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시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프로젝트,김태한의 ‘페르소나 Ⅱ. 관계’ 4월 23일 개최

[공연 포스터] 금호아트홀 아름다운 목요일

바리톤 김태한의 2026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프로젝트는 ‘페르소나’라는 제목부터 흥미롭다. 무대 위 인물과 무대 밖 자아, 한 사람이 품은 여러 얼굴과 감정의 층위를 아우르는 이 단어는, 성악가라는 존재를 설명하는 데도 유효하다. 노래하는 이는 한 사람의 육체와 목소리를 지녔지만, 무대 위에서는 늘 타인의 삶을 통과한다. 그 안에서 성악가는 자신을 감추는 동시에 드러내고, 한 명의 인물로 존재하면서도 수많은 감정의 얼굴을 빚어낸다. 김태한이 올해 상주음악가 시리즈의 큰 주제로 ‘페르소나’를 택한 이유도 아마 그 지점에 닿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는 4월 23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두 번째 무대 ‘페르소나 Ⅱ. 관계’는, 그 여러 얼굴이 타인과 마주하는 순간 어디까지 흔들리고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연이다.

지난 1월 첫 무대가 여러 오페라 아리아를 통해 인물의 내면과 정서를 펼쳐 보였다면, 이번 공연은 시선을 보다 분명하게 바깥으로 향한다. 관계는 오페라를 움직이는 가장 본질적인 동력 가운데 하나다. 사랑과 욕망, 질투와 오해, 기대와 배반 같은 감정은 홀로 선 독백보다 누군가를 마주하는 장면에서 훨씬 또렷해진다. 한 사람이 노래를 시작할 때보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만나고 얽히며 감정을 밀고 당길 때 극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페르소나 Ⅱ. 관계’는 바로 그 접점에 집중하는 무대다. 독창 중심의 갈라를 넘어 이중창과 삼중창, 짧은 장면들을 엮어내며 인물들 사이를 흐르는 감정의 결을 하나의 작은 극처럼 펼쳐 보인다. 아리아를 병렬적으로 늘어놓기보다 관계의 흐름 안에서 다시 배열하는 방식은, 익숙한 오페라 장면들조차 새로운 표정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번 무대에 오르는 작품들은 그 자체로도 관계의 복합성을 선명하게 품고 있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도니제티의 ‘돈 파스콸레’와 ‘사랑의 묘약’,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비제의 ‘진주조개잡이’, 베르디의 ‘돈 카를로’까지, 각기 다른 시대와 양식의 오페라가 한 무대 안에 모인다. 그러나 이 공연의 흥미는 유명 작품의 명장면을 차례로 듣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작품 속 인물들이 ‘관계’라는 키워드 아래 다시 호명될 때, 관객은 줄거리의 단편보다 감정의 구조를 먼저 듣게 된다. 유혹과 경계, 설렘과 갈등, 애정과 불신이 교차하는 순간들은 작품의 맥락을 넘어 인간사의 오래된 장면으로 되살아난다. 그래서 이번 갈라는 단순히 오페라 하이라이트 모음집이 아니라, 관계가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확장하고 뒤흔드는지를 성악 앙상블로 압축해 보여주는 무대에 가깝다.

이런 기획이 설득력을 얻는 데에는 함께 무대에 서는 연주자들의 존재도 크다. 김태한을 중심으로 소프라노 김효영, 테너 김성호, 피아니스트 한하윤이 함께한다. 각기 다른 개성과 음색을 지닌 이들은 이번 공연에서 단지 게스트가 아니라, ‘관계’라는 주제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주체들이다. 특히 오페라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 성악가의 기량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성부가 어떻게 긴장을 만들고, 어떻게 감정을 떠받치며, 어떻게 순간의 균형을 이루는지가 장면의 생명력을 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은 한 명의 성악가를 조명하는 리사이틀이면서 동시에, 목소리와 목소리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연극적 호흡을 보여주는 앙상블의 무대이기도 하다.

