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한국학 강의의 읽기 목록, 고전은 입구에 놓이고 현대문학은 중심을 차지했다
해외 대학의 한국학 강의에서 한국문학은 대체로 두 층위로 배치된다. 고전문학은 한국문학의 기원을 설명하고 장르의 계보를 여는 입구에 놓이고, 실제 주차별 읽기의 중심은 식민지기 이후의 현대문학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공개된 영어권 대학 강의계획서를 비교하면, 전 시기를 아우르는 개설 과목에서도 학생들이 반복적으로 읽는 텍스트는 근현대 소설과 산문에 집중되고, 고전은 발췌문·장르 소개·현대 재해석의 기준점으로 배치되는 경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차이는 단순히 “해외에서 고전을 덜 읽는다”는 식의 선호 문제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번역본의 축적 정도, 수업 언어가 영어라는 조건, 작품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 설명에 필요한 시간, 그리고 고전 텍스트를 다루기 위한 언어 훈련의 문턱이 함께 작동한 결과에 가깝다.
공개 강의계획서가 보여주는 공통 패턴
한국문학 관련 영문 강의계획서를 모아 공개한 한국문학협회(Korean Literature Association)의 실러버스 아카이브는 이런 비교를 가능하게 한다. 이 아카이브는 번역본을 주로 사용하는 최근 강의계획서를 모은 자료인데, 여기서 확인되는 여러 대학의 수업은 같은 한국문학 과목이라도 고전과 현대의 배치 방식이 상당히 다르다.
하버드대 시네 박 교수의 2024년 봄 학부 과목 ‘Korean Literature in Translation’은 이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강의계획서는 이 수업이 연대기 순서로 움직이지 않고 전근대와 근현대를 섞어 읽는다고 밝힌다. 실제 읽기 목록에는 조위한의 ‘최척전’, 유몽인의 ‘계월향전’ 계열 이야기, 이규보와 익명의 전근대 산문·시가가 포함되지만, 수업의 큰 덩어리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 박완서, 조세희, 나혜석, 이상, 박태원, 김승옥 같은 20세기 이후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기억, 주거, 가족, 몸, 철도, 식민지 도시, 해방 이후와 분단 같은 주제 구간도 대부분 근현대 텍스트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
하와이대 마노아의 2023년 봄 과목 ‘Korean Literature in Translation—Modern’은 아예 범위를 현대문학으로 한정한다. 첫 주부터 이광수의 1909년 작품을 읽고, 이어 나혜석, 현진건, 김동인, 강경애, 이상, 채만식, 윤흥길, 박완서, 최윤, 조세희, 김애란을 거쳐 2000년대 작품으로 마무리한다. 전근대 작품은 읽기 목록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트머스대의 2022년 여름 과목 ‘Modern Korean Literature in Global Context’도 비슷하다. 수업은 이광수와 ‘무정’에서 출발해 만주와 식민지 근대성, 김사량의 이중언어 글쓰기, 한국전쟁과 분단, 재일·재미 디아스포라, 그리고 한류의 글로벌 순환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한국문학은 전통문학사 전체의 소개보다 20세기 이후의 역사 경험과 세계문학적 이동을 해석하는 통로로 기능한다.
고전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전문 과목’이나 ‘매개 과목’에 모인다
그렇다고 해외 한국학에서 고전문학이 밀려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고전은 별도의 집중 과목에서 더 분명한 형태로 살아 있다. 하버드대의 ‘Classical Korean Literature’ 과목은 조선시대 문학과 문학문화를 깊고 느린 읽기로 다루며, 하버드옌칭도서관과 하버드 미술관 소장 자료까지 활용한다고 안내한다. 이 수업 역시 모든 읽기를 영어로 제공하지만, 작품 이해의 무게중심은 분명히 전근대 문학 자체에 놓여 있다.
코넬대의 2022년 가을 과목 ‘Korean Literature and Performance: from P’ansori to K-pop’은 고전이 해외 수업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수업은 첫머리에서 판소리와 영화 ‘서편제’를 함께 다루고, 이어 ‘심청가’, ‘춘향가’, 혜경궁 홍씨의 회고록, 시조를 읽는다. 이후에는 김지하, 임권택의 ‘춘향’, 봉준호의 ‘마더’, 한강의 ‘채식주의자’,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으로 옮겨 간다. 고전은 독립된 과거가 아니라, 현대 공연·영화·소설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형식과 모티프의 원천으로 배치된다.
이런 구성은 해외 강의에서 고전이 종종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완결된 정전”보다 “현대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한 선행 문법”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판소리, 시조, 궁중 회고록 같은 형식은 현대 대중문화나 세계문학 번역시장과의 연결 고리를 설명할 때 강한 교육적 효율을 갖는다.
