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헤드라인

서울에 작품 1만6000개를 숨겼다…주워가도 되는 전시

미술관에서 작품을 발견했다고 해서 가져갈 수는 없다. 손을 대는 것조차 조심해야 하고,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유지된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작품을 보호하고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고, 관람객은 정해진 동선을 따라 작품을 감상한 뒤 다시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번에는 순서가 거꾸로다.

영국 작가 라이언 갠더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더 파인드 서울(The Find Seoul)’이 8월 31일 서울에서 시작됐다. 을지로와 한남, 청담, 삼청 일대와 코엑스의 공개된 공간 곳곳에 작가가 특별 제작한 코인 형태의 작품 1만6000개를 숨겨두고 시민과 관람객이 직접 발견하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작품을 찾은 사람은 그대로 가져가 소장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도 있다. 프로젝트는 9월 10일까지 이어진다.

미술관에 작품을 모아놓고 관객을 기다리는 대신 작품을 도시 전체에 흩어놓은 것이다.

관람객 역시 달라진다. 작품 앞에 서서 설명문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골목과 갤러리, 거리와 건물을 살피며 작품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이 된다.

‘더 파인드 서울’에서 전시는 작품을 보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걷고 주변을 관찰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다.


작품 1만6000개가 서울 곳곳으로 흩어졌다


라이언 갠더는 일상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물건과 상황을 작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으로 알려진 영국 현대미술가다.

이번 서울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1만6000개의 코인은 일반 화폐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지만 각각 다른 문구가 새겨진 작품이다. 프리즈 측은 이를 수집 가능한 오브제이자 때로는 판단을 돕는 도구처럼 사용할 수 있는 작품으로 소개한다. 발견한 사람이 가지고 다녀도 되고 다른 사람에게 건네도 된다.

작품이 숨겨지는 장소도 하나의 미술관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을지로와 한남, 청담, 삼청처럼 갤러리와 문화공간이 밀집한 지역뿐 아니라 코엑스의 공개공간에도 작품이 흩어진다. 프리즈 위크 기간 진행되는 네이버후드 나이트와도 연결돼 8월 31일 을지로를 시작으로 9월 1일 한남, 2일 청담, 3일 삼청 일대의 전시공간이 밤늦게까지 문을 연다.

일반적인 아트페어가 세계 각지의 작품을 한 공간으로 모으는 행사라면, 이번 프로젝트는 정반대 방식이다.

작품을 서울 곳곳에 흩어놓고 사람이 움직이게 한다.


찾는 순간 관람객이 소장자가 된다


‘더 파인드 서울’이 흥미로운 가장 큰 이유는 관람과 소장의 경계가 거의 동시에 무너진다는 데 있다.

일반적인 미술시장에서는 작품을 보는 사람과 구매하는 사람이 다르다. 특히 대형 아트페어에서는 수백만 원에서 수억원에 이르는 작품을 누구나 볼 수는 있지만 실제 소유자는 일부 컬렉터에게 한정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발견한 사람이 곧 작품의 소장자가 될 수 있다.

가격을 협상할 필요도 없고 작품 구매를 위해 별도의 계약을 할 필요도 없다. 운 좋게 골목이나 전시장 한쪽에서 코인을 발견했다면 그 순간 작품 하나가 자신의 것이 된다. 실제 프로젝트 안내에서도 발견한 사람이 코인을 가져가거나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구조는 미술작품의 가치가 반드시 가격표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누군가에게 그 코인은 라이언 갠더의 작품일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우연히 서울에서 발견한 작은 기념품일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작품에 새겨진 문장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도 있다.

같은 물건이라도 발견한 사람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미술관에 가지 않은 사람도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공공미술이 가진 오래된 질문 가운데 하나는 예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작품과 만나게 할 것인가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기본적으로 찾아가야 하는 공간이다. 전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일정을 확인하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방문해야 한다.

‘더 파인드 서울’은 이 과정을 뒤집는다.

작품이 일상공간으로 들어가면서 미술을 보러 나온 사람이 아니더라도 작품과 우연히 마주칠 가능성이 생긴다.

청담동의 갤러리를 둘러보다 발견할 수도 있지만 을지로 골목을 걷다가 발견할 수도 있다. 코엑스에서 다른 일을 하던 사람이 작품을 먼저 발견할 수도 있다.

작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생기는 순간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계단이나 화단, 건물의 작은 공간을 다시 살펴보게 되고 골목을 걷는 속도도 느려진다. 일상적인 공간이 잠시 ‘무언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프리즈 역시 이번 프로젝트를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를 작품이 펼쳐지는 장소로 만드는 시도로 설명하고 있다.


작품을 찾는 행위 자체가 작품이 된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코인 하나만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작품을 찾으려고 서울을 돌아다니는 행동도 프로젝트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참가자는 코인을 발견하면 #TheFindSeoul이라는 해시태그를 이용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누군가 발견한 작품은 서울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갖게 될 수도 있다.

