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카프카의 제목은 왜 ‘심판’에서 ‘소송’으로 바뀌었나, 독일어 원제와 국내 번역본의 거리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한국어로 읽다 보면 같은 작품이 서로 다른 제목으로 유통된 흔적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심판』과 『소송』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목이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번역자의 취향 하나보다 원제의 의미, 카프카 사후의 편집 과정, 영어·일본어를 거친 수용의 역사, 그리고 최근의 원전 중심 번역 경향이 서로 겹쳤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카프카의 장편들 가운데서도 특히 두드러진다. 『변신』은 독일어 원제 「Die Verwandlung」과 한국어 제목이 오랫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대응해 왔다. 반면 『소송』의 원제는 카프카가 남긴 표기로는 「Der Process」이고, 오늘 널리 쓰이는 「Der Prozess」는 후대 편집자가 정서법에 맞춰 굳힌 형태다. 또 『실종자』의 경우 카프카가 붙인 제목은 「Der Verschollene」였지만, 친구이자 유고 편집자였던 막스 브로트가 1927년 「Amerika」라는 제목으로 출간하면서 세계적으로 먼저 알려졌다. 제목 번역의 혼선은 애초부터 독일어 원고 바깥에서 시작된 셈이다.


‘심판’과 ‘소송’ 사이, 무엇을 더 앞세우느냐의 문제


「Der Prozess」가 왜 한때 한국에서 널리 『심판』으로 읽혔는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영어권 표제 「The Trial」은 재판, 심리, 심판 같은 뜻을 함께 떠올리게 하고, 일본어 번역에서도 ‘심판’ 계열의 제목이 일찍 정착했다. 이런 경로를 거치면 작품이 다루는 실존적 불안, 죄의식, 초월적 판결의 분위기가 제목 전면에 놓이기 쉽다. 카프카를 철학적·상징적 작가로 먼저 읽었던 초기 수용사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제목이다.

하지만 독일어 단어의 기본 뜻에 더 바짝 붙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독일어 사전에서 「Prozess」는 우선 법적 다툼, 재판 절차, 소송을 뜻한다. 그래서 최근 번역자들은 이 작품을 막연한 형이상학적 ‘심판’보다 법률적 장면이 먼저 걸리는 『소송』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2026년 10월 23일 기준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와 국가자료종합목록에서 확인되는 최근 한국어판 가운데 문학동네 권혁준 번역본은 『소송』으로 유통되고, 펭귄클래식 한국어판도 같은 제목을 쓴다. 반면 소담출판사 등에서는 『심판』이라는 표제가 계속 보인다. 제목 경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해석의 축이 달라진 결과가 서지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순화나 개정의 문제가 아니다. 『심판』은 작품을 존재론적 불안의 이야기로 먼저 읽게 만들고, 『소송』은 이름 모를 권력과 절차에 휘말린 한 개인의 법적 상황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실제 본문에는 체포, 심리, 변호, 법원 출입과 같은 장면이 촘촘하게 들어 있다. 따라서 최근 제목 이동은 카프카를 덜 추상적으로, 더 문장 가까이에서 읽으려는 번역 태도의 변화로 보는 편이 맞다.


『아메리카』가 『실종자』로 돌아간 이유


장편 가운데 제목 변화가 가장 극적인 작품은 오늘날 『실종자』로도 번역되는 소설이다. 카프카 관련 원전 정보는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이 「Der Verschollene」였고, 브로트가 유고를 묶어 1927년 「Amerika」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했다고 적고 있다. 즉 세계 독자에게 먼저 퍼진 이름은 작가의 원제보다 편집자의 출간 제목이었다.

한국어판도 오랫동안 이 후행 제목을 따라갔다.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자료종합목록에는 신원문화사 계열 번역본을 포함해 『아메리카』라는 제목이 확인된다. 하지만 2023년 문학동네에서 나온 이재황 번역본은 제목을 『실종자』로 택했다. 이는 작품을 미국이라는 공간의 풍경화처럼 읽게 만드는 오래된 표제 대신, 카프카가 남긴 제목의 핵심인 ‘사라진 사람’, ‘행방을 잃은 사람’의 감각을 되살리려는 선택에 가깝다.

이 경우 제목 변경은 해석의 초점을 아예 바꾼다. 『아메리카』는 독자에게 먼저 지리와 문명을 약속하지만, 『실종자』는 추방, 단절, 신분 상실을 앞세운다. 카를 로스만이 미국에 도착했다는 사실보다, 그가 이미 가족과 사회에서 밀려난 존재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해석이 제목에 반영된 셈이다. 원제를 복원하려는 최근 번역은 바로 이 지점을 강조한다.


모든 제목이 흔들린 것은 아니다


반대로 『변신』과 『성』은 한국어 제목이 비교적 안정적이다. 「Die Verwandlung」은 카프카 자신이 붙인 제목이고, 한국어판도 대체로 『변신』으로 굳어 있다. 민음사의 전영애 번역본, 문학동네의 이재황 번역본 모두 이 계열을 따른다. 『성』 역시 독일어 원제는 「Das Schloss」이며, 후대 독일어본에서 정서법 때문에 「Das Schloß」로도 적혔지만 작품명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한국어 번역도 대체로 『성』으로 정착했다.

이 대조는 오히려 핵심을 더 분명하게 보여 준다. 제목 번역이 자주 갈리는 작품은 대개 원제의 뜻이 여러 층으로 읽히거나, 작가 사후 편집본의 표제가 별도로 굳었거나, 중역의 전통이 강하게 남은 경우다. 반면 원제와 출간 이력이 비교적 단순한 작품은 한국어 제목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카프카 작품의 제목 차이는 무질서의 결과가 아니라, 작품마다 다른 전승 경로가 남긴 흔적이다.


제목은 번역이면서 동시에 비평이다


국내 서지에서 확인되는 흐름을 보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심판』·『아메리카』·『변신』을 함께 묶은 선집이 유통됐고, 1997년과 1998년에도 『심판』 표제의 단행본이 이어졌다. 이후 2009년과 2010년의 번역본들에서는 『소송』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2023년에는 『실종자』가 다시 전면에 등장한다. 같은 작가를 더 정확히 번역하려는 흐름이 20세기 말 이후 점차 강해졌다는 뜻이다.

따라서 카프카 소설 제목의 차이는 ‘예전 번역은 틀리고 지금 번역만 맞다’는 식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심판』과 『아메리카』는 오래된 수용사와 상징적 독법을 압축한 제목이고, 『소송』과 『실종자』는 원전과 편집사에 더 가까이 가려는 번역의 결과다. 어느 쪽이든 제목은 단순한 표지가 아니라 독자에게 작품의 첫 해석을 건네는 비평 행위다. 카프카를 다시 읽는 일은 그래서 본문만이 아니라 제목의 역사까지 함께 읽는 일에 가깝다.

자료: 민주연구원 집단지성센터, 녹서 2025(2025); Franz Kafka, franzkafka.de 수록 작품 정보 「Der Process」 「Der Verschollene」 「Die Verwandlung」 「Das Schloss」(확인일 2026-10-23);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자료종합목록 검색 결과 「審判 ; 아메리카 ; 變身 ; 流刑地에서」, 「소송」, 「변신 ;시골의사」(확인일 2026-10-23); 국립중앙도서관 ISBN·ISSN·UCI·납본 시스템 서지 「실종자」, 「소송」(확인일 2026-10-23); Duden, 「Prozess」 표제어(확인일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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