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재외동포 문학의 언어 선택은 어떻게 달라졌나… 한국어 보존과 현지어 진입 사이의 작품들

재외동포 문학에서 언어는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작품이 들어가는 공론장과 독자층, 그리고 작가가 감당해야 하는 정체성의 무게를 함께 정한다. 같은 한국계 작가라도 어떤 시기에는 한국어를 지키는 일이 창작의 핵심이 됐고, 어떤 시기에는 일본어·러시아어·영어 같은 현지어로 써야만 자신이 놓인 사회를 직접 겨눌 수 있었다. 최근까지 이어지는 자료를 종합하면, 재외동포 문학의 언어 선택은 한국어 대 현지어의 이분법으로 설명되기보다 작품이 겨냥한 공동체와 유통 경로가 달라지면서 분화해 왔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일본어로 일본 문단에 들어간 재일 작가들


전후 재일조선인 문학에서 두드러진 장면은 일본어를 통해 일본 문단의 제도 안으로 들어간 경우다. 이회성의 「砧をうつ女」는 1972년 제66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으로 기록돼 있고, 그보다 앞서 그는 1969년 「またふたたびの道」로 군조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이회성의 초기 경로는 재일조선인 작가가 일본어로 일본의 문학 제도 안에서 자신의 서사를 공론화한 대표적 사례로 읽힌다.

이 선택은 한국어를 버리고 일본어를 택했다는 단순한 도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당시 재일 작가에게 일본어는 식민지의 잔재이면서도 동시에 일본 사회의 차별과 전후 질서를 직접 겨눌 수 있는 현실 언어였다. 작품이 발표되는 잡지, 심사 제도, 독자층이 모두 일본어권에 있었기 때문에, 언어 선택은 정체성의 후퇴라기보다 사회적 발화의 통로에 가까웠다.


이양지 이후, 언어는 ‘어느 쪽 언어인가’보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가’의 문제가 됐다


1980년대 후반의 이양지는 재일 문학의 언어 문제를 더 내면적인 층위로 밀어 넣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由熙」는 1988년 하반기 수상작으로 기록돼 있으며, 단행본 소개에서도 주인공이 한국의 대학에 들어가지만 주변의 한국인들과 끊임없이 어긋남을 느끼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는 서사로 설명된다. 여기서 언어는 어느 한쪽에 ‘성공적으로 편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모국이라 불리는 장소에서도 이방인으로 남게 만드는 감각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이양지의 경우 중요한 점은 한국어가 곧바로 귀속의 언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자란 재일 작가가 한국을 향해 가더라도, 생활언어와 정동의 층위는 이미 일본어와 뒤엉켜 있다. 그래서 「由熙」가 보여 주는 갈등은 한국어를 회복하면 정체성이 복원된다는 서사가 아니라,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서 자신의 말이 쉽게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상태 자체를 문학의 주제로 끌어올린 데 있다.


러시아어와 영어로 넓어진 디아스포라 문학의 독자권


재외동포 문학의 언어 선택이 일본어권에만 머문 것도 아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KLWAVE 작가 정보는 아나톨리 김을 러시아에서 태어난 고려인 3세의 러시아어 작가로 소개한다. 같은 한국계 혈통이라도 러시아어로 쓰인 작품은 한국문학 내부의 주변 사례가 아니라, 소비에트와 러시아의 역사적 경험을 자기 언어권에서 서사화한 별도의 축을 보여 준다. 이 경우 한국어는 창작의 직접 언어가 아니지만, 작가의 계보와 작품의 해석에서는 여전히 결정적인 배경으로 남는다.

영어권에서는 이민진의 「파친코」가 분기점에 가깝다. 작가 공식 소개와 도서 정보에 따르면 이 작품은 영어로 출간된 소설이며,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지는 재일조선인 가족사를 다룬다. 이 작품에서 한국계 디아스포라의 경험은 더 이상 한국어권이나 일본어권 내부에만 머물지 않고, 영어라는 국제 유통 언어를 통해 세계 문학 시장으로 이동했다. 언어 선택의 기능이 소수자 내부의 증언에서 세계 독자를 상대로 한 역사 서사로 확장된 셈이다.

이 흐름은 현지어 창작이 곧 동화라는 낡은 해석을 흔든다. 일본어가 일본 사회의 제도 안에서 존재를 말하게 했다면, 영어는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국경 밖 독자에게 설명하는 매개가 됐다. 러시아어 역시 고려인 공동체의 경험을 그 사회의 역사 문맥 속에서 서사화하는 언어로 기능했다. 언어가 달라질수록 작품이 편입되는 문학장과 독자의 범위도 함께 바뀌었다.


그렇다고 한국어의 자리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현지어 창작이 확대됐다고 해서 한국어의 비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재외동포청의 2025년 제27회 재외동포 문학상 공고는 이 상을 재외동포의 한글문학 창작 마당으로 규정하고, 한민족 정체성 강화와 상호이해 제고를 목적으로 1999년부터 시행해 왔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2025년 수상작 작품집도 정부간행물로 등록돼 있다. 이는 한국어가 여전히 공동체 보존과 문화적 연결의 핵심 제도 언어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동시에 한국문학번역원은 KLWAVE를 통해 번역, 출판, 국제교류 정보를 묶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의 재외동포 문학은 한국어 창작과 현지어 창작이 경쟁적으로 맞서는 구조라기보다, 한국어 창작·현지어 창작·번역과 재유통이 함께 움직이는 다층 구조에 가깝다. 과거에는 어떤 언어로 쓰느냐가 곧 소속의 문제로 읽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어떤 언어로 누구에게 도달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재외동포 문학의 언어 선택을 시대별로 놓고 보면 결론은 비교적 분명하다. 1970~80년대 재일 문학에서 현지어는 차별과 제도를 정면으로 통과하기 위한 현실 언어였고, 이후에는 두 언어 사이의 균열 자체가 작품의 주제가 됐다. 2000년대 이후에는 영어와 러시아어 같은 현지어가 세계 시장과 지역 역사 속에서 디아스포라 경험을 확장하는 통로가 됐으며, 한편으로 한국어는 문학상과 교육, 번역 지원 제도를 통해 공동체를 묶는 축으로 남아 있다. 재외동포 문학은 한국어와 현지어 사이에서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택해 온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독자와 다른 공론장을 향해 언어의 자리를 계속 다시 배치해 온 셈이다.

자료: 더불어민주당, 녹서 2025(2025); 공익재단법인 일본문학진흥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목록(2026년 7월 현재); 고단샤, 『またふたたびの道・砧をうつ女』·『由熙』·『家族シネマ』 도서 소개; 국립국회도서관, 『家族シネマ』 서지정보; 한국문학번역원 KLWAVE, Anatoli Kim 작가 정보·KLWAVE 소개·지원사업 안내(2026); Min Jin Lee, PACHINKO 공식 도서 소개;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서지, 『파친코』 서지정보; 재외동포청, 2025년 제27회 재외동포 문학상 공고; 국가기록원, 『2025 재외동포 문학의 창』 정부간행물 등록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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