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OECD 1위인데 기댈 사람은 꼴찌…한국은 왜 ‘연결 빈곤국’이 됐나
집이 있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기대수명도 길다. 그런데 막상 큰일이 생겼을 때 전화할 사람이 없다.
한국 사회의 삶의 질을 압축하면 이처럼 낯선 문장이 만들어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편된 ‘더 나은 삶 지수’에 맞춰 2024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종합 삶의 질은 OECD 38개국 가운데 19위였다. 정확히 중간 수준이다.
영역별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주거는 1위, 지식과 기술은 2위였다. 출생 시 기대수명 역시 상위권이었다.
반면 사회적 연결은 37위였다. 특히 곤경에 빠졌을 때 의지할 친지나 친구가 있는지를 측정한 ‘사회적 지지’ 지표는 38개국 가운데 최하위였다.
한국인은 잘 살기 위해 많은 것을 구축했다. 더 좋은 집과 교육, 일자리와 자산을 얻기 위해 경쟁했고 사회도 그 방향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삶이 흔들렸을 때 붙잡을 사람을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 결과를 ‘한국인이 외롭다’는 이야기로만 읽으면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개인의 감정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 연결망의 약화다. 1인가구 증가, 가족 규모 축소, 지역 공동체 해체, 청년의 잦은 이동, 불안정 노동, 장시간 노동, 은퇴와 사별이 서로 겹치며 한 사람이 관계망 밖으로 밀려났을 때 다시 연결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정부도 변화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11일 정부는 ‘고립·위기가구 자살예방 대책’을 내놓고 고립 위험을 조기에 찾아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9월부터 고립·은둔청년 지원 거점인 청년미래센터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금융위기와 자살 위험정보를 복지 발굴체계와 연계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제 한국 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은 한 단계 더 깊다.
왜 우리는 사람이 고립된 뒤에야 그 존재를 발견하는가.
한국의 문제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혼자 버티는 것’이다
1인가구가 늘었다고 해서 모두가 고립된 것은 아니다.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한 사람도 있고, 혼자 살면서도 가족·친구·직장·지역사회와 촘촘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많다.
따라서 1인가구 증가를 고립의 원인으로 곧장 연결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위기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할 관계가 있느냐다.
직장을 잃었을 때 며칠 머물 곳을 부탁할 사람이 있는지, 아팠을 때 병원에 함께 갈 사람이 있는지, 생활비가 떨어졌을 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을 사람이 있는지가 사회적 연결의 실제 모습이다.
이 관계가 사라지면 작은 위기가 큰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직은 소득 감소로 끝나지 않고 사람을 만나는 통로를 끊는다. 가족관계가 깨지면 정서적 지지와 주거 안전망이 동시에 사라질 수 있다. 채무가 쌓이면 사람을 피하게 되고, 사람을 피할수록 도움을 받을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정부가 최근 고립 위험의 원인으로 청년의 구직난과 정신건강, 중장년의 실직과 가족해체, 노년의 만성질환과 사별을 각각 지목한 것도 이런 이유다.
고립은 하나의 사건보다 여러 손실이 겹치면서 깊어진다.
그 끝에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 버티는 사람’이 만들어진다.
청년 5.2%의 고립·은둔…세대 문제로만 보면 놓치는 것
청년층에서는 이미 뚜렷한 경고가 나타났다.
정부가 인용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서 19~39세 청년 가운데 고립·은둔 상태로 분류된 비율은 5.2%였다. 2년 전 조사보다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이에 따라 올해 3월부터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고, 고립·은둔청년을 조기에 발굴해 상담과 일상회복, 가족·대인관계 회복, 일 경험 등을 지원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정책적 진전이다.
하지만 고립을 청년세대의 특수한 문제로 보면 또 다른 사각지대가 생긴다.
