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도슨트 따라 전시 본다…박물관에서 ‘해석’이 중요해진 이유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스마트폰으로 유물 이름을 검색하면 제작 시기와 용도, 출토지, 관련 역사까지 몇 초 만에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 안에서도 QR코드를 찍으면 작품 설명이 나오고, 오디오가이드나 디지털 안내기기를 이용하면 혼자서도 충분히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설명을 듣기 위해 시간을 맞춰 박물관에 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8월 한 달 동안 상설전시관에서 ‘이야기가 있는 전시해설 스마트 큐레이터’를 운영했다. 박물관이 제공하는 태블릿PC를 이용하면서 전문해설사의 설명을 함께 듣는 방식으로, ‘박물관 명품 산책’을 비롯해 모두 20개 주제로 구성됐다. 평일에는 매일 오후 한 차례, 주말에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진행됐고 온라인 선착순 예약 방식으로 운영됐다.

정보만 놓고 보면 굳이 해설사를 따라다닐 필요가 없어 보인다. 작품에 관한 기본적인 사실은 이미 인터넷에 넘쳐나고, 생성형 AI까지 등장하면서 어려운 역사와 미술 용어도 손쉽게 설명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전시장에서 사람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물관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수많은 정보 가운데 무엇을 봐야 하는지 알려주는 ‘해석’이기 때문일 수 있다.


유물 하나에도 볼 것은 너무 많다


박물관에 처음 가면 생각보다 쉽게 지친다.

상설전시관에는 수많은 유물이 놓여 있고, 작품마다 제작연도와 재료, 사용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글이 붙어 있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읽지만 시간이 지나면 설명판을 건너뛰게 되고, 결국 유명한 작품 몇 점만 보고 나오는 경우도 많다.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 점의 도자기를 보더라도 형태와 문양, 제작기법, 사용계층, 당시 사회상까지 여러 방향에서 볼 수 있다. 어떤 관람객에게는 색과 형태가 중요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 그릇이 사용되던 시대의 생활상이 더 흥미로울 수 있다.

문제는 무엇부터 봐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해설사는 이때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수십 점의 유물을 모두 설명하는 대신 몇 점을 골라 하나의 주제로 묶고, 각각의 유물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스마트 큐레이터가 단순히 대표 유물만 설명하지 않고 ‘금속, 청동검에서 철불까지’, ‘그림과 글자로 보는 우리 역사’처럼 주제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전시품을 개별 정보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검색은 답을 주지만 무엇을 물어볼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스마트폰 검색과 해설사의 가장 큰 차이도 여기에서 생긴다.

검색은 질문이 있어야 시작된다.

관람객이 이미 작품 이름이나 시대, 제작기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인터넷에서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유물 앞에서 무엇을 궁금해해야 하는지조차 모른다면 검색창에 입력할 질문도 떠오르지 않는다.

해설은 질문이 생기기 전에 관람의 방향을 만들어준다.

왜 이 작품이 중요한지, 옆 작품과 무엇이 다른지,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설명을 듣다 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비슷해 보이는 두 그릇이 시대에 따라 형태가 달라졌다는 설명을 듣고 나면 다른 전시실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릇의 모양을 비교하게 된다.

좋은 해설이 남기는 것은 작품에 대한 정답보다 ‘어떻게 볼 것인가’에 가까운 셈이다.


도슨트는 설명자가 아니라 ‘해석자’에 가깝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활동하는 도슨트의 역할을 연구한 국내 논문에서도 이 점이 오래전부터 논의돼왔다.

도슨트를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서 의미를 연결하는 ‘해석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해석자의 설명이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도 하지만, 특정한 시각만을 강조해 작품을 바라보는 범위를 좁힐 가능성도 있다는 문제 역시 제기돼왔다.

이 대목은 전시를 보는 방식에서 꽤 중요하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은 뒤 작품을 보면 이전보다 많은 것이 보이지만, 그 설명이 작품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자신의 감상은 줄어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그림을 정치적 사건과 연결해 설명하면 관람객은 이후 그 맥락을 중심으로 작품을 보게 된다. 그러나 다른 관람객은 색채나 인물의 표정, 개인적인 경험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다.

해설은 작품의 의미를 ‘결정하는 말’이 아니라 관람을 시작하게 만드는 하나의 제안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정보보다 이야기를 더 쉽게 기억한다


박물관 해설이 인기 있는 데에는 인간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영향을 미친다.

