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음악편지’로 시대를 깨운 목소리…1세대 여성 DJ 임국희 별세
1960~70년대 라디오 전성기를 이끈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임국희가 별세했다. 향년 88세. 차분하면서도 품격 있는 진행으로 심야 라디오의 정서를 바꿔놓은 그는 국내 방송사에서 ‘심야 여성 DJ’의 길을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단법인 한국아나운서클럽은 임국희가 지난 3일 세상을 떠났다고 4일 밝혔다. 1938년 태어난 고인은 경기여고와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1961년 KBS에 입사하며 방송인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1964년 MBC로 옮겨 라디오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고인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은 MBC 라디오 심야 팝송 프로그램 ‘한밤의 음악편지’다. 텔레비전보다 라디오의 영향력이 컸던 시절, 그는 늦은 밤 청취자 곁을 지키는 목소리로 사랑받았다. 당시 심야 시간대의 라디오는 음악과 사연, 진행자의 감성이 어우러지는 공간이었고, 임국희는 세련된 선곡과 안정적인 진행으로 새로운 청취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MBC는 2011년 라디오 창사 50주년 특집에서 그를 ‘심야 여성 DJ의 시초’로 소개한 바 있다.
1972년 프리랜서로 전환한 뒤에도 고인의 활동은 이어졌다. 특히 1975년 4월부터 진행한 MBC 라디오 ‘여성살롱 임국희예요’는 여성 청취자들의 일상과 고민, 사회적 관심사를 담아내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오락 프로그램을 넘어 여성의 삶과 목소리를 방송 안으로 끌어들인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여성살롱 임국희예요’는 1983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듬해 한국방송대상 사회상도 수상했다. 고인이 1988년 프로그램에서 물러난 뒤 해당 프로그램은 ‘여성시대’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 이어지는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의 기반이 됐다. 임국희의 진행은 이후 여성 진행자들이 라디오와 교양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수 있는 토대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방송 인생은 진행자로서의 활동에만 머물지 않았다. 고인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지냈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아나운서클럽 제8대 회장을 맡아 방송계 원로로서도 역할을 이어갔다. 2014년에는 MBC 라디오 발전에 오랫동안 기여한 진행자에게 수여되는 ‘골든 마우스’를 받으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고인의 남편은 2016년 별세한 성대경 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성지동 씨와 딸 성은애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6일 오전 6시 30분이다.
임국희는 라디오가 한 시대의 감성과 문화를 이끌던 시절, 목소리 하나로 청취자의 밤을 위로한 방송인이었다. 심야 라디오와 여성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넓힌 그의 발자취는 한국 방송사에 오래 남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