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

5만원권 속 ‘풍죽도’ 실물 공개……‘풍죽도’, 삼청첩 전면 공개

[사진:’풍죽도’가 걸린 전시 전경 대구간송미술관 제공]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접하는 지폐 속 그림이 전시장에 등장했다. 익숙한 이미지로 소비되던 작품이 실제 유물로 공개되면서,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의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기획전 ‘삼청도도 – 매·죽·난, 멈추지 않는 이야기’를 열고 조선 중기 화가 탄은 이정의 ‘풍죽도’를 전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5만원권 지폐 뒷면에 새겨진 대나무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시장에 걸린 ‘풍죽도’는 바람에 휘어지면서도 꺾이지 않는 대나무를 그린 작품이다. 수묵으로 표현된 대나무의 형태와 선은 조선 묵죽화의 기준으로 평가된다. 단순한 식물 묘사를 넘어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읽혀 왔다.

허용 대구간송미술관 학예총괄은 “조선 중기 이후 묵죽화의 기준은 이정의 작품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며 “대나무 표현 방식 자체를 새롭게 정립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풍죽도’와 함께 이정의 시화첩 ‘삼청첩’이 처음으로 전면 공개된다. 총 56면으로 구성된 작품은 매화, 대나무, 난초를 주제로 한 그림과 글이 결합된 형태다.

‘삼청첩’은 작품 자체뿐 아니라 제작 배경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임진왜란 당시 부상을 입은 이정이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무너진 조선 사회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1594년에 완성했다.

작품에는 당대 문인 최립의 서문과 한석봉의 글씨가 함께 담겨 있다. 당대 지식인 네트워크가 결합된 작업이라는 점에서 예술과 정치, 사상이 연결된 결과물로 평가된다.

주목되는 부분은 작품에 남아 있는 흔적들이다. 일부 페이지에는 화재로 인한 그을림과 공란이 남아 있다. 17세기 유학자 송시열이 발문을 수정하며 사선을 긋고 다시 쓴 흔적도 확인된다.

이러한 흔적은 작품의 손상이 아니라, 시대를 통과한 기록으로 해석된다. 병자호란과 화재, 필사 과정이 남긴 흔적이 그대로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세기 말에는 일본군 함장 츠보이 코우소가 작품을 가져가 일본으로 반출하기도 했다. 이후 간송 전형필이 1935년 이를 사들여 다시 국내로 들여왔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당시 기와집 한 채가 1000원 정도였는데, 삼청첩을 455원에 구입했다”며 “당시 기준으로도 상당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였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작품 자체뿐 아니라 그 이동 경로까지 함께 보여준다. 유물에 남아 있는 발문과 흔적을 통해, 문화재가 겪은 수난의 과정이 드러난다.

전시에는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작품도 포함됐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김진우, 이회영, 김진만 등의 매·죽·난 작품이 함께 전시되며, 식민지 시기에도 이어진 전통 회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대나무와 매화, 난초는 오랫동안 절개와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돼 왔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상징이 시대를 넘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구성이다.

지폐 속 이미지는 일상적으로 소비되면서 원래의 맥락이 희미해지기 쉽다. 그러나 실물 작품은 제작 배경과 역사적 맥락, 물질적 흔적을 함께 드러낸다. 동일한 이미지라도 전시 공간에서 다른 의미로 읽히는 이유다.

이번 전시는 익숙한 이미지와 실제 유물 사이의 거리를 드러낸다. 지폐 속 그림으로만 인식되던 작품이 역사적 경험과 결합된 유물로 다시 인식되는 계기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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