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캔버스에서 한지·마포·스프링까지, 한국 추상미술은 재료로 어떻게 형식을 바꿨나

한국 추상미술의 재료 변화를 연도순으로 더듬어 보면, 변화의 핵심은 단순히 색을 줄이거나 화면을 비우는 데 있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정보와 전시 기록을 대조하면 1950년대에는 캔버스와 유화 물감이 여전히 기본 문법이었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는 천의 조직, 종이의 흡수성, 금속 스프링 같은 물질이 화면 구조를 직접 바꾸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한지와 혼합재료가 더 이상 보조 수단이 아니라 작품의 형식 자체를 결정하는 요소로 올라선다.

이 흐름은 한 작가의 양식 변화만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김환기, 박서보, 하종현의 작품 기록을 나란히 놓으면, 한국 추상미술이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무엇 위에,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점점 더 전면에 내세워 왔다는 점이 선명해진다. 추상은 이미지의 생략이 아니라 재료의 전환을 통해서도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김환기에게서 보이는 1950~1970년대의 이동


김환기의 경우 변화의 출발점은 비교적 분명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인 1950년대작 ‘초가집’의 재료는 캔버스에 유화 물감이다. 화면의 모티프는 남아 있지만, 같은 미술관 소장품인 1968년작 ‘이른 아침 5-Ⅷ-68 #33’에 오면 설명의 중심이 달라진다. 작품명 자체가 날짜와 일련번호를 품고 있고, 미술관 설명도 뉴욕 시기 작업에서 구체적 모티프가 사라지며 점과 선으로 화면이 구성된다고 적고 있다.

재료만 놓고 보면 1968년 작품도 여전히 캔버스에 유화 물감이다. 그러나 1970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166’의 기록에서는 재료 표기가 ‘면천에 유채’로 제시된다. 김환기의 경우 재료 변화가 급격한 매체 전복이라기보다, 캔버스와 유채라는 기반을 유지한 채 화면 조직을 점과 선의 반복으로 재편하고, 그 위에 바탕 천의 성격을 더 분명히 드러내는 쪽으로 이동했다고 읽을 수 있다.

이 변화는 한국 추상미술의 한 갈래가 곧바로 비회화적 재료로 건너뛰었다는 통설을 조금 수정하게 만든다. 적어도 김환기의 사례에서 1950년대에서 1970년대로의 이동은 재료의 단절보다 화면 구성 원리의 변화가 먼저였고, 재료 변화는 그 다음 층위에서 따라붙는다.


1970년대, 지지체가 화면의 앞면으로 올라오다


재료가 본격적으로 형식의 주제가 되는 장면은 1970년대 작품들에서 더 분명하다. 하종현의 1973년작 ‘무제 73-1’은 재료가 패널, 천에 스프링으로 기록돼 있다. 유화 물감의 표면 처리보다 패널 위에 부착된 물질의 배열과 돌출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작업을 1970년대 오브제 관심과 연결해 설명한다.

하종현의 재료 실험은 곧바로 대표 연작 ‘접합’으로 이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설명과 보도자료에 따르면 ‘접합’은 1974년에 시작됐고, 1982년작 ‘접합-7’의 재료는 마포천에 유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료 명칭만이 아니다. 미술관은 하종현이 마포의 성긴 조직을 이용해 천의 뒷면에서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 넣는 방식, 이른바 배압법을 구현했다고 설명한다. 화면은 더 이상 물감이 얹히는 평면이 아니라, 천의 결을 통해 물감이 통과하며 형성되는 구조가 된다.

박서보의 1970~1980년대 작업도 같은 지점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묘법 No.16-78-81’의 재료는 면에 유화 물감, 흑연이다. 1970년대 묘법은 캔버스에 유백색 물감을 칠하고 연필로 선긋기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설명되는데, 여기서 흑연은 단순한 드로잉 도구가 아니라 회화의 표면을 만드는 주된 재료가 된다. 물감과 선, 바탕이 분리되지 않고 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1970년대 한국 추상미술은 서구식 추상회화의 재료를 답습했다기보다, 지지체와 표면을 다시 발명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마포천, 면, 흑연, 스프링은 모두 이미지의 외곽 장식이 아니라 화면이 성립하는 조건 자체가 된다.


1980년대 이후의 한지와 혼합재료, 과정이 형식이 된 시기


1980년대 이후에는 한지의 비중이 한층 커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박서보 작업을 설명하면서 1982년을 기점으로 전기 묘법과 후기 묘법을 구분하고, 전자가 캔버스나 양지에 유채안료와 연필을 중심으로 했다면 후자는 한지와 수성안료를 중심으로 한다고 적고 있다. 같은 기관 소장품인 1994년작 ‘묘법시리즈 5’는 종이에 모노타이프로 기록돼 있고, 2019년 회고전 소개에는 2007년작 ‘묘법 No.071021’의 재료가 ‘캔버스에 한지, 혼합재료’로 제시된다.

이 변화는 단순히 재료가 한국적인 것으로 바뀌었다는 식의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지는 흡수와 번짐, 눌림과 파임을 전제로 하는 재료이고, 그 성질 때문에 반복 행위의 시간 자체가 화면에 남는다. 박서보의 경우 1970년대의 연필 묘법에서 1980년대 이후 한지 작업으로 갈수록,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떤 표면이 어떤 시간 동안 만들어졌는가가 더 중요한 정보가 된다.

하종현의 경우도 비슷하다.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 수집 기록에 오른 ‘접합 2002-41(B)’ 역시 마포천에 유채로 등록돼 있다. 이는 1970년대에 시작된 재료 실험이 일회적 변주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정착된 제작 체계였다는 뜻이다. 즉 한국 추상미술의 재료 변화는 새로운 재료를 한 번 도입하고 끝내는 방식이 아니라, 특정 물질의 물성을 오랫동안 반복 시험하며 작가의 형식을 굳혀 가는 방식에 가까웠다.

이렇게 보면 ‘한국 추상미술’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도 변화의 방향은 하나가 아니다. 김환기는 캔버스와 유채의 틀 안에서 점과 선의 조직을 밀어붙였고, 하종현은 마포의 조직을 통해 물감의 이동 경로를 작품의 핵심으로 만들었으며, 박서보는 연필과 한지, 종이와 혼합재료를 통해 반복 행위의 시간을 표면에 새겼다. 공통점이 있다면 재료가 배경에 머물지 않고 형식 실험의 전면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정보 기준으로 2026년 10월 현재 김환기의 ‘이른 아침 5-Ⅷ-68 #33’과 박서보의 ‘묘법 No.16-78-81’은 과천관 3전시실 전시 상태로 등록돼 있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재료 변화가 현재의 전시 동선에서도 계속 읽히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추상미술을 연도별로 다시 보는 일은 결국 양식의 이름을 외우는 작업이 아니라, 작품 표면을 만든 물질과 제작 방식을 다시 읽는 일에 더 가깝다.

자료: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페이지 「김환기, 초가집」;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페이지 「김환기, 이른 아침 5-Ⅷ-68 #33」; 국립현대미술관,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작품 목록 및 해설」(2013);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페이지 「박서보, 묘법 No.16-78-81」;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페이지 「박서보, 묘법시리즈 5」;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페이지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201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페이지 「하종현, 무제 73-1」; 국립현대미술관, 보도자료 「국립현대미술관 하종현 전 개최」(2012-07-10);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자료 「한국의 단색화 전 대표작품 설명」(2012-04-06); 국립현대미술관, 「2012 미술관연보」(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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