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보이는 삭제에서 보이지 않는 삭제로…식민지 문예지의 검열 흔적을 읽는 법

식민지 시기 문예지를 읽을 때 중요한 것은 남아 있는 문장만이 아니다. 지워진 문장, 긁힌 활자, 통째로 비어 있는 면,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는 그런 흔적마저 사라진 지면이 함께 읽혀야 당시 한국문학의 조건이 드러난다. 검열은 단지 작품 바깥의 행정 절차가 아니라, 문예지가 어떤 문장을 실을 수 있었는지와 어떤 문장을 독자에게 끝내 전하지 못했는지를 결정한 생산 조건이었다.

이 점은 1920년대와 1930년대 문예지를 나란히 놓고 볼 때 더 분명해진다. 1920년대 자료에는 삭제의 물리적 흔적이 비교적 노출돼 있다. 반면 1930년대를 거치며 검열 당국은 지면 위의 상처를 감추는 쪽으로 움직였고, 그 결과 후대 독자는 오히려 더 매끈한 페이지 앞에서 무엇이 사라졌는지 추적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식민지 문예지를 읽는다는 일은 결국 작품 해석과 함께 판본 비교, 납본본 대조, 검열 기록 확인까지 포함하는 작업이 된다.


빨간 선과 일본어 메모가 남은 『개벽』의 물리적 증거


국립중앙도서관이 소개한 『개벽』 창간호 소장본은 이런 읽기의 출발점을 잘 보여준다. 도서관 설명에 따르면 1920년 6월 발행된 『개벽』 창간호부터 제5호까지의 합본에는 붉은 표시와 일본어 메모가 남아 있고, 이 책은 총독부에 납본된 책이라는 도장이 선명한 자료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낙서처럼 보일 수 있는 자국이 실은 검열의 흔적이라는 뜻이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검열이 문학 텍스트의 바깥에서만 작동한 것이 아니라, 실제 인쇄물의 표면에 직접 흔적을 남겼다는 점 때문이다. 오늘의 독자는 작품을 읽는 동시에 종이 위에 남은 교정부호와 삭제 자국을 함께 읽어야 한다. 『개벽』 같은 종합잡지는 문학작품, 평론, 시사담론이 한 지면 안에서 맞물리던 매체였기 때문에, 검열 흔적은 곧 당시 문학장이 어떤 위험을 안고 운영됐는지를 보여주는 물증이 된다.


『어린이』에서 확인되는 “통째로 삭제된” 문장들


보다 구체적인 문장 삭제의 사례는 아동 문예지 『어린이』에서 확인된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어린이』가 1923년 3월 20일 창간됐고 방정환이 주재한 잡지라고 소개한다. 이 잡지는 어린이 운동의 매체였지만 동시에 동화, 동요, 교양물, 사회 인식을 함께 실은 문예지이기도 했다.

2024년 발표된 장정희의 연구는 『어린이』에 남은 검열 흔적과 『조선출판경찰월보』 기록을 대조해 삭제된 글을 복원하는 방식으로 이 잡지를 다시 읽는다. 이 연구에 따르면 가장 큰 검열 사건은 1926년 7월호인 『어린이』 4권 7호에서 19면부터 23면까지 5면이 삭제된 일이며, 해당 글은 방정환의 「10만의 독자들께」로 확인됐다. 연구는 삭제된 글들이 주로 민족의식, 애국사상, 사회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내용이었다고 정리한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검열이 단어 몇 개를 고친 수준이 아니라 독자의 읽기 흐름 자체를 잘라냈다는 점이다. 다섯 면이 한꺼번에 사라진 지면은 무엇을 말했는지보다 무엇을 말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보여준다. 문예지를 통한 계몽과 독서 공동체 형성이 중요했던 시기에, 편집자가 독자에게 건네려던 خطاب 자체가 비어버린 것이다. 식민지기 문예지의 삭제된 문장을 읽는다는 말은 바로 이런 빈칸을 텍스트의 일부로 해석하는 작업을 뜻한다.