전시가 끝난 뒤 작품이 모두 한 장소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작품이 흩어진 채 사람들의 집과 가방, 책상 위에 남을수록 프로젝트는 원래의 전시장 형태에서 더 멀어진다.

일반적인 전시는 종료되면 작품을 철거하고 창고나 소장처로 이동한다.

‘더 파인드 서울’은 반대다.

전시가 진행될수록 원래 있던 작품이 하나씩 사라진다.

1만6000개의 작품이 모두 발견된다면 전시 장소에는 오히려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관람객이 작품을 가져갈수록 전시가 완성되는 셈이다.


프리즈 서울 한복판에서 ‘무료 소장’이 던지는 질문


이번 프로젝트가 열리는 시점도 흥미롭다.

9월 2일부터 5일까지 코엑스에서는 프리즈 서울이 열린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는 30개국 이상에서 125개가 넘는 갤러리가 참가한다. 세계적인 갤러리와 컬렉터가 모이고 수많은 미술작품이 실제 거래되는 국내 최대 규모 미술시장 가운데 하나다.

같은 시기 코엑스 안에서는 작품을 사고파는 거대한 시장이 열리고, 코엑스 밖 서울 곳곳에서는 누구나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1만6000개의 작품이 흩어진다.

두 풍경은 현대미술의 서로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미술은 분명 시장에서 거래되는 자산이지만 동시에 누구나 우연히 만나고 경험할 수 있는 문화이기도 하다.

물론 무료로 배포된다는 사실이 작품의 시장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라이언 갠더는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이고 ‘더 파인드’는 2023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처음 선보인 뒤 스페인 카세레스와 일본 오카야마를 거쳐 서울에서 네 번째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오히려 유명작가의 작품을 누구나 소유할 수 있도록 대량으로 도시 안에 풀어놓았다는 점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개념이 된다.


1만6000개는 같은 작품일까 다른 작품일까


여기에서는 미술에 관한 또 다른 질문도 생긴다.

1만6000개의 코인이 모두 작품이라면 각각은 하나의 독립된 작품일까, 아니면 1만6000개 전체가 하나의 작품일까.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에서는 작품 하나와 작품 하나를 구분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개념미술이나 참여형 작업에서는 물리적인 물건보다 작품을 둘러싼 규칙과 행동, 경험이 더 중요해지는 경우가 있다.

‘더 파인드 서울’ 역시 단순히 코인 1만6000개를 제작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숨기고 사람들이 찾아다니며 발견하고 소장하거나 다시 전달하는 전체 과정이 작품의 일부다.

따라서 누군가 코인 하나를 발견했다고 해서 프로젝트 전체를 소유한 것은 아니다.

대신 그 사람은 1만6000개의 조각 가운데 하나를 갖게 되고, 동시에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이 된다.

작품과 관객의 관계가 ‘보는 사람’에서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으로 달라지는 순간이다.


도시가 잠시 전시장으로 바뀐다


프리즈 서울은 올해 공식 프로그램에서도 미술을 코엑스 내부에만 두지 않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공공미술과 영화, 음악, 토크 프로그램을 도시 곳곳에서 열고 네이버후드 나이트를 통해 을지로와 한남, 청담, 삼청의 갤러리와 문화공간을 연결한다. 프리즈 측도 올해 프로그램을 ‘페어의 벽을 넘어 도시 전체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더 파인드 서울’은 이 방향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행사장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표시할 수도 없다.

작품이 을지로 어느 골목에 있을 수도 있고 청담의 문화공간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전시장처럼 작동한다.

다만 이 전시장에는 입구도 출구도 없다.

티켓을 확인하는 사람도 없고 어디부터 봐야 한다는 동선도 없다.

관람객이 스스로 걷고 찾으면서 자신의 전시 경로를 만든다.


작품을 발견하지 못해도 전시를 본 것일까


보물찾기에는 항상 성공과 실패가 존재한다.

누군가는 코인을 발견하지만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하나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을 찾지 못한 사람은 이 전시를 보지 못한 것일까.

‘더 파인드 서울’의 재미는 그 질문에도 있다.

코인을 찾아 거리를 걷고 평소 보지 않던 장소를 살피며 서울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했다면 물리적인 작품을 손에 넣지 못했더라도 이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미술관에서는 작품을 봐야 관람이 성립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작품을 찾으려고 움직이는 시간 자체가 관람이 될 수 있다.

결국 라이언 갠더가 서울에 숨긴 것은 1만6000개의 작은 코인만은 아니다.

늘 지나던 도시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이유를 함께 숨겨놓은 셈이다.

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며칠 동안 미술시장은 수많은 작품의 가격을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바깥에서는 가격표가 없는 작품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방식으로 그 가치를 결정한다.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전시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새로운 작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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