의 일탈로만 정리하면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된다. 학생들은 허공에서 말을 배우지 않는다. 온라인에는 오래전부터 지역을 조롱하고 참사를 희화화하는 말들이 떠돌았다. 누군가는 그것을 밈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농담이라고 포장했다. 조롱은 짧고 자극적인 표현으로 가공돼 공유됐고, 역사적 고통은 웃음거리처럼 소비됐다. 학생들이 경기장에서 외친 말은 갑자기 생겨난 말이 아니라 이미 사회 곳곳에 떠돌던 언어였다.
그렇다면 책임은 학생들에게만 있지 않다. 역사교육은 시험 문제를 맞히는 데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 사건이 민주주의의 기준점으로 남아 있는지, 희생자의 기억을 왜 조롱해서는 안 되는지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이 ‘알고 있는 역사’와 ‘살아 있는 감수성’ 사이에 큰 빈틈이 있다면 교육은 그 빈틈을 메워야 한다.
학교 운동부 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운동부는 경기력과 성적이 강조되는 공간이다. 선후배 관계와 팀 분위기, 승부의 긴장이 강하게 작동한다. 이런 환경일수록 언어의 기준은 더 분명해야 한다. 덕아웃에서 어떤 구호가 허용되고 어떤 말이 금지되는지, 상대 팀과 지역사회를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 지도자는 경기 전부터 교육해야 한다. 문제가 되는 표현이 반복됐다면 현장에서 제지했는지도 따져야 한다.
징계 수위를 둘러싼 논쟁은 피할 수 없다. 6개월 출전정지는 학생선수에게 매우 무거운 처분이다. 구호를 외치지 않은 선수들까지 같은 불이익을 받는다는 점에서 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 우려를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 청소년의 잘못은 처벌과 함께 배움의 기회를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꿈’을 말하며 잘못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꿈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꿈이 타인의 상처 위에 서 있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징계 이후다. 출전정지 처분만으로 이 사건은 해결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의 말이 왜 폭력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하는 과정이다. 광주제일고 학생들이 왜 즉각적인 사과 방문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도 배워야 한다. 사과는 가해자가 하고 싶을 때 끝나는 절차가 아니다. 상처를 받은 쪽이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진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어른들은 이 사건 앞에서 편한 결론을 고르려 한다. 한쪽은 학생들을 강하게 처벌하면 된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아이들이니 한 번쯤 넘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둘 다 충분하지 않다. 처벌만으로는 혐오의 언어가 사라지지 않고, 관용만으로는 역사 조롱의 무게를 가르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책임을 묻되, 그 책임이 교육과 회복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배재고 논란은 우리 사회의 언어가 얼마나 거칠어졌는지, 학생들이 어떤 조롱을 배우고 있는지, 학교가 어떤 감수성을 놓치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아이들의 잘못을 말해야 한다. 동시에 그 아이들이 그런 말을 배울 때 어른들은 어디에 있었는지도 물어야 한다.
아이들의 꿈을 지키자는 말이 아이들의 잘못을 덮자는 뜻이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꾸짖는다고 해서 어른들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번 사건이 남긴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쳤고, 무엇을 방치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