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앞 미술작품 선정 방식 손본다…공모 확대 추진
대형 빌딩이나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가다 보면 조각이나 설치미술 작품을 쉽게 볼 수 있다. 건축주의 취향으로 놓인 장식물처럼 보이지만 상당수는 법에 따라 설치된 ‘건축물 미술작품’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신축하거나 증축할 때 건축비의 일정 부분을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하도록 한 제도로, 도시 환경을 개선하고 예술가에게 창작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운영돼왔다.
그런데 이 제도의 작품 선정 방식을 더 투명하게 바꾸려는 움직임이 국회에서 시작됐다. 지난 7월 21일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4명이 발의한 문화예술진흥법 전부개정안에는 건축물 미술작품을 공모방식으로 선정해야 하는 경우를 확대하고 공모 절차를 정비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법안은 7월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회부돼 심사를 앞두고 있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는 이미 적지 않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연면적 1만㎡ 이상 공동주택과 업무시설, 판매시설, 숙박시설, 병원 등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이 설치 대상에 포함된다. 서울시는 설치 작품에 대해 예술성과 공공성, 가격 적정성 등을 심의하고 있으며, 심의위원회도 별도로 운영한다.
건물 앞 조형물, 사실은 법으로 만든 시장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건축물에서는 이미 공모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인천시는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지방공기업이 건축주인 경우 건축물 미술작품을 공모로 선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민간 건축주는 자체 공모를 하거나 지자체에 공모 대행을 요청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공모제도의 취지 역시 경쟁을 통해 우수 작품을 선정하고 신진 작가의 참여 기회를 넓히는 데 있다.
최근에도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이 송파구 문정동 신축청사에 설치할 건축물 미술작품을 공모 방식으로 선정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법무부는 지난 8월 26일 신축청사의 미술작품 공모를 다시 공고하면서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를 근거로 우수한 작품을 경쟁 방식으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민간 건축물까지 포함한 전체 시장에서는 작품 선정 과정에 대한 공정성과 투명성 논란이 계속돼왔다는 점이다. 건축주가 직접 작품이나 작가를 정하는 방식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골랐는지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고, 일부 작가나 중개업체에 기회가 편중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번 전부개정안을 발의한 조계원 의원 측도 건축물 미술작품 시장의 불공정성과 불투명성을 개선하는 것을 법안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공모 확대되면 신진 작가에게도 기회 넓어질까
공모가 확대되면 가장 먼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은 작가의 진입 기회다. 건축주가 이미 알고 있는 작가나 특정 업체를 통해 작품을 선정하는 방식보다 공개 경쟁을 거치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작가에게도 참여 기회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작품 설치 실적이 부족한 신진 작가에게는 대형 건축물에 작품을 설치할 수 있는 통로가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공모가 늘어난다고 해서 자동으로 좋은 작품이 선정되는 것은 아니다. 심사위원 구성과 평가 기준이 불투명하다면 공모 형식만 도입하고 기존 문제를 반복할 수도 있다. 작품의 예술성과 도시 공간과의 조화, 시민 접근성, 유지관리 가능성, 가격 적정성 등을 어떤 비중으로 평가할지도 중요하다.
공개경쟁이 단순히 응모작 수를 늘리는 데 그친다면 제도 개선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결국 공모제도의 실효성은 누가 심사하고,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며, 왜 그 작품을 골랐는지를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느냐에 달려 있다.
건축주가 사지만 시민이 오래 보는 작품
건축물 미술작품은 일반 미술시장과 성격이 다르다. 작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건축주지만 실제로 작품을 가장 자주 보는 사람은 건물 이용자와 주변 시민이다. 개인 수집품이 아니라 도시 공간에 장기간 놓이는 작품인 만큼 구매자의 취향만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공공적 성격을 갖는다.
그래서 이 제도에서는 작품을 얼마나 비싸게 샀는지보다 어떤 작품이 왜 그 장소에 놓였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건축물의 규모와 역사,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 설치되거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실상 방치된다면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
건축물 미술작품은 법적 의무와 예술시장, 공공미술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제도다. 때문에 단순히 건축주의 부담을 줄이거나 작가에게 판매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도시공간의 질을 높이는 장치로 작동하는지가 중요하다.
선정보다 더 어려운 건 설치 이후 관리
관리 문제도 오래된 숙제다. 서울시의회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는 2024년 9월 기준 건축물 미술작품이 4411점 설치돼 있었고, 제도가 장기간 운영되면서 노후 작품을 어떻게 관리하고 철거할 것인지에 대한 제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서울시는 당시 작품 일몰제와 표준계약서 개선, 철거심의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문화체육관광부에 건의했다.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만 투명하게 만든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공모를 통해 작품을 선정한 뒤 누가 유지·보수 비용을 부담할지, 건축물이 매각되거나 리모델링될 경우 작품을 어떻게 처리할지, 훼손된 작품을 언제까지 유지해야 할지 같은 문제도 함께 정리할 필요가 있다.
공공성을 강조해 작품 설치를 의무화했다면 설치 이후의 책임도 제도 안에서 분명히 해야 한다. 선정할 때는 공공미술이지만 관리 단계에 들어가면 건축주 개인의 부담으로만 남는 구조라면 지속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
작품 설치 대신 기금 출연 선택지도 있다
현행 제도는 작품 설치 대신 일정 금액을 문화예술진흥기금에 출연하는 선택지도 두고 있다. 건축주가 모든 건물에 반드시 조형물을 설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공모제도를 확대하더라도 건축물의 성격에 따라 실제 작품 설치와 기금 출연 가운데 어떤 방식이 더 공공적 효과가 큰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모든 건물 앞에 작품을 하나씩 늘리는 것보다, 작품이 필요한 공간에는 질 높은 작품을 설치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기금을 통해 다른 문화예술 영역을 지원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이 선택지는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가 단순한 ‘조형물 설치 의무’가 아니라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재원 배분 장치라는 점도 보여준다.
공모 확대가 시장의 불투명성까지 바꿀 수 있을까
건축물 미술작품을 둘러싼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이 제도가 예술가 지원과 도시환경 개선, 민간 건축주의 비용 부담이 한꺼번에 맞물리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는 중요한 시장이지만 건축주에게는 법으로 정해진 의무이고, 시민에게는 수십 년 동안 생활공간에서 마주하게 되는 공공미술이 된다.
이번 문화예술진흥법 전부개정안은 아직 발의 단계에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공모 대상과 절차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서는 공모방식으로 작품을 선정해야 하는 경우를 확대하고 제도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이 제시된 상태다.
공모 확대가 실제 효과를 내려면 단순히 지원자가 많아지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심사 과정과 선정 이유를 얼마나 공개하는지, 신진 작가에게 실질적인 기회가 돌아가는지, 작품 가격은 합리적인지, 설치 이후 관리까지 책임지는 구조가 마련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건물 앞에 놓인 미술작품은 한 번 설치되면 오랜 기간 도시의 풍경으로 남는다. 그만큼 작품을 누가 만들었는지만큼이나 누가 어떤 기준으로 골랐는지도 중요하다.
건축물 미술작품 공모 확대 논의는 결국 공공미술을 바라보는 기준을 다시 묻는 과정이다. 건축주의 의무를 채우기 위해 설치하는 작품인지, 작가에게 시장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인지, 시민이 누리는 도시문화의 일부인지에 따라 제도의 설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공모 확대가 의미를 가지려면 작품 선정의 문을 넓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설치된 작품이 실제 도시의 문화적 자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선정과 관리 전 과정을 함께 손보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