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봉선화’와 ‘동무생각’ 초창기 악보를 보니, 달라진 건 가사보다 제목과 표기였다

한국 가곡의 초창기 악보와 오늘 널리 불리는 노랫말을 맞대어 보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변화는 의외로 크지 않다. 적어도 대표작 몇 편에서는 가사의 뼈대가 통째로 바뀌었다기보다 제목이 바뀌고, 한자어가 쉬운 우리말로 옮겨 가고,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시대에 맞게 정리된 흔적이 더 선명하다. 한국 가곡이 무대에서만 전승된 것이 아니라 악보집, 교과서, 각종 편집본을 거치며 굳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봉선화’는 처음부터 그 제목의 가곡이 아니었다


홍난파의 ‘봉선화’는 흔히 한국 근대 가곡의 출발점처럼 기억되지만, 출발은 성악곡이 아니라 기악곡 ‘애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근대문화유산 목록화 조사 보고서를 보면, 홍난파는 1920년 ‘애수’를 먼저 발표했고, 1926년 김형준이 여기에 가사를 붙인 뒤 연악회의 악보집 ‘세계명작가곡선집’에서 ‘봉선화’가 가곡으로 처음 발표됐다. 지금 우리가 한 곡의 완결된 노래로 기억하는 작품이 사실은 선율과 가사가 시간차를 두고 결합한 결과였다는 뜻이다.

이 노래의 변화는 본문 가사보다 표제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보고서는 ‘봉선화’라는 제목이 광복 이후 국어 맞춤법에 따라 ‘봉숭아’로 바뀌어 전해졌다고 적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교과서 수록 과정에서 한자어 제목이 순우리말 쪽으로 옮겨 간 경위를 설명한다. 오늘날에는 ‘봉선화’와 ‘봉숭아’가 함께 쓰이지만, 이 병존 자체가 노래의 유통 경로를 보여 주는 역사다. 한 작품이 무대에서는 예술가곡으로, 학교와 생활 언어에서는 보다 친숙한 제목으로 다시 읽힌 셈이다.


‘동무생각’의 가장 큰 변화도 가사 자체보다 제목의 이동에 있었다


박태준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동무생각’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곡은 처음부터 지금의 제목으로 불린 것이 아니라 ‘사우(思友)’라는 이름으로 1922년 발표됐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이 작품을 1922년 창작된 가곡으로 정리하면서, 봄·여름·가을·겨울의 4절 구조와 가사를 함께 싣고 있다. 근대문화유산 목록화 조사 보고서 역시 박태준의 초기 악보집에 ‘사우’, 곧 오늘의 ‘동무생각’이 실렸다고 설명한다.

여기서도 핵심은 노랫말의 전면 개작보다 표기의 현대화다. 초기 자료에는 ‘사우’라는 한자 제목이 앞에 서고, 가사 표기 역시 지금 기준으로 보면 띄어쓰기와 어절 구분이 성기다. 반면 오늘 공연 안내나 문화포털 자료에서는 같은 곡이 대체로 ‘동무생각’이라는 우리말 제목으로 소개되고,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흰 나리꽃’처럼 현대식 띄어쓰기로 정리된다. 노래의 정서와 이미지, 곧 청라언덕과 백합, 사계절의 풍경으로 벗을 그리는 구조는 이어졌지만 독자가 읽는 표면은 시대의 국어 규범에 맞춰 달라진 것이다.


왜 가사보다 제목과 표기가 더 많이 바뀌었나


이 차이는 한국 가곡의 형성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1920~1930년대의 한국 가곡은 서양식 예술가곡 형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악보집 편찬, 학교 수록, 합창과 독창의 교육 현장을 통해 널리 퍼졌다. 한번 정착한 선율과 핵심 노랫말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지만, 제목과 표기는 독자의 눈높이와 국어 정책, 편집 관행에 따라 손보기 쉬운 영역이었다. ‘봉선화’가 ‘봉숭아’와 나란히 살아남고, ‘사우’가 ‘동무생각’으로 더 널리 불리게 된 이유도 여기에 가깝다.

이렇게 보면 초판 악보와 오늘의 노랫말을 비교하는 일은 단순한 옛말 찾기가 아니다. 어떤 말이 사라졌는지보다, 어떤 말이 살아남도록 편집되고 가르쳐졌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한국 가곡의 원형은 작곡가와 작사가가 한 번에 완성한 텍스트 안에만 있지 않았다. 이후의 악보 편집자, 교과서 편찬자, 공연 기획자들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쉽게 바꾸었는지까지 포함해 오늘의 ‘표준 가사’가 만들어졌다.

이 노래들이 지금도 현재형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서울문화포털에는 2026년 9월 열린 ‘2026 홍난파가곡제’가 올라와 있는데, 행사명과 프로그램 소개에서조차 ‘봉숭아’라는 생활어적 기억과 홍난파 가곡의 정전이 함께 호출된다. 초창기 악보의 표기 변화가 과거의 사소한 흔적에 그치지 않고, 지금도 한국 가곡을 부르고 기억하는 방식에 남아 있다는 뜻이다.

자료: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포털 예술지식백과 「사우-박태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봉선화」·「가곡」; 한국학중앙연구원, 대구역사문화대전 「사우(동무생각)」; 문화체육관광부, 서울문화포털 「2026홍난파가곡제」(2026.9.20.); 문화체육관광부, 『근대문화유산 음악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 보고서』(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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