읽기 목록의 비대칭은 번역 인프라의 비대칭이기도 하다
공개 강의계획서에서 확인되는 고전과 현대의 비율 차이는 번역 출판의 기반과도 연결된다. 컬럼비아대 출판부가 2018년 펴낸 ‘Premodern Korean Literary Prose’는 10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산문을 묶은 영문 선집인데, 출판사는 이 책이 영어권에서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전근대 장르들을 보여 주며 전근대 한국문학 연구의 큰 공백을 메운다고 설명한다. 전근대 한국문학이 영어 강의에서 자주 선집과 발췌 중심으로 유통되는 배경이 여기서 드러난다.
반대로 2005년 출간된 ‘Modern Korean Fiction: An Anthology’는 20세기 한국사의 변화를 보여 주는 대표 선집으로 소개되며, 대학 수업의 표준 교재가 될 만한 책이라는 평가를 함께 싣고 있다. 근현대문학은 이미 장편과 단편, 작가 선집, 여성문학 선집, 특정 작가 리더 등 수업에 바로 넣을 수 있는 영어본 축적이 상대적으로 두텁다. 수업에서 현대문학이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단지 최근 작품이 흥미로워서가 아니라, 교실에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번역본의 두께 차이와도 관계가 있다.
전근대 핵심 텍스트의 번역이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SOAS가 2025년 연 행사 안내에 따르면 ‘삼국유사’는 그해 나온 책이 첫 주석본 영어 완역으로 소개됐다. 한국 고전문학의 가장 기본적인 축에 속하는 텍스트조차 영어권에서는 최근까지도 본격적인 주석 번역이 드물었다는 뜻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survey 과목에서 고전이 전체를 이끄는 중심 텍스트가 되기보다, 선집의 일부나 특정 주제의 사례로 채택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언어의 문턱도 읽기 목록을 바꾼다
고전문학이 별도 과목으로 묶이거나 발췌 중심으로 다뤄지는 데에는 학문 훈련의 차이도 작용한다. 하버드대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의 대학원 안내를 보면, 전근대 한국문학 전공자는 현대 한국어뿐 아니라 17세기부터 20세기 초의 고전 한국어, 중급 수준의 한문, 중급 일본어 능력을 요구받는다. 같은 학교의 박사과정 언어 요건에서도 현대 한국 전공자와 달리 전근대 한국 전공자는 더 높은 수준의 문리 한문 훈련이 필요하다.
이 조건은 해외 학부 수업의 읽기 목록에도 간접적으로 반영된다. 현대문학은 영어 번역본만으로도 작품 토론이 가능하지만, 고전문학은 텍스트 자체뿐 아니라 문자체계, 이본, 한문과 국문의 관계, 공연 전승과 필사 문화 같은 배경 설명이 따라붙는다. 수업 시간이 한정돼 있을수록 교수자는 고전을 짧게 배치하고, 식민지기 이후의 소설과 산문을 중심축으로 삼기 쉽다.
결국 해외 한국학 강좌의 읽기 목록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취향보다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 현대문학은 식민지, 전쟁, 산업화, 젠더, 도시, 디아스포라, 한류 같은 주제를 한 학기 안에 비교적 곧바로 토론할 수 있게 해 주는 반면, 고전문학은 더 많은 번역 장치와 해설, 언어적 중개를 요구한다.
그래서 공개 강의계획서를 따라가 보면 하나의 패턴이 남는다. 한국 고전문학은 해외 한국학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전문 과목에서는 깊게 읽히고, 통합 과목에서는 장르의 원형과 문화적 기억의 저장고로 호출된다. 반면 실제 주차별 읽기의 중심은 번역 인프라가 두텁고 세계사적 의제와 바로 연결되는 근현대문학이 차지한다. 해외 한국학의 읽기 목록을 넓히는 문제는 결국 더 많은 고전 번역과 주석본, 그리고 수업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용 판본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축적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료: Korean Literature Association, Teaching Resources(2023.6.8. 수록 안내); Si Nae Park, KORLIT 134 Korean Literature in Translation Preliminary Syllabus for Spring 2024(2024); University of Hawai‘i at Mānoa, EALL 282 Korean Literature in Translation—Modern Syllabus Spring 2023(2023); Miya Qiong Xie, Modern Korean Literature in Global Context Syllabus(2022); Ivanna Sang Een Yi, Korean Literature and Performance: from P’ansori to K-pop Syllabus(2022); Harvard University East Asian Languages and Civilizations, Korean Literature 110. Classical Korean Literature; Harvard University East Asian Languages and Civilizations, XII. Faculty and Fields; Harvard University East Asian Languages and Civilizations, V. Coursework and Language Requirements; Columbia University Press, Premodern Korean Literary Prose: An Anthology(2018); Columbia University Press, Modern Korean Fiction: An Anthology(2005); SOAS University of London, Book Launch – Vestiges of the Three Kingdoms of Ancient Korea: A Translation of the Samguk yusa(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