50대 남성이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고 이혼한 뒤 관계가 끊기는 과정, 노인이 배우자와 사별한 뒤 사회적 접촉이 급격히 줄어드는 과정, 자영업자가 폐업과 채무를 겪으며 주변 사람을 피하기 시작하는 과정 역시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를 품고 있다.
나이는 달라도 연결망이 무너지는 과정은 닮아 있다.
정부가 올해 고독사 예방 중심의 정책에서 생애주기별 ‘사회적 고립 예방’으로 정책 방향을 넓히겠다고 밝힌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고립이 특정 세대나 취약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이라는 점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돈을 주는 복지는 있는데 ‘관계’를 만드는 복지는 부족했다
한국 복지제도는 오랫동안 경제적 결핍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소득이 부족하면 생계급여를 지원하고, 집이 없으면 주거를 지원하며, 몸이 아프면 의료서비스를 연결한다. 숫자로 파악할 수 있는 위험을 찾아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큰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고립은 기존 복지체계가 가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다.
돈이 부족한지는 소득자료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이 몇 달째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았는지는 행정자료만으로 알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가장 고립된 사람이 복지서비스를 가장 먼저 신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계가 끊긴 사람일수록 도움을 요청할 정보가 부족하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힘도 떨어질 수 있다. 타인에 대한 불신이나 수치심 때문에 행정기관과의 접촉 자체를 피하기도 한다.
신청해야 받을 수 있는 복지는 이런 사람 앞에서 멈출 수 있다.
정부가 최근 전기·가스 체납, 건강보험료 미납, 금융위기 정보 등에 더해 자해·자살시도와 과다채무, 불법사금융 피해 같은 정보를 활용해 위기가구를 먼저 찾아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8월 24일부터 시작된 올해 4차 복지사각지대 발굴은 총 16만 명 규모다.
정책의 방향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지원하는 복지’에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복지’로 옮겨가고 있다.
다만 데이터를 통해 위험 신호를 찾아내는 것과 한 사람을 다시 사회에 연결하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전기료 체납은 찾을 수 있지만 ‘마지막 친구가 떠난 날’은 데이터에 없다
고립 위험을 데이터로 찾아내려는 시도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공과금이 장기간 밀리거나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하고 채무가 급증하면 경제적 위기의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여러 정보를 결합하면 사람이 직접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행정이 먼저 접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연결의 붕괴에는 데이터가 포착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
매일 연락하던 친구와 관계가 끊긴 것, 직장을 그만둔 뒤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 배우자가 숨진 뒤 식사를 거르기 시작한 것, 취업 실패가 반복되며 모임에서 스스로 빠져나온 것은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바로 기록되지 않는다.
사회적 고립 정책이 데이터 선별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이유다.
결국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경비원이나 배달원 등 생활 현장의 주민을 위험 발굴체계에 참여시키려는 것도 이런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주의할 점이 있다.
이웃 감시처럼 느껴지거나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커지면 오히려 고립된 사람이 문을 더 굳게 닫을 수 있다.
따라서 핵심은 누가 고립됐는지를 감시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험 신호를 발견했을 때 거부감 없이 연결할 수 있는 지역 접점을 늘리는 데 있다.
‘프로그램 참석자 수’로는 관계 회복을 측정할 수 없다
정책 평가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고립·은둔 지원사업은 상담 횟수, 프로그램 참여자 수, 사례관리 건수처럼 행정적으로 계산하기 쉬운 숫자로 평가되기 쉽다.
그러나 사회적 연결은 이런 숫자만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프로그램에 열 번 참여했더라도 일상이 다시 고립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반대로 한 명의 믿을 수 있는 사람과 관계를 회복한 것이 수십 차례의 프로그램 참여보다 더 큰 변화일 수도 있다.
