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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군복은 헌법 위에 있지 않다…내란 가담 군인 중형 선고가 남긴 숙제

12·3 불법계엄 당시 국회 침투와 봉쇄, 정치인 체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점거 계획 등에 관여한 전직 군 지휘관들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은 김현태 전 육군 707특수임무단장에게 징역 12년을, 이상현 전 제1공수특전여단장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정치인 체포조 운용과 선관위 점거 계획에 관여한 전직 군 관계자들에게도 각각 징역형이 내려졌다.

이번 판결의 의미를 단순히 몇몇 군인의 형량에서 찾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독점적으로 보유한 무력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법원이 다시 답했다는 점이다.

군대는 권력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 개인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도 아니다. 군은 헌법에 따라 국가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군에 부여된 총과 장갑차, 특수부대와 정보기관의 능력은 어떤 정치권력도 사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공적 자산이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공적 무력이 시민과 헌법기관을 향했다는 데 있다.

국회는 군이 제압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선거관리기관 역시 군사작전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정치인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군 조직을 활용하는 순간 군의 무력은 국가방위 수단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강제수단으로 변질된다.

그 선을 넘는 순간 문제는 ‘명령 수행’이 아니라 헌정질서 침해가 된다.

군 내부에서는 오랫동안 ‘명령 복종’이 조직의 기본 원리로 강조돼 왔다. 실제로 군은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지휘가 필요한 조직이며 명령 체계가 무너지면 작전 수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명령 복종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군인의 충성 대상은 지휘관 개인이 아니라 헌법과 국가다. 명백히 위법한 명령까지 복종해야 한다면 어떤 쿠데타도, 어떤 불법적 군사동원도 ‘윗사람이 시켰다’는 한마디로 정당화될 수 있다.

한국 현대사가 이미 그 위험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5·16 군사쿠데타와 12·12 군사반란,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군 투입은 군이 정치권력과 결합했을 때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남겼다. 이후 문민통제와 군의 정치적 중립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은 것도 그 대가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런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국회와 선거기관을 향해 다시 군 병력이 움직였다는 사실은 가볍게 볼 수 없다.

이번 판결은 그래서 과거의 잘못을 처벌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다음 불법명령이 내려왔을 때 군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위법한 명령은 거부해야 한다’는 선언만 반복해서는 부족하다. 군인이 실제 상황에서 위법성을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우선 군인복무 관련 규정과 교육에서 ‘명백한 위법명령’의 구체적인 사례와 판단 기준을 훨씬 분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 기능을 군사력으로 방해하라는 명령, 정치인을 체포하라는 명령, 선거기관의 시설과 자료를 강제로 확보하라는 명령처럼 헌법기관의 권한을 무력으로 침해하는 지시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한 군사명령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위법 가능성이 있는 명령을 받은 군인이 즉시 독립적인 법률 검토를 요청할 수 있는 절차도 강화해야 한다. 지휘계통 내부의 판단에만 맡기면 상급 지휘관들이 함께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견제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군 법무조직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고, 헌정질서와 관련된 중대한 명령에 대해서는 별도의 긴급 법률검토 절차를 두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위법명령을 거부하거나 문제를 제기한 군인을 보호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현실에서 군인이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승진과 보직, 조직 내 평가가 상급자의 판단에 좌우되는 구조에서 ‘이 명령은 잘못됐다’고 말하려면 개인에게 엄청난 위험이 따른다. 법률상 명령 거부권을 규정해 놓고 실제로는 거부한 사람을 조직이 배제한다면 제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신고자와 명령 거부자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 금지, 독립적인 조사 절차, 사후 법률지원과 신분보장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지휘관의 책임 역시 더 무겁게 물어야 한다.

불법계엄과 같은 상황에서는 최고권력자의 명령만 문제 되는 것이 아니다.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 이를 구체적인 작전으로 바꾸고 병력에게 전달하는 중간 지휘관의 판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군대의 계급이 높아질수록 권한이 커지는 만큼 헌법적 책임도 커져야 한다.

부하에게 위법한 명령을 전달하고 실행을 조직한 지휘관이 나중에 ‘상부의 지시였다’고 책임을 피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 명령을 내린 사람과 전달한 사람, 이를 현장에서 집행한 사람 사이의 책임을 각각 구분하되 지휘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 교육도 형식적인 정신교육 수준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군에서 헌법교육을 한다고 하면 흔히 국가관이나 안보관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의 군인에게 필요한 헌법교육은 ‘국가를 사랑하라’는 구호보다 훨씬 구체적이어야 한다.

왜 국회가 군보다 우위에 있는지, 왜 군의 정치적 중립이 중요한지, 대통령의 명령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면 정당성을 잃는다는 사실을 군인이 실제 상황에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문민통제의 의미도 분명히 해야 한다.

문민통제는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라는 뜻이 아니다.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국가기관 전체와 헌정질서 안에서 군이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다. 행정부 수반 역시 헌법의 지배를 받는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문민통제라는 개념 자체가 ‘최고통수권자 개인에 대한 복종’으로 왜곡될 수 있다.

이번 재판에서 일부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됐다는 사실도 중요하게 봐야 한다. 법원은 모든 군 관계자를 일괄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각각의 행위와 인식 정도를 판단했다. 이것은 군 전체를 범죄집단으로 보는 시각과도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미다.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묻는 것도 옳지 않지만, 군인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면제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핵심은 개인이 어떤 명령을 받고, 그 명령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며, 실제로 어떤 행동을 했느냐에 따라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것이 법치다.

그래서 이번 판결을 ‘군에 대한 처벌’로 읽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군을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로 돌려놓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국민은 자신의 세금으로 군을 유지하고 군에게 막대한 무력을 맡긴다. 그 대가로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다. 그 힘을 국민과 헌법을 지키는 데만 사용하라는 것이다.

군이 정치권력의 의지를 실행하는 무장조직으로 변하는 순간 그 신뢰는 무너진다.

이번 사건에서 중형이 선고된 이유를 역사적 교훈으로 남기려면 재판이 끝난 뒤 군이 무엇을 바꾸느냐가 더 중요하다.

위법명령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명령을 거부한 군인을 보호하며, 군 법무조직의 독립성을 높이고, 지휘관의 헌법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군 교육 역시 ‘상명하복’보다 먼저 ‘헌법에 대한 충성’을 가르쳐야 한다.

불법계엄에 가담한 군인 몇 명을 처벌했다고 민주주의가 자동으로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음번 위기의 순간에도 군인이 국회로 향하라는 명령보다 헌법을 먼저 떠올릴 수 있을 때 비로소 단단해진다.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시민의 권리 위에 설 수는 없다. 별이 많다고 헌법보다 높은 곳에 올라갈 수도 없다.

군대가 지켜야 할 최종 명령은 권력자의 말이 아니라 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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