같은 연구는 『어린이』가 단순히 억눌리기만 한 매체는 아니었다고도 본다. 러시아 소년단 ‘삐오네르’를 소개하는 등 사회주의 관련 내용을 직접 표기하지 않고 본문 속에 숨기는 방식이 활용됐고, 이미 삭제 처분된 글이 뒤에 다시 실리기도 했다. 검열은 일방적 차단이었지만, 그에 대한 편집상의 우회 역시 문장 내부에 흔적을 남겼다는 뜻이다.


1930년대의 변화, 상처를 감추는 ‘흔적지우기’


1920년대 자료를 읽을 때 독자가 비교적 쉽게 삭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당시 검열이 지면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낸 채 작동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민주의 연구는 1930년을 전후해 상황이 달라졌다고 지적한다. 조선어 신문과 잡지의 사례를 검토한 이 연구에 따르면, 검열 당국은 1930년대에 주요 잡지들에 검열의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지시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문예지 읽기의 방법을 바꾼다. 앞선 시기에는 긁힌 활자, 검은 덮개, 빈칸이 검열의 개입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면, 이후에는 오히려 너무 말끔한 페이지가 의심의 대상이 된다. 텍스트 바깥의 행정 통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독자의 눈앞에서 덜 보이도록 재편된 셈이다.

문학사적으로 보면 이는 검열의 강도가 약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편집자와 필자가 사전에 더 많은 조정을 해야 했고, 삭제는 인쇄 뒤의 흔적이 아니라 인쇄 이전의 자기검열과 편집 전략 속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1930년대 이후 문예지를 읽을 때는 남은 텍스트만 읽어서는 부족하고, 무엇이 실리지 않았는지까지 주변 기록으로 추적해야 한다.


왜 지금 다시 문예지 원본을 봐야 하나


이 문제는 연구실 안의 세부 쟁점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국립중앙도서관은 2026년 봄 특별전 ‘Modern Magazine 조선의 힙스터 아카이브’를 열어 『개벽』 창간호를 포함한 근대잡지 80종을 한자리에 소개했다. 같은 도서관은 디지털화 자료 안내에서 1950년 이전 발간 연속간행물 귀중본에 『개벽』, 『소년』 등을 포함해 제공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고, 대한민국 신문아카이브는 2026년 10월 23일 기준 108종, 888만7478건의 고신문 기사를 디지털화했다고 제시한다.

이런 인프라는 식민지기 문학 읽기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이제 작품 해석은 작품집의 정본만이 아니라 잡지 초출 지면, 납본본, 검열 기록, 동시대 기사와 함께 대조될 수 있다. 특히 삭제 흔적이 남은 자료와 흔적이 지워진 뒤의 자료를 함께 보면, 식민지 검열은 금지 목록의 문제가 아니라 문장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조건 전체를 바꾸는 장치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결국 식민지 시기 문예지의 삭제된 문장을 읽는 일은 잃어버린 문장 한 줄을 복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시대에는 삭제가 붉은 선과 공백으로 보였고, 또 어떤 시대에는 그 흔적마저 보이지 않게 사라졌다는 변화 자체를 읽어내야 한다. 한국문학의 원문을 다시 본다는 것은 남아 있는 텍스트를 읽는 일인 동시에, 지워진 문장이 남긴 형식적 상처와 침묵의 구조를 함께 읽는 일이다.

자료: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화 자료 안내(확인 2026-10-23);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주제별 컬렉션 「<개벽> 창간호」(확인 2026-10-23);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주제별 컬렉션 「어린이」(확인 2026-10-23); 장정희, 「일제강점기 아동 매체의 검열 양상과 대응 전략 – 『어린이』를 중심으로 -」(2024); 이민주, 「검열의 ‘흔적지우기’를 통해 살펴본 1930년대 식민지 신문검열의 작동양상」(2017); 국립중앙도서관, 「Modern Magazine 조선의 힙스터 아카이브 특별전 개최」(2026-04-27);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아카이브 소개」(2026-10-23 기준 확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