정부가 고립 예방 정책을 확대한다면 성과 지표도 관계 중심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할 사람이 생겼는지, 정기적으로 만나는 관계가 늘었는지, 취업이나 학교·지역활동으로 사회적 접촉이 유지되는지, 지원 종료 뒤에도 관계망이 지속되는지 등을 장기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고립 정책의 목표는 사람을 프로그램 안으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회 안에 머물 수 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거 1위라는 숫자도 ‘연결’과 함께 읽어야 한다
이번 OECD 비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의 주거 영역이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결과를 한국의 주거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보사연 연구진이 사용한 주거지표에는 주거비 지출 이후 남는 처분가능소득 등이 포함됐는데,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 등이 반영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서울과 지방의 주거비 격차도 전국 평균 안에서는 희석될 수 있다.
그럼에도 주거와 사회적 연결의 극단적인 순위 차이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한국 사회는 개인이 머물 공간을 만드는 데는 상당한 자원을 투입했지만, 그 공간 밖에서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에는 상대적으로 덜 투자해온 것은 아닌가.
아파트는 늘었지만 이웃을 만날 이유는 줄었다. 온라인 서비스가 발달하면서 은행과 쇼핑, 배달, 행정업무까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편리함은 높아졌지만 사람을 마주쳐야만 해결할 수 있었던 일상의 접점은 줄었다.
도시의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우연한 관계가 사라지는 역설이다.
사회적 연결을 복지정책만의 과제로 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거정책과 도시계획, 노동시간, 지역문화, 생활체육, 공공공간까지 모두 연결의 조건을 만든다.
‘외로운 사람’을 치료하기보다 외로워지기 어려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고립 문제는 개인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상담을 제공하고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며 취업이나 사회활동을 지원한다.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이미 고립된 사람을 다시 사회로 끌어내는 것보다 애초에 관계망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만드는 정책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직장을 잃어도 사람과 연결될 공간이 있어야 하고,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이 집 안에만 머물지 않도록 지역 안에서 갈 곳이 있어야 한다. 청년이 취업에 실패하더라도 인간관계까지 함께 무너지지 않을 생활 기반도 필요하다.
문화센터와 도서관, 체육시설, 주민공간 같은 지역 인프라가 복지정책과 연결돼야 하는 이유다.
사람들이 일부러 ‘관계 회복 프로그램’에 신청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반복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소와 활동을 늘리는 것이 예방의 핵심이다.
사회적 연결은 행정기관이 지급할 수 있는 급여가 아니다.
하지만 관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은 환경은 정책으로 만들 수 있다.
한국의 다음 복지지표는 ‘기댈 사람이 있습니까’여야 한다
한국의 종합 삶의 질이 OECD 19위라는 결과만 보면 크게 나쁘지도, 크게 좋지도 않은 사회처럼 보인다.
그러나 평균은 극단적인 차이를 감춘다.
주거 1위와 지식·기술 2위 뒤에 사회적 연결 37위와 사회적 지지 최하위가 함께 존재한다.
삶의 질은 좋은 집과 높은 학업성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숫자들이 보여준다.
정부는 이제 사회적 고립을 국가적 정책과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고립·은둔청년 지원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위기가구 데이터를 활용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을 먼저 찾아가며, 고독사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정책에서 고립 자체를 예방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옮기고 있다.
중요한 변화다.
이제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발굴했는지만 세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시 지속적인 관계망을 얻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복지정책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소득이 얼마입니까”, “집이 있습니까”, “건강보험에 가입했습니까”를 묻는 것에 더해 하나의 질문이 필요하다.
힘들 때 연락할 사람이 있습니까.
한국이 OECD 사회적 지지 최하위라는 결과는 그 질문을 너무 오랫동안 미뤄왔다는 경고에 가깝다.
사람이 가난해졌을 때 돈을 지원하는 것도 복지다. 병들었을 때 치료하는 것도 복지다.
그리고 사람이 세상에서 혼자가 되어가기 전에 다시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역시 이제 복지의 핵심이 돼야 한다.
좋은 사회의 기준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순간, 누구도 혼자 남겨지지 않도록 만드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