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여성 서사의 결말은 하나였나, 필사본이 남긴 ‘숙영낭자전’의 다른 끝
고전 여성 서사의 주인공은 흔히 이미 정해진 결말 속 인물처럼 읽힌다. 그러나 전승 과정이 긴 고전소설에서는 결말조차 하나가 아닌 경우가 있다. 그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숙영낭자전」이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줄거리는 억울하게 죽은 숙영이 다시 살아나 남편 백선군과 재회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방향에 가깝다. 하지만 필사본 계열을 따라가면 이야기는 더 비극적이고, 더 불편하며, 때로는 훨씬 덜 봉합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이본의 재미가 아니다. 여성 주인공을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를 바꾸는 단서이기 때문이다. 같은 작품 안에서도 어떤 전승은 숙영을 가부장 질서의 희생자로 두드러지게 만들고, 다른 전승은 그 비판을 완화한 채 가문 질서의 회복으로 수렴한다. 필사본에 남은 다른 결말은 고전 여성 서사를 다시 읽는 출발점이 된다.
숙영은 어떻게 기억돼 왔나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이 소개하는 「숙영낭자전」은 1924년 조선도서에서 나온 딱지본이다. 이 자료는 작품을 전생과 이생을 관통하는 애정소설로 설명하면서도, 숙영이 시아버지의 의심과 모함 속에서 자결에 이르는 대목, 그리고 그 책임을 여성인 숙영이 더 무겁게 감당하는 구조를 함께 보여준다. 대중적으로 유통된 판본의 겉모습만 보아도 이 작품이 단순한 해피엔딩 연애담으로만 읽히기 어려운 이유가 드러난다.
숙영은 사랑의 대상에 머무는 인물이 아니다. 누명을 쓰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작품은 여성의 정절, 가문의 체면, 시부모의 권위가 어떻게 한 인물의 몸에 집중되는지를 밀도 있게 서사화한다. 이 때문에 「숙영낭자전」은 오래전부터 애정소설이면서도 가족제도와 여성 수난의 문제를 함께 품은 작품으로 읽혀 왔다.
필사본은 왜 다른 결말을 남겼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정리는 이 작품의 결말 차이를 비교적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필사본계는 목판본계와 달리 숙영의 비통한 장례가 서사의 중요한 장면으로 들어가고, 못 속에서 숙영이 재생해 나오는 흐름을 보인다. 더 나아가 일부 필사본은 재생한 숙영이 부모와 별거하는 결말을 택하거나, 아예 장례 사건 자체를 결말로 삼기도 한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널리 유통된 판본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다시 가문 질서 안으로 정리되지만, 일부 필사본에서는 상처가 완전히 봉합되지 않는다. 숙영이 살아 돌아오더라도 이전의 집으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균열이 남은 채 다른 삶의 배열이 제시되는 것이다. 여성 주인공의 비극을 서둘러 수습하지 않는 결말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뜻이다.
반면 같은 백과사전은 경판본과 활자본에서는 숙영이 재생한 뒤 특별한 갈등 없이 집으로 돌아와 선군과 백공 부부와 함께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방향으로 정리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는 시아버지에 대한 비판이 완화되고, 가문 질서의 회복이 더 또렷해진다. 결말의 이동은 곧 해석의 이동이다.
행복한 결말은 언제 더 강해졌나
서혜은의 연구에 따르면 경판본 소설이 후대로 가며 축약되는 과정에서 「숙영낭자전」은 비탄 장면이 줄고 행복한 결말을 지향하는 애정 서사가 더 부각됐다. 이는 단지 분량의 문제가 아니다. 독자층의 취향과 출판 유통의 논리가 서사의 감정 배치까지 바꾸었다는 뜻에 가깝다. 슬픔과 갈등, 제도 비판의 결이 옅어질수록 작품은 읽기 쉬운 연애담과 가정 회복담으로 재편된다.
이 변화는 고전이 한 번 만들어지고 끝나는 텍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같은 제목 아래서도 어떤 판본은 여성의 억울한 죽음과 장례의 비통함을 더 오래 붙들고, 어떤 판본은 재생 이후의 화해와 질서 회복을 앞세운다. 오늘의 독자가 접한 표준적 줄거리가 작품의 유일한 본모습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주인공을 다시 읽으면 무엇이 달라지나
최근 연구는 이런 차이를 바탕으로 숙영을 보다 능동적인 인물로 읽는다. 권영희는 이 작품의 일부 필사본 계열을 분석하며 숙영의 서사를 ‘혼인-죽음-재생-승천’의 구조로 보고, 그 안에서 숙영이 가족의 형성과 분리, 재구성에 관여하는 주체적 면모를 드러낸다고 해석했다. 숙영을 오직 비극의 희생자로만 보는 독법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셈이다.
물론 이 해석이 작품의 폭력을 지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숙영이 주체성을 갖는다는 말은 그가 자유롭다는 뜻이 아니라, 제약이 가장 거센 자리에서조차 자신의 선택과 의지를 서사 안에 남긴다는 뜻에 가깝다. 그래서 필사본의 다른 결말은 여성 인물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살아 돌아오는 숙영, 부모와 떨어지는 숙영, 장례로 끝나는 숙영은 서로 다른 시대의 독서와 감정을 품고 있다.
고전을 발굴하고 번역한다는 일의 의미도 이 지점에서 다시 드러난다. 고전 한 편을 오늘말로 옮긴다는 것은 낡은 이야기를 쉽게 풀어 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떤 판본을 본문으로 삼을지, 지워진 결말을 어떻게 설명할지, 주인공의 형상을 누구의 시선으로 복원할지를 함께 결정하는 작업이다. 「숙영낭자전」의 필사본이 남긴 다른 결말은, 고전 여성 서사가 애초부터 단일한 교훈으로 닫혀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료: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애정소설] 숙영낭자전」(등록일 2017-01-06);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숙영낭자전」; 서혜은, 「경판본 소설의 후대적 변모 양상 연구」(『민족문화논총』 58, 2014); 권영희, 「「숙영낭자전」 여주인공의 ‘가족 구성의 욕망’ 형상과 그 의미」(『횡단인문학』 9,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