김효영과 김성호는 현재 독일 오페라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각자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성악가들이다. 김효영은 또렷한 존재감과 선명한 표현력으로 무대의 중심을 붙드는 힘을 지녔고, 김성호는 가곡과 오페라를 아우르며 다져온 섬세한 해석으로 장면의 결을 풍성하게 만든다. 여기에 피아니스트 한하윤이 더해지며 무대는 더욱 긴밀한 호흡을 갖게 된다. 피아노는 오케스트라의 단순한 축소판이 아니라, 성악가들의 감정선과 템포, 장면의 호흡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서사적 축이다. 특히 금호아트홀처럼 섬세한 울림과 긴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공간에서 피아노는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무대 전체의 결을 다듬는 역할을 맡는다.

무엇보다 이 공연이 기대되는 이유는, 금호아트홀이라는 공간이 이번 기획과 유난히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대극장의 오페라에서 관객은 장대한 무대와 풍성한 오케스트라, 대규모 연출이 만들어내는 압도감을 경험한다. 반면 금호아트홀에서는 인물의 감정이 훨씬 작은 단위로,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감지된다. 표정의 변화, 시선의 방향, 호흡의 결, 목소리 끝에 맺히는 뉘앙스까지도 무대의 일부가 된다. 관계를 주제로 한 공연이라면 이러한 친밀감은 단순한 공간적 조건을 넘어 해석의 일부로 작동한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순간의 주저함, 상대의 말에 흔들리는 미세한 감정, 둘 이상의 목소리가 한 장면 안에서 만들어내는 긴장과 화해의 온도는 이처럼 가까운 공간 안에서 더 예민하게 살아난다. 오페라가 본래 지닌 연극성이 금호아트홀에서는 거대한 장치보다 인간의 몸과 목소리, 그리고 관계의 떨림을 통해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김태한에게 이번 무대는 상주음악가 프로젝트의 한 차례 공연 이상으로 읽힌다. 그는 202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이후 단숨에 국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유럽 무대에서 활동의 폭을 넓혀가며 젊은 바리톤으로서의 존재감을 분명히 해왔다. 금호문화재단이 2026년 상주음악가로 그를 선정하며 처음으로 성악가를 택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그 선택은 한 명의 유망주를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금호아트홀이 성악이라는 장르 안에서 얼마나 풍부한 서사와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김태한 역시 이번 시리즈를 통해 단지 뛰어난 바리톤이 아니라, 자신만의 주제의식과 서사적 감각으로 한 해의 무대를 설계하는 음악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연간 프로젝트 전체의 흐름 속에서 보더라도 ‘페르소나 Ⅱ. 관계’는 중요한 자리에 놓인다. 첫 무대가 여러 인물의 얼굴을 펼쳐 보였다면, 두 번째 무대는 그 인물들이 타인과 얽히며 비로소 변화하는 순간을 비춘다. 이어지는 ‘사랑’과 ‘고독’이 보다 깊은 정서의 층위로 나아간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번 공연은 내면과 외부 세계가 처음 본격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라고 할 만하다. 관계를 겪지 않은 사랑은 평면적이고, 관계를 통과하지 않은 고독은 깊이를 얻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페르소나 Ⅱ. 관계’는 독립된 갈라 무대이면서도, 김태한이 한 해 동안 완성해갈 음악적 서사의 가운데를 단단히 붙드는 공연이다.

결국 이번 무대가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명확하다. 오페라가 화려한 아리아의 장르이기 이전에, 인간이 타인과 만나며 변해가는 순간을 가장 농밀하게 드러내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다시 환기하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혼자 울릴 때도 아름답지만, 서로를 향할 때 비로소 더 복잡한 의미를 품는다. 김태한의 ‘페르소나 Ⅱ. 관계’는 바로 그 오래된 진실을 금호아트홀의 가까운 공기 속에서 다시 들려줄 것이다. 무대 위 인물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짧은 순간, 관객은 어쩌면 오페라의 줄거리보다 더 먼저 인간의 감정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사진제공:금호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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