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책헤드라인

상원사 제석천상 등 4건 보물 지정 예고… 조선 전기 불교조각·왕명문서 가치 주목

평창 상원사 목조제석천의좌상. 국가유산청 제공

국가유산청이 ‘평창 상원사 목조제석천의좌상 및 복장유물’을 비롯해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 ‘삼봉선생집 권1’, ‘안성 고신왕지’ 등 4건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불교 조각과 고려시대 불교 전적, 조선 전기 문집, 왕명문서가 함께 포함된 이번 지정 예고는 각 자료가 지닌 희소성과 역사적 근거 자료로서의 가치를 인정한 조치다.

국가유산청은 2일 이들 4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통해 최종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보물은 건조물, 전적, 회화, 조각, 공예품, 고문서 등 유형유산 가운데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산을 대상으로 지정된다.

이번 지정 예고 대상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유산은 강원 평창 오대산 상원사에 전하는 ‘평창 상원사 목조제석천의좌상 및 복장유물’이다. 제석천은 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 불교 의례와 사찰 신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상원사 제석천상은 문수전에 봉안돼 온 조선 전기 불교 조각으로, 2008년 확인된 복장유물과 중수 관련 기록, 함께 모셔졌던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의 발원문 등을 통해 1645년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 내부에 봉안된 복장유물은 제작 시기와 조성 배경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자료다. 발원문과 중수 기록은 불상을 만든 주체, 신앙 목적, 후대 수리 과정 등을 알려준다. 조각 양식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연대와 봉안 맥락을 문헌 자료가 보완해 준다는 점에서 상원사 제석천상은 조선 전기 불교 조각 연구의 기준 자료로 평가된다.

상원사는 조선 왕실 불교와 관련이 깊은 사찰이다. 오대산은 문수신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상원사에는 국보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과 그 복장유물이 전한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에 따르면 상원사 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에서는 1466년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와 부마 정현조가 세조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여러 불·보살상을 조성했다는 발원문이 확인됐다. 이 기록은 상원사 불상들이 조선 왕실과 깊은 관련 속에서 조성·봉안됐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다.

상원사 제석천상이 보물로 지정되면 상원사 문수신앙과 조선 전기 왕실 후원 불교의 성격을 더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추가된다. 특히 조선 전기 불교 조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란을 거치며 온전한 사례가 많지 않아, 제작 시기와 봉안 기록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의 가치가 크다.

삼봉선생집 권1. 국가유산청 제공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은 고려 불교 전적과 인쇄문화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유가사지론’은 인도 유식학 계통의 대표 논서로, 당나라 승려 현장이 한역한 방대한 불교 문헌이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권3은 전체 100권 가운데 한 권이지만, 국내외에서 유일하게 전하는 판본으로 알려져 희소성이 높다.

초조본은 고려가 처음 조성한 대장경 계통의 판본을 가리킨다. 고려의 대장경 간행은 불교 신앙, 국가 운영, 목판 인쇄 기술이 결합한 대규모 사업이었다. 권3 한 책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해당 판본은 고려 전기 대장경 간행의 체계와 서지적 특징, 후대 전래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인정된다.

‘삼봉선생집 권1’은 조선 건국의 핵심 인물인 정도전의 문집이다. 정도전은 고려 말 성리학을 바탕으로 새 왕조의 통치 이념과 제도를 설계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저술과 문집은 조선 초기 정치사상, 제도사, 문학사를 함께 살필 수 있는 자료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삼봉선생집 권1’은 1465년, 세조 11년에 간행된 중간본의 첫 권이다. 특히 이 판본에는 고려 말 문신 이색의 발문이 실려 있어 주목된다. 이색은 고려 말 성리학과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정도전과 같은 시대를 살며 고려 말 지식인 사회의 중심에 있었다. 해당 발문은 ‘삼봉선생집’의 초기 간행과 전래 과정을 밝히는 데 중요한 근거로 평가된다.

안성 고신왕지. 국가유산청 제공

정도전 관련 자료는 조선 건국 직후의 정치 상황과도 밀접하다.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참여했으나, 왕자의 난 이후 정치적으로 배제됐다. 그럼에도 그의 사상과 제도 구상은 조선 왕조의 통치 체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삼봉선생집 권1’은 정도전의 글이 조선 전기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고 다시 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사료적 의미가 있다.

‘안성 고신왕지’는 조선 초기 국왕이 관리를 임명할 때 내린 문서다. 1414년 태종이 강원도 도관찰출척사를 임명하며 발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서에는 ‘조선국왕지인’이 찍혀 있으며, 1435년 이전 임명장에 쓰이던 ‘왕지’라는 명칭이 남아 있다.

이 문서는 조선 초기 관료 임명 제도와 왕명문서 양식을 보여주는 자료다. 태종 대는 왕권 강화와 관제 정비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시기였다. 지방 통치 체계 역시 이 시기에 정비됐고, 도관찰출척사와 같은 관직은 중앙의 명령이 지방 행정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보여준다. ‘안성 고신왕지’는 국왕의 인사권이 문서 형식으로 어떻게 집행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실물 자료다.

특히 ‘왕지’라는 명칭은 조선 초기 문서 제도의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준다. 이후 조선의 관료 임명 문서는 ‘교지’ 등으로 제도화되지만, 건국 초기에는 고려 말 제도와 새 왕조의 문서 형식이 함께 정리되는 과정이 이어졌다. ‘안성 고신왕지’는 이 변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고문서로 평가된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4건은 분야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제작 시기와 전래 과정, 제도적 배경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상원사 제석천상은 복장유물과 함께 조선 전기 불교 조각의 조성 맥락을 보여주고,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은 고려 대장경 계통 판본의 희소한 사례로 평가된다. 삼봉선생집 권1은 조선 건국기 사상가 정도전의 저술 전승 과정을 밝히는 자료이며, 안성 고신왕지는 조선 초기 왕명문서와 관료 임명 제도를 확인할 수 있는 고문서다.

국가유산청은 예고 기간 동안 소유자, 관계 전문가, 지방자치단체, 일반 국민의 의견을 검토한 뒤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최종 지정이 이뤄지면 해당 유산들은 국가지정문화유산으로서 보존·관리와 연구 활용의 대상이 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