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보다 유튜브에서 먼저 떴다…리센느가 보여준 신인 아이돌의 새 경로
신인 아이돌을 알리는 공식은 오랫동안 비슷했다. 새 노래를 발표하고 음악방송 무대에 오른 뒤, 예능 프로그램이나 라디오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팬덤이 커지면 자체 콘텐츠와 개인 활동이 뒤따랐다.
그런데 걸그룹 리센느 멤버 원이의 최근 행보는 이 순서를 뒤집어 놓는다.
원이의 유튜브 채널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에 8월 28일 공개된 ‘원이 근황’ 영상은 공개 하루 만에 680만회에 육박했고, 이틀 만인 30일 오후에는 814만회를 넘어섰다. 채널 역시 지난 2월 시작한 이후 약 6개월 만에 구독자 183만명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다.
눈에 띄는 것은 영상의 성격이다. 신곡 안무를 보여주는 콘텐츠도, 앨범을 홍보하는 인터뷰도 아니다. 원이가 10년 뒤인 2036년 성공한 톱스타가 됐다는 설정으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희화화한 짧은 예능 콘텐츠다.
이 채널에서 먼저 소비되는 것은 리센느의 음악보다 ‘원이’라는 인물의 말투와 상황극, 다른 멤버와의 관계, 반복적으로 쌓이는 캐릭터다. 아이돌이 음악으로 알려진 뒤 예능 캐릭터를 얻는 기존 방식과 달리, 개인 콘텐츠에서 캐릭터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 관심이 다시 그룹과 음악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나는 것이다.
공식 ‘자컨’과는 조금 다른 개인 예능
아이돌 자체 콘텐츠, 이른바 ‘자컨’은 새로운 문화가 아니다. 대형 기획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튜브를 활용해 연습실 영상과 여행, 게임, 토크, 브이로그 등을 제작해왔다.
하지만 일반적인 자컨은 대개 이미 존재하는 팬덤을 위한 콘텐츠에 가깝다.
팬이 좋아하는 멤버의 무대 밖 모습을 더 오래 보고, 멤버 사이 관계를 즐기고, 다음 앨범까지 관심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제목과 썸네일, 편집방식도 그룹과 멤버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원이의 채널은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영상 자체가 한 편의 독립된 인터넷 예능처럼 설계돼 있고, 리센느를 몰라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아이돌 원이의 콘텐츠’라기보다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을 보다 보니 출연자가 아이돌이었다는 방식으로 신규 시청자에게 접근한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팬에게 더 많은 콘텐츠를 주는 것과, 팬이 아닌 사람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원이 채널이 빠르게 커진 배경도 아이돌 팬덤 안에서의 확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8월 25일 기준 채널에는 26개 영상이 올라와 있었고 구독자는 183만명으로 집계됐다. 특정 음악 활동기에만 일시적으로 운영되는 홍보 채널을 넘어 독립된 콘텐츠 채널 규모로 성장한 셈이다.
유튜브에서 생긴 관심이 다시 음악으로 돌아왔다
리센느는 2024년 3월 데뷔한 5인조 걸그룹이다. 데뷔 당시부터 여러 앨범과 음악방송 활동을 이어왔지만 올해 들어 대중적 인지도가 빠르게 높아졌다.
특히 2024년 발표한 ‘LOVE ATTACK’이 뒤늦게 음원차트에서 상승했고, 이를 계기로 지난 7월 카라의 2008년 곡을 리메이크한 ‘Pretty Girl’을 발표했다. 당시 관련 보도에서도 원이의 유튜브 콘텐츠가 화제를 모은 시기와 그룹의 역주행 흐름이 맞물렸다는 점이 거론됐다.
리센느 멤버들 역시 7월 인터뷰에서 음원차트 순위가 지속적으로 올라가는 것을 통해 인기를 체감했다고 밝혔다. 당시 ‘Pretty Girl’ 발매 직전 리센느는 멜론 일간차트 상위권까지 올라갔다.
이어 ‘Pretty Girl’은 7월 14일 SBS M ‘더 쇼’에서 리센느 데뷔 후 첫 음악방송 1위를 기록했다. 이후 음악방송에서 추가 1위도 기록하며 그룹의 상승세가 일회성 온라인 화제에만 머무르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물론 원이의 개인 유튜브 하나가 음원 역주행을 만들어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숏폼 챌린지와 음악방송, 기존 팬덤, 곡 자체의 반응 등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다만 관심이 흐르는 방향이 달라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과거에는 노래를 듣고 멤버를 찾았다면, 이제는 유튜브에서 멤버를 먼저 알고 그가 속한 그룹의 노래를 찾아듣는 반대 방향의 유입도 충분히 가능해졌다.
신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방송 출연권’이 아닐 수도 있다
이 변화는 특히 중소 기획사 아이돌에게 의미가 크다.
