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조각의 작가 표기는 어디까지가 정확한가, 명판보다 긴 기록의 범위
공공조각의 ‘작가 표기’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대개 작품명이나 인물명, 경우에 따라 조각가 이름 한 줄이지만, 제도와 기록의 기준으로 들어가면 이야기의 범위가 넓어진다. 누가 형상을 만들었는지뿐 아니라 어떤 재료로 어떤 시점에 세워졌는지, 이후 복원이나 재설치가 있었는지, 비문과 현판의 글씨는 누가 썼는지까지 분리해 적어야 사실관계가 맞아지는 경우가 많다. 공공조각의 명판은 기억의 입구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완결된 저작 정보가 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이 점은 현재 제도 문서에서도 확인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 해설서는 건축물 미술작품의 경우 작품 가까이에 작품명, 작가명, 재료, 크기를 표시하도록 적고 있다. 최소한의 식별 정보만 놓고 봐도 공공조각의 현장 표기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저작인격권과 연결된 정보라는 뜻이다. 경기도의 건축물 미술작품 FAQ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심의자료에 적힌 작가와 현장 명부의 작가가 다를 경우, 기존 작가와 신규 작가가 함께 적힌 경우를 포함해 설치확인서 발급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작가명은 현장 편의상 바꿔 적을 수 있는 문구가 아니라 심의와 설치의 동일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의미다.
명판은 한 줄인데, 기록은 왜 더 길어지나
미술관의 표기 원칙은 공공조각의 명판이 놓치기 쉬운 지점을 잘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출판 지침은 작품의 최초 제작연도와 재제작, 주조, 복원 연도가 다를 경우 최초 연도를 적고 괄호 안에 다른 연도를 병기하도록 안내한다. 또 소장품의 경우 복원과 관련한 특이사항을 추가로 기술할 수 있다고 적는다. 지침에 실린 예시 가운데 윤승욱의 작품은 1937년에 제작되고 1972년에 복원된 사실, 그리고 복원을 맡은 조각가 최의순의 이름까지 함께 설명된다.
이 기준을 공공조각에 대입하면, 현장의 짧은 명판만으로는 작품의 제작 이력을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난다. 특히 야외 동상이나 기념조형물은 한 번 세워진 뒤 끝나는 경우보다 보수, 이전, 재설치, 표면 정비를 거치며 오랫동안 존속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여전히 원제작자 이름 하나만 남고, 보수 시점이나 복원 책임자, 주조 공방, 추가된 주변 조형물의 제작 관계는 별도 기록으로 흩어지기 쉽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같은 작품을 두고도 ‘원작’, ‘현존본’, ‘복원본’ 가운데 무엇을 가리키는지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
광화문과 유달산 이순신 동상이 보여주는 차이
서울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은 공공조각의 표기가 얼마나 여러 층위로 구성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서울미래유산 기록에 따르면 이 동상은 1968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와 서울신문사 공동주관으로 건립됐고, 제작은 조각가 김세중이 맡았다. 같은 기록은 2010년 균열과 훼손 정비를 위해 임시 철거와 보수 작업이 이뤄졌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과 경축문이 남아 있다고 적고 있다. 즉 이 동상의 핵심 저작 정보만 떼어도 조각가, 건립 주체, 보수 이력, 현판과 경축문의 작성 주체가 한데 얽혀 있다.
광화문 동상을 설명할 때 흔히 ‘김세중의 이순신 동상’이라고 부르는 방식은 틀렸다고 하긴 어렵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기록이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동상의 명판과 부속 텍스트를 다루는 보도에서는 뒷면 명판에 이은상의 명문과 박정희의 헌납 표기가 함께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같은 구조는 다른 지역 기념물 기록에서도 반복된다. 목포문화원이 발간한 유달산 자료집은 1974년 목포 충무공 이순신 동상에 대해 탁련하의 조각, 박정희의 휘호, 이은상·최순우·최영희의 고증·심의, 목포 시민 성금과 지방비를 포함한 사업비, 동상 뒷면 문구까지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이 두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작가 표기’라는 말이 사실은 적어도 세 층으로 갈라진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첫째는 형상을 만든 조각가, 둘째는 비문이나 현판의 글씨를 쓴 사람, 셋째는 건립을 추진하고 비용을 댄 주체다. 여기에 보수와 복원이 있었다면 네 번째 층이 더해진다. 현장 명판이 이 가운데 한두 요소만 남기면 시민의 일상적 이용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미술사, 도시사, 전시와 보존의 관점에서는 이미 다른 정보가 빠진 셈이다.
정확한 표기는 이름을 더 쓰는 일이 아니라 역할을 나누는 일
그래서 공공조각의 표기를 개선하는 문제는 명판 글자 수를 무작정 늘리는 일과는 다르다. 더 중요한 것은 역할을 분리해 적는 방식이다. 최소한 현장에는 작품명, 조각가, 재료, 제작·건립 연도 같은 기본 식별 정보가 안정적으로 제시돼야 하고, 별도 기록이나 디지털 아카이브에는 건립 주체, 고증 참여자, 휘호·비문 작성자, 주조 또는 제작 공방, 보수·복원 연혁까지 연결돼야 한다. 그래야 같은 작품을 둘러싼 미술사적 저작 정보와 도시 공간의 기념물 정보가 서로 섞이지 않는다.
공공조각을 둘러싼 혼선은 대개 현장의 실수보다 기록 체계의 빈칸에서 생긴다. 심의 문서, 설치 확인, 기관 아카이브, 현장 명판이 서로 다른 수준의 정보를 갖고 있으면 시민은 가장 짧은 문장을 사실의 전부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제도 문서가 이미 보여주듯 공공조각의 ‘정확한 작가 표기’는 한 사람의 이름을 적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원작의 정보이고, 어디부터가 건립의 정보이며, 어떤 부분이 후대의 복원 기록인지를 구분해 남길 때 비로소 정확해진다.
자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정책지원센터, 「미술 분야 표준계약서 해설서」(2021); 경기도, 「건축물 미술작품 FAQ」(최종 수정일 2025-01-02);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출판 지침」(2020); 서울특별시, 「세종로 이순신 동상」 서울미래유산 기록; 서울특별시, 「세종로 세종대왕 동상」 서울미래유산 기록; 목포문화원, 「유달산」(발행연도 미상, 2024년 공개본 확인); 국민일보, 「[궁금한 미술] 장대한 아름다움… 민주화 역사 지켜 본 대한민국 상징」(2020-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