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공연이 피해 경험을 예술로 옮길 때, 필요한 것은 한 장의 동의서보다 긴 협의다
재난을 다룬 추모 공연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작품의 완성도가 아니라 누가 자신의 경험을 어떤 조건으로 말하고 있는가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실제 문화예술 사례들을 비교해 보면, 피해자의 경험을 예술로 옮길 때 필요한 동의는 단순한 서명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발화의 주체가 누구인지, 기록과 유품을 어디까지 공개할지, 그 경험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다시 해석할 수 있는지까지 나누어 협의하는 과정이 동의의 실질에 더 가깝다.
이 기준은 기록 분야의 원자료에서도 확인된다.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의 구술기록 수집·관리 지침은 구술의 녹음·녹화, 녹취록 작성, 보존·관리, 연구·출판·교육 등 공익 목적의 활용, 비공개 범위와 기간을 각각 나누어 협의하도록 설계돼 있다. 동의는 여기서 말할 권한을 한 번 넘기는 절차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가릴지, 공개와 비공개의 경계를 어떻게 정할지 조정하는 구조로 제시된다.
피해자가 무대의 주체일 때와 아닐 때
세월호 추모 예술의 축적은 이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소개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유가족이 직접 참여하는 극단으로, 2022년 기준으로 <그와 그녀의 옷장>, <이웃에 죽고 이웃에 살고>, <장기자랑>, <기억여행>을 공연해 왔다. 2024년 세월호 참사 10주기에는 이 작품들을 다시 묶어 기획공연으로 올렸고, 2026년 4월 연극제에서도 노란리본의 작품 <노란 빛 사람들>이 개막작 가운데 하나로 소개됐다.
이 경우 공연은 피해자의 경험을 외부 창작자가 대신 재현하는 형식과 다르다. 말하는 사람과 재현되는 사람이 크게 겹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윤리적 문제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서사의 주도권이 당사자 공동체 안에 남아 있다는 점에서 동의의 출발점이 다르다. 같은 추모 공연이라도 피해자를 소재로 삼는 것과 피해자가 자기 경험을 무대 언어로 바꾸는 것은 같은 범주로 다루기 어렵다.
치유 프로그램에서 나온 작품은 왜 다른가
생존자가 직접 만든 작업은 또 다른 층위를 보여준다. 2023년 3월 20일 4·16재단이 소개한 제주 세월호 생존자 작품 전시회 ‘일상을 그리다’는 제주 세월호 피해 상담소의 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한 생존자들이 만든 그림, 사진, 도자기 공예 결과물을 모은 전시였다. 재단 설명에 따르면 이 전시는 2016년 이후 매년 이어졌고, 2023년 전시에는 생존자 6명의 작품 약 25점이 소개됐다.
이 사례에서 중요한 점은 작품이 곧바로 ‘참사의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먼저 상담과 치유의 맥락이 있고, 그 다음에 전시와 지역사회 소통이 따라온다. 피해 경험이 예술로 번역될 때도 시간차와 목적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어떤 말은 조사기록으로 남는 데 동의했더라도, 같은 내용을 공연의 대사나 영상, 홍보 문구로 다시 쓰는 데까지 자동으로 동의한 것은 아니다.
유류품을 예술 재료로 쓸 때 필요한 추가 질문
가장 조심해야 하는 지점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피해의 흔적을 작품 재료로 다룰 때다. 4·16재단은 2023년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유류품과 뻘을 활용한 예술창작작품 아이디어 스케치 공모전을 열고, 이를 2024년 10주기 특별전시로 활용하겠다고 공고했다. 공모문에는 현장설명회와 제출서류, 개인정보 수집·이용 동의서가 명시돼 있었지만, 행정적 동의와 별개로 유류품의 예술적 전환을 어떤 기준과 협의 절차로 판단했는지는 더 세밀한 설명이 필요한 영역으로 남는다.
유류품은 일반적인 창작 재료가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과 상실, 수습과 보관, 반환과 추모의 시간이 겹쳐 있는 물건이다. 이 물건을 무대 오브제나 전시물, 홍보 이미지로 바꾸는 순간 동의의 대상도 늘어난다. 소유와 보관의 권한, 공개 범위, 맥락 설명, 상업적 이용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 유가족과 생존자가 그 전환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함께 있어야 한다.
추모 공연의 동의는 최소 네 번 확인돼야 한다
실제 자료를 종합하면, 재난을 다룬 추모 공연에서 필요한 동의는 적어도 네 갈래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의 경험을 말하거나 남길 것인지에 대한 최초 동의다. 둘째, 그 기록을 어디까지 공개할지에 대한 공개 동의다. 셋째, 연극·뮤지컬·낭독·영상 같은 2차 창작으로 변환하는 데 대한 재사용 동의다. 넷째,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 사용을 유지할지, 일부를 비공개하거나 철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후 협의다.
이 네 단계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추모는 쉽게 대리재현으로 기울 수 있다. 특히 공연은 반복 상연과 홍보, 촬영, 관객 후기, 교육 프로그램으로 확장되기 쉽기 때문에, 처음의 선한 의도만으로 윤리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반대로 피해자와 생존자, 유가족이 창작의 주체로 참여하고, 공개 범위와 재사용 조건을 세밀하게 정할수록 예술은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형식에서 벗어나 기억의 공동 작업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세월호 관련 예술이 2026년에도 연극제와 전시, 청년 참여 프로그램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기억의 지속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 지속이 정당하려면, 재난 서사를 계속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누가 갖는지 묻는 절차도 함께 계속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추모 공연에 필요한 동의는 공연 시작 전에 받는 허락이 아니라, 기억을 어떻게 함께 다룰 것인지 끝까지 협의하는 책임에 가깝다.
자료: 재단법인 4·16재단, [4·16재단 기자단] 제주 세월호 생존자 작품 전시회 ‘일상을 그리다’(2023-03-20); 재단법인 4·16재단, [공모 마감] 4.16 세월호참사 유류품을 활용한 예술창작작품 아이디어 스케치 공모전(2023-08-11); 재단법인 4·16재단, [4월연극제] 개막식 ‘노란빛 사람들’(2026-04-17); 사단법인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4.16가족 동아리 소개(열람 2026-10-23);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대통령기록관구술기록수집·관리지침(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