전통적인 방송 예능은 출연 기회 자체가 제한돼 있다. 이미 대중성이 있거나 화제성이 검증된 연예인이 우선적으로 섭외되는 만큼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 자신의 캐릭터를 장시간 보여줄 기회는 많지 않다.
유튜브에서는 이 문턱이 낮아진다.
방송사가 섭외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소속사가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반응이 없다면 다른 포맷을 바로 시험할 수도 있다. 팬덤 규모가 작더라도 영상 한 편이 알고리즘을 통해 기존 팬 바깥으로 퍼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리센느 공식 유튜브 채널 역시 최근 빠르게 성장했다. 외부 채널 분석 서비스가 집계한 수치를 보면 공식 채널 구독자는 6월 19일 56만1000명 수준에서 8월 29일 108만명까지 늘었고, 최근 30일 동안 약 21만7000명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누적 조회수 증가폭도 약 1억3000만회로 집계됐다. 다만 이는 유튜브 공개정보를 바탕으로 한 외부 집계인 만큼 플랫폼 공식 통계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유튜브가 단순히 음악방송 영상을 다시 올리는 보조채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인에게는 방송보다 먼저 대중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첫 번째 무대가 될 수 있다.
‘멤버 한 명이 뜨는 것’은 그룹에 약일까 독일까
개인 콘텐츠가 강해질수록 새로운 과제도 생긴다.
특정 멤버의 인지도가 그룹보다 빠르게 커질 경우 개인과 그룹 브랜드 사이의 격차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원이의 영상을 좋아하지만 리센느의 음악에는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개인 채널 구독자가 많다고 해서 그 숫자가 그대로 음원 소비나 앨범 구매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개인 캐릭터를 억누르기보다 그 관심이 그룹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리센느는 최근 원이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공식 숏폼과 챌린지, 자체 영상에 지속적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룹 공식 채널에서도 멤버별 콘텐츠와 음악 콘텐츠가 병행된다. 8월 20일 기준 공개된 리센느 대표 영상 가운데 ‘Bloom’과 ‘LOVE ATTACK’, ‘Pretty Girl’ 등 여러 작품이 2000만회 안팎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결국 한 멤버의 바이럴을 그룹 전체의 팬덤과 음악 소비로 연결할 수 있느냐가 다음 단계의 경쟁력이 된다.
아이돌에게 ‘예능 캐릭터’도 하나의 콘텐츠 IP가 된다
원이의 사례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채널에서 만들어진 캐릭터가 음악 활동과 별도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영상마다 새로운 상황극이 이어지고 특정 말투와 행동, 멤버 사이 관계가 반복되면서 시청자는 한 편을 보고 끝내지 않고 다음 영상을 기다리게 된다.
이 구조는 일반 예능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방송국이 프로그램을 소유하는 대신 아티스트와 소속사가 직접 콘텐츠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채널이 충분히 커지면 광고나 협업, 브랜드 콘텐츠로 확장될 수도 있다. 나아가 팬미팅이나 굿즈, 그룹 콘텐츠와 연결될 여지도 생긴다.
아이돌 산업에서 음악과 퍼포먼스 외에 ‘사람 자체의 콘텐츠화’가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되는 이유다.
그동안 기획사는 좋은 노래와 안무,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데 많은 자원을 투입했다. 앞으로는 멤버가 가진 캐릭터를 어떤 플랫폼에서 어떤 형식으로 보여줄지까지 데뷔 전략의 중요한 일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음악방송에서 유튜브로, 입덕의 출발점이 달라진다
리센느의 최근 상승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원이의 유튜브 인기가 장기간 유지될지, 개인 콘텐츠에서 들어온 시청자가 그룹 팬덤으로 얼마나 전환될지도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변화는 이미 확인할 수 있다.
신인 아이돌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순서가 더 이상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음악방송에서 좋은 무대를 보여주고 예능에 출연해 인지도를 넓히는 전통적인 방식은 여전히 중요하다. 동시에 유튜브에서 먼저 재미있는 사람으로 알려지고, 이후 그 사람이 가수라는 사실을 알게 돼 음악을 찾아가는 경로도 생겼다.
이 변화는 규모가 작은 기획사에는 특히 중요한 기회다.
방송 편성이나 대형 프로모션을 확보하지 못해도 한 멤버의 캐릭터와 잘 만든 콘텐츠가 대중과 만나는 통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조회수만 높다고 성공한 아이돌 전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화제성을 그룹 이름으로 연결하고, 다시 음악과 공연, 팬덤으로 이어가야 비로소 일시적인 바이럴이 지속적인 인기와 수익으로 바뀐다.
원이의 유튜브가 흥미로운 것도 그래서다.
유튜브가 아이돌 활동을 홍보하는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사람들이 아이돌을 처음 발견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