제작연도와 재료, 크기 같은 사실을 각각 외우는 것보다 그 물건을 누가 만들었고, 어디에서 사용했으며, 어떤 사건을 거쳐 지금 박물관에 오게 됐는지를 이야기로 들으면 기억하기가 훨씬 쉽다.

유물에 사람이 붙기 때문이다.

왕실에서 사용된 물건이라면 당시 왕과 궁중생활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고, 무덤에서 나온 유물이라면 그 시대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까지 연결된다.

유물이 ‘오래된 물건’에서 ‘누군가 살았던 흔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래서 박물관 해설은 역사강의와도 조금 다르다.

책에서는 사건을 먼저 배우고 유물을 사례로 볼 수 있지만, 박물관에서는 눈앞에 있는 하나의 물건에서 출발해 시대 전체로 이야기가 확장된다.

좋은 해설을 들은 뒤 특정 유물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도 그 물건 주변에 이야기가 함께 남기 때문이다.


박물관 관람객이 늘수록 ‘잘 보는 법’도 중요해졌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의 관람 열기는 크게 높아졌다.

박물관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관람객은 379만500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271만6000명보다 39.7% 증가했다. 관람객 증가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은 여름방학 극성수기인 7월 27일부터 8월 17일까지 22일 동안 개관시간을 한 시간 연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물관을 찾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무엇을 볼 것인가’만큼 ‘어떻게 볼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박물관은 시간이 많이 필요한 공간이다. 한 번 방문해서 모든 전시품을 자세히 보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관람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은 더 많은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몇 점을 깊게 보는 데 있을 수도 있다.

이때 해설 프로그램은 선택지를 줄여준다.

한 시간 동안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몇 점을 집중해서 본 뒤 나머지 전시를 자유롭게 보는 방식은, 처음 박물관을 찾은 사람에게 특히 유용하다.


해설을 듣기 전에 먼저 작품을 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렇다고 모든 전시를 해설과 함께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박물관을 깊게 즐기려면 해설을 듣기 전에 작품을 혼자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먼저 몇 분 동안 작품을 보고 무엇이 눈에 들어오는지 확인한 뒤 설명을 읽거나 해설을 들으면 자신이 처음 본 것과 전문가의 해석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있다.

같은 유물을 두 번 보는 셈이다.

첫 번째 관람에서는 형태와 색, 크기처럼 직관적인 요소를 보고, 두 번째에는 역사적 맥락과 제작기법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부분을 발견한다.

반대로 설명부터 읽으면 설명문에 나온 요소만 찾게 될 가능성도 있다.

전시를 보는 데 정답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 정보 없이 보는 방식과 충분한 지식을 갖고 보는 방식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번갈아 사용할 수 있는 관람법이다.


AI가 설명해주는 시대에도 사람의 해설이 남는 이유


앞으로 박물관의 정보 제공 방식은 더 다양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디지털 안내기기와 오디오가이드, 모바일 서비스가 보편화됐고 AI를 이용하면 관람객의 관심사에 맞춰 개별 설명을 제공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아이에게 설명하듯 알려줘”, “이 유물과 비슷한 다른 시대 작품을 찾아줘” 같은 질문도 바로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의 해설이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해설사는 관람객의 표정을 보고 설명의 속도를 바꾸고,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대응하며, 같은 작품도 그날 참여한 사람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러 사람이 같은 작품 앞에 서서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문화활동이 된다.

혼자 이어폰을 끼고 정보를 듣는 것과 누군가의 말을 따라 작품을 함께 바라보는 경험은 같지 않다.


박물관을 잘 본다는 것은 많이 아는 것과 다르다


박물관에 가기 전에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전시 관람 자체가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모든 작품의 이름과 시대를 기억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한 번의 관람에서 유물 하나를 제대로 보고, 이전에는 궁금하지 않았던 시대에 관심이 생겼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해설 프로그램의 가치도 지식을 얼마나 많이 전달했는가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설명을 듣고 난 뒤 다른 작품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면, 그것이 더 중요한 결과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태블릿PC라는 디지털 도구와 전문해설사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 역시 흥미롭다. 기술이 사람의 설명을 대체하는 대신 화면에서 자료를 보여주고, 해설사는 그것을 연결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인터넷에는 이미 웬만한 유물 정보가 모두 있다.

그래서 오히려 박물관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를 더 많이 얻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를 봐야 하는지, 왜 그것이 흥미로운지, 한 물건이 다른 시대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발견하는 일이다.

설명은 검색하면 나온다.

하지만 무엇을 볼 것인지 선택하고 그 사이에 의미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에 가깝다.

박물관에서 해설을 찾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하는 이유도 결국 그 차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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